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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박효실기자] 사흘간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던 이원일 셰프의 예비신부 김유진 PD의 학교폭력 논란을 제기했던 피해자 A씨가 23일 자정 장문의 후기를 남겼다.
학교폭력 사건 이후 성인이 된 지금까지 장장 12년간 고통스런 시간을 보낸 A씨의 폭로에 많은 이들이 공감과 위로를 전했고, A씨 외에 여러 사람에게 상습적으로 학교폭력을 가했던 김PD의 놀랍도록 무감각했던 방송출연이 충격을 주기도 했다.
김 PD는 A씨의 폭로가 나온 뒤 국내 초등학교, 뉴질랜드 중고교 시절 피해자들이 계속 나오자 12년만인 23일 A씨와 약 3시간여에 걸쳐 나눈 문자메시지를 통해 공식사과했다. 만약 A씨의 폭로가 없었더라면 김 PD 커플의 MBC리얼연애예능 ‘부러우면 지는거다’ 출연과 예능활동은 문제 없이 이어졌을 터였다.
김 PD 커플에게는 재앙과도 같았을 며칠간의 소란이 A씨에게는 학창시절부터 현재까지의 삶을 지배해온 ‘현재진행형’의 고통이었다. 몇 마디의 사과로 과거의 상처를 다 치유받을 수는 없지만, 여론의 힘에 떼밀린 그 사과라해도 A씨에게는 처음으로 고개를 숙인 가해자의 가해사실 인정이었다.
23일 오후 이 셰프와 김 PD는 나란히 2차 사과문을 올렸다.
소속사를 통해 예비신부 사건의 공식입장을 밝혔다가 2차 가해 논란에 휩싸였던 이 셰프는 “제 예비 아내로 인해 즐겁고 행복한 시간으로 보냈어야 할 학창시절을 고통의 시간으로 보내신 점, 빠르게 명확한 대처를 하지 못해 피해자분들께 다시 한번 상처를 준 점에 사죄드린다”면서 “또한 ‘사실을 떠나’라는 단어 선택에 있어서 신중하지 못한 점에 사죄드린다. 지금의 상황에 죄책감을 갖고 저의 모든 방송활동을 중단한다. 피해자 분들이 어디 계시든 직접 찾아뵙고 사죄드리겠다”고 재차 사과했다.
김PD는 자신의 잘못을 구체적으로 적은 2차 사과문을 게재했다. 그는 “아래의 내용에 대해 잘못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죄드린다. 친구들을 폭언으로 상처줬다. 친구들을 폭행으로 상처줬다. 마음에 들지 않는 이유로 친구를 무시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친구를 이간질했다. 이밖에도 친구들이 상처받을 만한 행동을 했다”면서 자신의 잘못을 구체적으로 적은 뒤 다시 고개를 숙였다.
피해자의 구체적인 문제제기에 가해자들이 흔히 하는 “사실여부를 떠나 사과드린다” “물의를 일으켜 송구하다” 등 논란을 지켜보는 제3자에게 하는 ‘주어가 없는’ 사과를 고쳐 쓴 사과였다. 폭행 가해자로서 아무런 죄책감 없이 살아온 지난 세월에 비하면 ‘작은 스크래치’에 불과한 사과였지만, 피해자에게는 장장 12년만에 처음으로 엎드려 절받기라 해도 사과는 사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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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23일 자정 네이트판에 올린 세번째 글을 통해 “사실 가해자와 대화를 나누고 사과를 받으면 오늘만큼은 제시간에 잠들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제 착각이었나 보다. 며칠간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서 몸과 정신은 피로한 데 두 시간 넘게 눈을 감고 있어도 잠에 들지 못했다. 그때 새로운 사과문이 올라왔고 그것을 확인한 후 이렇게 추가 글을 적는다”라며 착잡한 심경을 전했다.
그는 “12년간 깊숙이 자리잡힌 상처가 하루 저녁에 아물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고 또 지금 제 마음도 시원한 마음보다는 복잡미묘한 마음이 크기 때문에 여러분의 우려대로 바로 김유진 PD의 사과를 수락하고 용서하지는 않을 생각이다. 조금 더 제 마음이 편해지고, 후련해지면 그때 용서 할 수 있을 것 같다”라면서 “그래도 이번 일을 통해서 12년 동안 시종일관 남 눈치를 보고 인간관계에 있어서 틀어짐이 있거나 피해를 받았을 때 항상 제 탓 먼저 했던 성격이 조금이나마 긍정적으로 바뀔 수 있을 것 같아서 기쁘다”고 말했다.
