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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고진현기자]집착에는 욕심이 숨어 있고 그 욕심은 무리수로 이어져 결국 파국을 초래하는 게 세상의 이치다. 일이 물 흐르듯 진행되지 못하고 삐그덕대는 데는 필시 곡절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숨겨둔 목적을 관철하기 위해 무리한 일을 추진하다보면 반드시 파열음이 생기게 마련이다. 대한체육회(회장 이기흥)가 유난스럽게 집착했던 체육인교육센터 부지 선정을 놓고 뒷말이 무성하다.
체육인교육센터는 대한체육회 이기흥 회장이 부임한 뒤 가장 역점을 두고 진행했던 사업인 만큼 부지 선정에서도 경쟁이 치열했다. 체육회는 지난 11일 열린 이사회에서 전라남도 장흥군과 완도군이 참여한 후보지 선정에서 장흥군을 낙점했지만 공정성 시비에 휘말려 곤혹스럽다. 교육센터 건립을 가장 강력하게 반대했던 필자로선 자칫 이 문제가 체육계의 또 다른 불씨로 확전되지 않을까 걱정스럽기 그지없다.
이 회장이 선거공약으로 내세우며 집착했던 교육센터는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에서조차 숨은 의도가 의심스럽다며 반대했던 사업이다. 그러나 이 사업이 국회 쪽지예산을 통해 살아났고,지역사회에 경제적 피를 돌게 하는 호재로 부풀려지며 급물살을 타고 있는 형국이다. 여기에는 일부 정치권의 지원도 숨어 있다. 정치권이 체육회와 공조를 취하고 있는 이유는 단 하나,표심(票心)을 잡기 위해서다. 이 사업은 다가오는 4·15 총선거와 2022년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라는 3개의 대형 선거와 맞물리는 정치공학적 셈법의 산물인 셈이다.
체육이라는 본령보다 정치라는 곁가지가 오히려 더 크게 부각된 이 사업은 당초 체육의 기득권 세력들이 돈을 빼먹기 위해 기획된 사업이라는 시각도 없지 않다. 대한체육회 ‘이기흥호’가 얼마나 이 사업에 집착했는지는 웬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일이다. 고질적인 체육계 비리가 잇따라 터질 때도 “체육인들의 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는 탓”이라는 궤변을 늘어놓으며 교육센터 건립의 당위성을 역설하기도 했다.
체육회 이사회가 지난 11일 교육센터 후보지를 선정한 뒤 비난의 십자포화를 한몸에 받고 있는 이유는 원칙과 절차를 무시했기 때문이다. 절차적 공정성을 확보하지 못한 투표는 구성원들의 반발과 갈등만 부추길 뿐이다. 체육회는 이사들에게 고지된 선정방식을 당일에서야 급거 변경하는 무리수를 뒀다. 선정방식 변경을 몇몇 이사들이 제안했다고는 하지만 이를 곧이 곧대로 믿는 사람은 별로 없다. 선정방식 변경이라는 게 문제를 크게 키울 수 있는 무리수였다고 보면 이 같은 결정과정에 정치적 이해관계까지 개입된 복잡 미묘한 돌출변수가 생겼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견해다.
이러한 정황을 반영이라도 하듯 체육회는 무기명 비밀투표를 기명투표로 바꾼 것도 모자라 예정에도 없었던 체육회 직원 평가까지 무리하게 강행했다. 이 직원이 특정지역의 약점을 집중적으로 들춰내는 꼼수를 부릴 줄은 그 누구도 몰랐다. 이사들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투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피부로 절감하며 눈살을 찌푸렸다. 이 광경을 지켜본 몇몇 이사들은 “이건 투표가 아니라 강요”라며 씁쓸한 웃음까지 지어보였다.
공정성을 훼손해 비난받고 있는 체육회는 최근 그 권위가 말이 아니다. 잇따른 체육계의 비리와 반인권적 사건·사고로 국민의 지탄을 한꺼번에 받고 있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이번 사태에서처럼 체육회가 아직도 체육의 본령을 망각하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어 안타깝다. 2018평창동계올림픽이 남긴 수많은 스포츠인프라를 효과적으로 활용하지도 못하면서도 또다시 370억원이 소요되는 교육센터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는 건 선뜻 공감하기 힘들다. 물론 체육계가 자신의 입지를 넓히고 더 많은 자산을 확보하려는 자세는 그리 탓할 수 없다고 항변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체육개혁이라는 절체절명의 당면과제 앞에서는 설득력이 부족하다. 특히 대형 건축물 건립을 통한 보여주기식 발전전략은 개발독재시절에나 먹혀들던 시대착오적인 전략일 뿐더러 ‘화이트 앨리펀트’ 현상이 만연한 한국의 체육지형에서는 지양되어야 할 정책이라는 데 이견의 여지는 없다.
말 많고 탈 많은 교육센터건립을 원점에서 다시 논의할 때다. 교육에서 중요한 건 뚜렷한 의지와 철학이지 돈으로 포장된 화려한 건물이 아니다. 체육회는 이번 부지 선정과정에서 많은 걸 잃어버렸다. 원칙과 절차적 정당성을 헌신짝 버리듯 내팽개치면서 믿음과 권위를 잃었다. 꼼수가 판치는 그 자리에서 싹튼 불신과 반목이 점점 더 몸집을 키우고 있다는 사실은 체육회가 경계해야할 심상치 않은 조짐이다.
편집국장 jhkoh@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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