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샷 2020-03-03 오후 1.58.51
3일 미국 애리조나주 메사 슬로언파크에서 열린 시카고 컵스와 LA 에인절스의 시범경기 ESPN 중계 화면 캡처. ESPN 해설진과 크리스 브라이언트, 앤서니 리조가 마이크를 통해 경기 중 대화를 나누고 있다.

[스포츠서울 윤세호기자] 경기를 뛰고 있는 선수가 연결된 마이크를 통해 TV 해설진과 대화를 나눈다. 심지어 타석에서 배트를 휘두르면서 해설진의 물음에 답한다. 불과 몇 년 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일이 메이저리그(ML)에서 벌어지고 있다.

미국 스포츠 전문채널 ESPN은 3일(한국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메사 슬로언파크에서 열린 시카고 컵스와 LA 에인절스의 시범경기를 전국중계했다. 그런데 이날 중계는 단순한 야구 중계가 아니었다. ESPN은 컵스 중심 타자 앤서니 리조와 크리스 브라이언트 유니폼에 마이크를 부착했다. 그러면서 리조와 브라이언트는 경기 중 해설진과 대화를 나누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대화 내용도 흥미 만점이었다. 리조는 3회말 두 번째 타석에서 “무엇을 생각하고 있나?” 해설진의 물음에 “머릿속으로 무언가 계산을 하고 있다”고 답했다. 해설진이 “그게 뭔가?”라고 되묻자 “모르겠다. 내 예측이 맞기를 바랄 뿐이다. 공이 와서 맞기를 바란다. 누군가 나를 위해 ‘뱅’ 소리를 내줬으면 좋겠다”고 하면서 상대 투수의 스트라이크존 상단을 향하는 공에 안타를 터뜨렸다. 리조의 안타에 해설진은 환호했고 리조는 밝은 미소를 지었다.

리조가 언급한 ‘뱅 소리’는 휴스턴의 전자기기 사용 사인훔치기 사건을 비유한 것이다. 휴스턴은 2017년과 2018년 홈구장 미닛메이드파크 외야 한 가운데에 승인받지 않은 카메라를 설치했고 이 카메라를 통해 상대 배터리의 사인을 훔쳤다. 훔친 사인은 구장 내 쓰레기통을 치는 형태로 타자에게 전달됐다. 리조가 타석에서 말한 “누군가 나를 위해 ‘뱅’ 소리를 내줬으면 좋겠다”의 의미는 휴스턴의 부정행위를 조롱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반면 브라이언트는 어색한 듯 해설진과의 대화에 거리를 뒀다. 1회말 첫 타석에서 브라이언트는 해설진의 질문에 “오마이갓”만 반복하면서 외쳤다. 이후 브라이언트는 좌측 파울라인 바깥으로 향하는 강한 파울 타구를 날린 후 1루로 전력질주했다. 해설진이 브라이언트에게 “구종이 뭐였나?”고 묻자 “패스트볼이었다. (열심히 뛰어서 대답하기) 힘들다”고 답해 해설진을 웃겼다.

스크린샷 2020-03-03 오후 2.17.19
3일 미국 애리조나주 메사 슬로언파크에서 열린 시카고 컵스와 LA 에인절스의 시범경기 ESPN 중계 화면 캡처. 에인절스 조 매든 감독과 컵스 크리스 브라이언트, 앤서니 리조가 마이크를 통해 경기 중 대화를 나누고 있다.

더 놀라운 장면도 나왔다. ESPN은 5회초 마이크를 통해 리조, 브라이언트와 에인절스 조 매든 감독을 연결했다. 리조와 브라이언트는 내야수비를 소화하면서 매든 감독과 안부를 물으며 대화를 나눴다. 지난해까지 매든 감독이 컵스 사령탑을 맡았고 서로 낯설지 않은 관계였기에 가능한 일이긴 했으나 어쨌든 경기 중 상대팀 선수와 감독이 대화를 나누는 것은 금지된 사안이나 마찬가지다. EPSN은 지난 몇 년 동안 시범경기와 올스타전에서 이렇게 선수 유니폼에 마이크를 부착해 보다 생생한 모습을 전달하고 있다.

고정관념에 갇히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ML 사무국은 보다 생생한 현장을 전달하기 위해 열린 마음으로 새로운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TV 앞에서 야구를 시청할 수 있게 여러가지 흥행요소를 두고 선수노조와 논의한다. 영국 런던과 중남미에서 꾸준히 정규시즌 경기를 개최하고 여름마다 리틀야구의 성지인 윌리엄스포트에서 정규시즌 경기를 치른다. 윌리엄스포트 야구장 관중석 규모는 약 2500석 밖에 되지 않는다. 단순히 수익을 목적으로 했다면 이뤄질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ML는 리틀야구 토너먼트에 참가한 전세계 어린이들을 상대로 최고 수준의 야구를 직접 보여주고 전파하는 데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지난달 12일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 조사결과 ML 시청자 평균 연령대는 59세로 집계됐다. NFL(미국프로풋볼리그)는 52세, NBA(미국프로농구)는 43세로 ML가 타종목보다 높다. 낮은 연령대는 트렌드 창출과 성장으로 귀결된다. 하이틴 세대가 가장 선호하는 리그로 꼽힌 NBA는 최근 10년 새 구단평균가치가 6배 가량 뛰어올랐다. 위기에 몰린 ML 사무국은 선수, 방송 관계자와 뜻을 모아 이전보다 적극적으로 팬들에게 다가가고 있다. 지난해 런던에서 열린 뉴욕 양키스와 보스턴의 경기는 물론 윌리엄스포트 경기까지 모두 ESPN을 통해 미국 전역에 중계됐다.

bng7@sportsseoul.com

기사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