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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정다워기자]K리그에서 흔히 듣는 표현 중 하나가 ‘낙하산 인사’다. 구단 모기업이나 지자체에서 스포츠, 혹은 축구단과 전혀 무관했던 대표이사를 직접 내려보내는 것을 말한다. 퇴임을 앞둔 임원이나, 지자체장 측근, 혹은 선거에서 도움을 준 인물을 위해 대가성으로 ‘한 자리’ 준다는 부정적인 의미를 띄고 있다.
스포츠 자체가 그렇지만 특히 프로축구는 복잡한 생리로 얽힌 특수한 영역의 산업이다. 일반 기업과는 다르기 때문에 세밀한 사정을 모르면 전체적인 경영을 책임지기 어렵다. 축구단 대표이사나 단장은 쌓아온 커리어나, 능력이나 배경과 관계 없이 직접적인 경험, 경력이 필요한 자리다. A부터 Z까지 사정을 이해하지 못하면 팀을 제대로 된 방향으로 끌고가기 힘들다.
낙하산 인사의 가장 큰 폐해는 방향성 상실이다. 적지 않은 구단, 특히 시도민구단이 선거가 끝날 때마다 큰 후폭풍을 겪는다. 축구를 잘 모르는 인사가 내려와 분위기 파악도 하지 못한 채 일방적으로 업무를 지시하는 경우가 많다. 전임 대표이사, 혹은 사장이 이끌던 방향과 전혀 다른 쪽으로 가는 경우도 많다. 장기적 관점에서 계획했던 프로젝트를 전면 수정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기도 한다. 지자체를 이끄는 정당이 바뀔 경우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이다. 프로스포츠에서 중요한 방향성에 혼란이 오면 팀 전체가 흔들리게 된다. 이로 인해 구단 사무국 직원들은 선거 결과에 촉각을 기울이게 된다. 시도민구단의 특성으로 이해하고 넘어가기엔 부작용이 너무 크다.
일각에선 프로축구연맹 차원에서 전문경영인 제도를 규정으로 못 박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축구단 근무 여부 등을 기준으로 삼아 일정한 자격을 부여,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대표이사, 혹은 단장을 역임할 수 없도록 하는 방법이다. 과거 연맹도 내부적으로 검토했던 사안인데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구단은 연맹의 회원사일뿐 연맹이 인사에 관여할 자격은 없다는 것이다. 조연상 연맹 사무국장은 “연맹에서도 필요성을 느끼는 것은 사실이지만 사실상 강제할 방법은 없다”라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구단 자체의 판단에 맡겨야 하는 상황이다.
현실적인 방법으로 ‘투 트랙’ 인사 시스템을 도입하는 게 적절하다는 시각도 있다. 기업이나 지자체의 사정을 고려해 인사를 보장하면서도 축구단 생리를 잘 아는 전문경영인도 함께 고용하는 방식이다. 지금도 일부 기업구단은 기업 의중을 잘 아는 대표이사와 축구단 경험이 있는 단장을 모두 선임하기도 한다. 모기업의 사정을 적절하게 반영하면서도 프로축구에 대한 전문성까지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모범적인 케이스로 꼽힌다. 이 점을 감안해 시도민구단에서도 K리그에 전문성을 보유한 단장이나 대표이사를 선임하고, 지자체에서 내려보내는 인물을 상임이사 형식으로 세우면 적절하게 균형을 맞출 수 있다. 한 기업구단의 고위 관계자는 “기업구단이든 시도민구단이든 각자의 사정이 있다. 기업과 지자체가 일종의 돈줄이라 무시할 수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적절하게 밸런스를 맞출 수 있도록 전문가 한 명을 함께 선임하는 게 이상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라는 의견을 밝혔다.
이와 함께 반드시 선행돼야 할 작업이 있다. 바로 전문경영인을 양성하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K리그 환경이 워낙 척박해 오랜 기간 ‘버티는’ 사무국 직원이 많지 않았다. 게다가 기업이나 지자체에서 내려온 인사들이 실권을 잡는 사례가 빈번해 정작 K리그 내부자에게는 기회가 많이 돌아가지도 않았다. 이로 인해 K리그에서 전문경영인이라 자부할 만한 인사는 많지 않은 게 현실이다. 워낙 소수라 선택지가 넓지 않고 일종의 내부 경쟁 체제도 이뤄지지 않아 경쟁력도 떨어진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제부터라도 경영인 사이에서 경쟁 체제가 형성된다면 K리그의 경쟁력도 올라갈 수 있다. 발전을 위해 진보적인 인사를 통해 젊은 리더들을 양성할 필요도 있다. 실제로 최근 일부 기업구단은 40대 중후반으로 젊지만 경험을 갖춘 단장들을 선임해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다. 경험과 능력을 근거로 한 혁신적인 인사가 확산된다면 K리그 전체가 건강해지고 경쟁력이 강화될 것이다.
weo@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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