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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고진현기자]2020도쿄올림픽이 걱정스럽다. 방사능 올림픽에 대한 안전 문제?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점이 도사리고 있다. 바로 올림픽의 기본정신을 훼손하는 가치의 심각한 충돌 때문이다. 누가 뭐래도 올림픽에선 평화의 가치가 으뜸이다. 고대올림픽의 탄생만 보더라도 금세 알 수 있다. 전쟁으로 피폐한 그리스 도시국가가 신의 제전이라는 이름을 빌려 지옥같은 전쟁을 잠시나마 잊기 위해 고안된 게 바로 고대 올림픽이다. 올림픽 전후 3개월동안 모든 폴리스는 전쟁을 멈추는 휴전을 약속함으로써 살육의 피바람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었다. 고대 올림픽의 신성한 휴전은 ‘에케체이리아(ekecheiria)’로 불렸다. 그리스어로 ‘무기를 내려놓다’는 뜻의 ‘에케체이리아’ 정신은 지금도 올림픽의 핵심 가치로 유용하다.

그렇다면 일본은 2020도쿄올림픽을 준비하면서 올림픽의 핵심 가치를 지향하고 있는가? 안타깝게도 ‘에케체이리아’ 정신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는 게 한결같은 지적이다. 극우 보수파들이 중심이 된 아베정권이 전후 평화헌법을 뜯어 고쳐 군국주의를 지향하는 사회적 개편을 꾀하고 있는 모습은 그야말로 올림픽의 ‘에케체이리아’ 정신과 정면 배치되는 이율배반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군국주의를 향한 일본 보수파들이 올림픽이라는 메가 이벤트를 통해 집단적 단결을 호소하는 방식은 꽤나 진부하고 인류의 정신사적 흐름에서도 퇴행된 움직임이라는 데 이견의 여지는 없다. 이러한 맥랙적 흐름을 놓치고 올림픽의 표면적 관심과 흥미에만 집중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올림픽이 단순히 타자와의 대결과 경쟁에 집중되고 매몰되면 올림픽이 지향하는 가치와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사실은 향후 올림픽 운동에서 결코 간과해서는 안될 역사적 교훈이다.

일본의 군국주의화는 제정일치를 꿈꾸는 신도(神道)가 그 중심에 있다. 신도는 만세일계(萬歲一系)의 천황을 신성시하는 종교다. 종교가 앞장서 강한 일본을 꿈꾸는 정치를 포섭해 무기력에 학습된 국민을 선동하고 있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이들은 인민주권을 부정하며 천황주권을 주장하는 것은 물론 힘이 곧 ‘신의 작용’이라며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지배하는 전쟁을 합리화하는 논리를 펼치고 있다. 일본의 군국주의는 이렇듯 시대착오적이며 퇴행적 현상이지만 지금까지 쌓아온 경제력을 앞세워 자신들의 오류와 무지를 숨기는 데 혈안이다. 이러한 정신사적 퇴보현상이 일본 사회에서 가능한 이유가 “잘못된 역사 때문”이라는 주장은 꽤 설득력이 있다. 탈아입구(脫亞入毆)의 계기가 된 메이지유신(1868년)은 일본의 도약에 큰 발판이 되긴했지만 역사의 흐름에선 매끄럽지 못했다는 게 공통된 견해다. 메이지유신을 통해 강한 동력을 얻은 일본의 근대화가 천황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보편주의를 상실하는 방향으로 이뤄졌다는 점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지방분권형 막부체제를 천황 중심의 강력한 통일국가로 만든 게 메이지유신이라면 이는 중세정신으로 회귀한 퇴행의 역사일 수 있다.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단행한 산업혁명을 바탕으로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룬 일본은 이러한 정신사적 퇴행을 경제력으로 숨길 수 있었지만 이러한 콤플렉스는 늘상 도사리고 있다가 때가 되면 유령처럼 스멀스멀 기어나오곤 한다. 그게 바로 일본 사회가 지닌 치명적 약점이다.

일본은 보편성을 상실하는 방향으로 근대화를 시도한 퇴행의 역사 경험을 지닌 나라인 만큼 정신적으로는 아직도 미성숙하다. 양심, 인종차별 문제, 역사의식 등은 여전히 보편주의와 맞닿아 있는 근대성과 한참 동떨어져 있다. 일본의 군국주의가 정당화된 메이지유신을 이끈 핵심 세력은 사쓰마번(현 가고시마현)과 조슈번 (현 야마구치현)출신 무사들이었다. 이른 바 ‘삿초동맹’으로 불린 두 세력은 시·공간을 달리해 다시 살아나고 있는 모양새다. 지금 일본의 우경화도 아베 신조 총리(조슈번 출신)와 아소 다로 부총리(사쓰마번 출신)가 이끌고 있다는 점은 여전히 흥미롭다.

평화의 제전을 준비 중인 일본이 군국주의를 꾀하고 있다면 이건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2020도쿄올림픽이 위험한 이유는 방사능이 아니라 올림픽의 핵심가치와 일본이 지향하는 가치의 첨예한 충돌 때문이다. 평화를 상징하는 올림픽의 ‘에케체이리아’ 정신은 군사력에 의한 대외적 발전을 중시하는 군국주의를 추종하는 사회 흐름과는 도무지 논리적 정합성을 찾을 수 없다. 자칫 올림픽이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가치를 정당화하는데 이용될까 걱정이다. 올림픽은 누가 뭐래도 평화의 제전이어야 한다. 그게 바로 올림픽의 보편성이다. 평화라는 기본 가치를 상실한 올림픽은 그 어떤 화려한 포장에도 불구하고 결코 성공한 대회로 자리매김할 수 없다. 2020도쿄올림픽에 우려의 시선이 쏟아지는 이유다.

부국장 jhkoh@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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