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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고진현기자]세계가 스포츠에 열광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스포츠에는 인류의 보편성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태곳적부터 이어온 인류의 원형질이 스포츠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은 물론 각기 다른 민족적 에토스(ethos)를 포섭하고 아우르는 보편성이 숨어 있기에 모두가 스포츠에 열광할 수밖에 없는 게 아닐까 싶다. 스포츠를 가리켜 ‘소리없는 만국의 언어’라고 부르는 것도 바로 그런 맥락에서다.
스포츠가 위대한 것도 따지고 보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공감 능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공감 능력 역시 보편성이 생명이다. 스포츠가 웅변하는 감동의 대서사시에 모두가 함께 울고 웃으려면 정서적 보편성의 확보는 필수적이다.
이렇듯 스포츠와 보편성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인간의 공격적 본능을 순치한 제도적 놀이인 스포츠가 싸움과 차별되는 결정적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경기 룰이 있기 때문이다. 경기 룰 또한 보편성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경기에 나서는 주체가 보편성을 지향하는 합리적이고 공평한 룰 대신 특수성을 염두에 둔 룰에 의해 지배받고 있다면 그건 스포츠라 부를 수 없다.
결국 스포츠의 모든 요소는 보편성을 담보해야 하며 경기 룰과 팬 역시 보편성을 견지하고 있다는 사실에 이견의 꼬리표를 달 수 없다. 보편성을 견지하는 스포츠는 더 나아가 평등하다. 경기 주체들이 보편성을 바탕으로 한 경기 룰에 따라 공정하게 대결하며 팬 역시 스포츠 안에서는 차별 없이 평등하다. 스포츠 안에서는 계급,민족,명예,권력 등 인간을 가르는 차별적 요소가 개입할 여지가 상대적으로 적다. 스포츠를 누리고 향유하는 층을 팬으로 뭉뚱그리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팬은 스포츠 세계의 최고의 권력자다. 그러한 팬을 향한 스포츠의 보편성은 개방성으로 이어진다. 관람과 중계는 팬을 향한 가장 기본적인 서비스다. 스포츠가 존재하는 한 팬은 절대적이며 그 절대적인 팬을 향한 서비스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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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보편성이 내재돼 있는 스포츠가 최근 그 보편성과 엇박자를 내는 기괴한 경기로 세계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다. 바로 지난 15일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열린 2022 카타르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H조 3차전 한국-북한전이다. 홈팀인 북한의 무관중,무중계 결정에 따라 대명천지(大明天地)에 전 세계 축구팬을 우롱한 ‘깜깜이 경기’가 펼쳐졌다. 천재지변이나 징계가 아닌 상황에서 홈팀 스스로가 결정한 무관중,무중계 경기는 스포츠의 본질과 상식을 벗어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보편성을 상실한 스포츠는 더 이상 스포츠가 아니다. 공감능력이 사라지고 공평한 룰이 없어지고 팬도 등을 돌리게 만드는 스포츠를 우리는 과연 무엇으로 보아야 할까. 그건 스포츠의 외피(外皮)를 입은 가장 파괴적인 전쟁일 뿐이다.
편집국장 jhkoh@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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