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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진(왼쪽)과 김나리. 제공 | 대한양궁협회

[부산=스포츠서울 정다워기자]한국 양궁의 힘은 대회 결과를 보면 느낄 수 있다.

지난 17일부터 19일까지 부산 KNN광장에서 열린 ‘현대자동차 정몽구배 한국양궁대회 2019’ 여자부에서는 무명의 고교 궁수 김나리(여강고)가 우승하는 이변을 연출했다. 김나리는 이번 대회 고등부 랭킹 15위로 턱걸이해 참가 자격을 얻었다. 파죽지세로 결승까지 올라 박소희(부산도시공사)를 세트승점 7-3으로 잡고 정상에 올랐다. 정몽구배는 우승상금 1억원에 총상금 4억5000만원이 걸린 세계 최대 규모의 양궁대회다. 선수들 사이에서는 반드시 우승하고 싶은 대회로 꼽힌다. 세계랭킹 1위 강채영(현대모비스)과 최미선(순천시청), 장혜진(LH) 등 우승에 야심차게 도전한 간판 선수들이 줄줄이 탈락한 가운데 2003년생 김나리가 챔피언에 등극하는 파란을 일으켰다.

사실 김나리에게는 ‘양궁 DNA’가 있다. 김나리 고모는 한국양궁의 레전드인 김경욱이다. 김경욱은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 2관왕이다. 당시 대회에서 과녁 정중앙에 위치한 초소형카메라를 두 번이나 깨트려 화제가 되기도 했다. 김나리는 “고모의 추천으로 초등학교 3학년 때 양궁을 시작했다. 큰 경기에서 긴장을 많이 해서 고모가 메시지를 자주 보내주셨다. 힘이 됐다”라는 사연을 소개하면서 “너무 얼떨떨하다. 운이 많이 따라준 것 같다. 선생님께서 긴장을 잘 풀어주셔서 우승할 수 있었다. 감사드린다. 우승을 노린다기보다 경험한다고 생각하고 경기에 임했다. 목표는 8강 진출이었다. 기대를 넘어 고등학생 최초 우승을 하게 돼 기쁘다”라는 소감을 밝혔다.

김나리의 우승은 한국 양궁이 왜 세계 최강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기라성 같은 국가대표들이 무명에 가까운 선수들에게도 탈락할 만큼 선수 간 실력 차가 크지 않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이번 대회 장소가 도심, 그것도 해운대와 인접한 곳에서 열려 바람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는 변수는 있었다. 이에 따른 운도 필요하긴 했지만 모든 선수들이 같은 조건에서 싸웠다는 것도 생각해야 한다. 실제로 남자부에서는 국가대표 간판 김우진(청주시청)이 우승을 차지했고, 오진혁(현대제철)도 4강에 오르는 등 여자부에 비해 이변이 많이 나오지는 않았다. 김나리의 우승을 마냥 운으로 볼 수는 없다는 의미다. 남자부 챔피언에 오른 김우진은 김나리 우승을 보며 “양궁 경기는 보시다시피 누가 1등을 한다는 게 정해져 있지 않다. 기량은 물론이고 컨디션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라면서 “그 만큼 숨어 있는 보석이 많다”라는 말로 한국 양궁에 대한 자부심을 표현했다.

이번 대회를 통해 이름을 알린 김나리는 “상금을 어떻게 쓸지는 일단 부모님과 상의해야 할 것 같다”라며 웃은 후 “한국 양궁이 세계 최강이지만 실력에 비해 많은 관심을 받지 못하는 비인기종목이라고 생각한다. 제가 더 열심히 해서 영향력 있는 선수가 돼 발전에 도움이 되고 싶다”는 다부진 각오를 밝혔다.

weo@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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