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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정하은기자]드라마에서 빌런은 주인공만큼이나 중요하다. 빌런을 얼마나 매력적으로 그리고 표현하느냐에 따라 스토리가 풍부해지고 주인공 역시 돋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탄탄한 연기력을 바탕으로 매력적인 빌런을 탄생시키며 ‘재발견’이라는 호평을 얻어내는 배우들이 있어 눈길을 끈다.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는 JTBC 금토극 ‘이태원 클라쓰’에는 드라마를 보는 맛을 더욱 살려주는 빌런이 있다. 바로 짠내 나는 악역 ‘장근원’을 연기한 배우 안보현이다. 장근원은 소신을 지키며 살아가던 박새로이(박서준 분)를 나락으로 떨어뜨린 장본인이다. 박새로이의 아버지를 뺑소니 사고로 죽게 만들고, 거대 그룹 장가의 회장이자 아버지 장대희(유재명 분)가 이를 덮어준다.
안하무인 재벌2세인 장근원은 꾸준히 갑질과 악행을 일삼지만 늘 박새로이에게 당하고, 짝사랑하는 오수아(권나라 분)에게 외면받고, 심지어 아버지에게까지 버림받는 그야말로 ‘지질한’ 빌런이다. 특히 10회 말미, 10년 전 사고의 책임을 모두 아들에게 뒤집어씌우고 아버지에게까지 내쳐진 안보현의 배신감에 젖은 눈물 연기는 모두를 짠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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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근원을 더욱 빛내는건 바로 안보현의 연기력이다. 약자 앞에서 갑질을 일삼는 비열한 눈빛부터 아버지 앞에서 꼼짝 못하는 겁먹은 표정까지. 광기와 유약함을 오가는 안보현의 연기는 시청자들로 하여금 분노를 넘어 연민을 느끼게 만들고 있다. ‘이태원 클라쓰’ 속에서 박서준, 김다미 등 다른 청춘들의 소신이 더욱 빛날 수 있던 것도 바로 빈틈많은 악역 장근원이 통쾌한 사이다를 안겨줬기 때문이다.
안보현은 소속사 FN엔터테인먼트를 통해 “웹툰원작 속 장근원과 싱크로율을 맞추려 노력했다. 웹툰을 끊임없이 보면서 캐릭터의 특징을 놓치지 않고 더 입체적으로 표현하려고 했다”고 연기를 위한 남다른 노력을 전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4회 남은 ‘이태원 클라쓰’에 대해 “만병의 근원이자 모든 사건의 근원이었던 장근원이 돌아온다. 흑화되고 업그레이드 된 악역으로 시청자 여러분들께 즐거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다”고 덧붙여 궁금증을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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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종영한 tvN 수목극 ‘머니게임’에서 또 한가지 빼놓을 수 없는 수확이 바로 배우 유태오다. 대한민국을 뒤흔든 금융스캔들을 다룬 ‘머니게임’에서 유태오가 연기한 ‘유진 한’은 월가의 대리인으로 한국에 넘어와 막대한 돈을 벌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금융 전쟁을 일으키는 냉혈한 ‘금융 빌런’이다. 마지막회에서 유태오는 평생 자신을 괴롭혀 온 불우한 어린 시절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당신은 어딘가의 부속품이 아닌 그냥 사람”이라는 이혜준(심은경 분)의 말을 듣고 정체성을 찾게 된다.
극중 유태오는 IMF의 트라우마를 건드려 한국 경제를 뒤흔들게 되는 악역이지만, 어릴 때부터 어머니의 힘겨운 이민자 생활을 보며 성장해 돈이 최선이라는 가치관을 가진 결핍된 인물로 연민을 이끌어냈다. 또 반대편에 선 심은경을 구하기 위해 총을 대신 맞는 등 로맨스부터 영어와 중국어까지 완벽히 소화해 내 ‘섹시한 빌런’ ‘인간 월가’라는 애칭까지 얻었다.
한 드라마 작가는 “극에서 빌런은 주인공만큼이나 중요하다. 악당을 얼만큼 매력적으로 그리느냐에 따라 이야기가 얼만큼 입체적이 되느냐가 판가름나기 때문”이라며 “실제로 작가들이 글쓰기 작업을 할 때 많은 공을 들이는 부분이 안티히어로(악당)다. 그러다보니 어떤 경우는 악당을 주인공보다 더 매력있는 인물로 그려지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착한 주인공이 인품과 강단이라는 모호한 무기만 가졌다면, 악당 캐릭터는 욕망이 확실하고 디테일한 감정을 갖고 있기 때문에 더 살아있는 캐릭터처럼 보일 수 있다”고 탄탄하고 섬세한 연기력이 바탕이 된 배우들이 악역을 맡았을 때 더욱 돋보일 수 있는 이유에 대해 덧붙였다.
jayee212@sportsseoul.com
사진 | JTBC, tvN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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