또 김 PD를 12년만에 학폭 가해자로 여론의 광장에 세운 이유에 대해 “거듭 언급했듯이, 이 일은 저 혼자만의 일이 아니고 김유진 PD에게 피해를 본 다른 피해자와 또 모든 학교 폭력 피해자들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김유진 PD가 피해를 밝힌 모든 피해자에게 연락하여 사과하는 게, 올바른 선례를 만들 꼭 필요한 중요한 과정임을 강조하고 싶다”라고 밝혔다.
A씨는 앞서 지난 22일 12년 전인 2008년 뉴질랜드 오클랜드에서 김PD와 그의 친구들 8명에게 집단폭행을 당했던 사실을 밝혀 충격을 줬다. A씨는 무리의 우두머리격이었던 김PD를 따라 여러 사람이 광장, 노래방 등에서 자신을 폭행했고, 이때 받은 충격으로 정신과치료를 받은 사실도 밝혔다. 하지만 잊고 있었던 학폭 가해자가 TV에 나오는 모습을 보며 고통스런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글로 많은 이들의 공분을 샀다.
A씨는 “그들로 인해 망가진 나의 성격과 머릿속에 깊숙이 박힌 트라우마는 어떤 것으로도 보상받을 수 없음 또한 안다. 저는 살면서 ‘내가 그때 다르게 행동했다면 맞지 않았을까? 그때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내 삶이 좀 달라졌을 텐데’라는 생각을 수없이 하며 저 자신을 탓했던 적이 있다. 이유를 막론하고 ‘학폭’은 절대 일어나지 않아야 할 일이다. 우리는 잘못이 없다”라면서 “폭행 가해자는 반성과 사죄 없이 TV나 유튜브 같은 공개된 플랫폼에 나올 생각하지 마시고 힘들고 어렵겠지만, 저를 포함한 모든 학폭 피해자들이 자신을 더 포용하고 사랑해서 보란 듯이 잘 살았으면 좋겠다. 덧붙여 학폭 가해자 분들이 사과 후 짧은 자숙 이후 다시 방송 활동을 하는 걸 많이 봐온 저로써는 이번 일이 쉬이 사그라들지 않고 가해자들의 설 자리가 피해자들을 위해서라도 줄어들기를 바란다”는 바람을 전했다.
23일 뒤늦게 A씨와 연락을 취한 김 PD는 공개된 문자메시지 속에서 “내가 너한테 했던 어렸을 때 행동들이 부끄러워서 피하고 싶었던 것같아. 잘못했어. 진심으로 사과할게. 사실 여부를 떠나서라는 말은 사과가 먼저라고 생각해서 사용했던 건데 적절하지 못했던 것같아. 그것도 사과할게”라며 “코로나가 잠잠해졌을 때 뉴질랜드로 가서 만나서 사과하고 싶어. 정말 미안해”라며 재차 고개를 숙였다.
3시간여간 주고받은 문자메시지는 A씨는 존칭을 김 PD는 반말을 사용해서 눈길을 끌었는데 A씨는 후기에서 “다른 피해자분들에게도 이런 말투로 사과하실 생각이시면 생각 고쳐먹으시길 바란다. 일일이 지적하고 싶지 않아서 참았는데 제가 무리한 부탁을 드린 것이 아님에도 말투가 놀라워서 알려드리는 거다. 사과하시는 분이 끝까지 웃어른 행세하시는 게 참 기가 차다”라는 말을 덧붙였다.
또 댓글을 통해 A씨를 응원해준 많은 이들에게 감사를 전하는 한편, A씨의 글에 용기를 얻어 김 PD의 또 다른 학교폭력을 폭로해준 피해자, 또 어린 시절의 자신처럼 고통을 겪고 있을 수많은 또 다른 학교폭력 피해자들에게도 응원을 전했다.
A씨는 “그동안 달린 수많은 응원 댓글들 하나도 빠짐없이 다 읽었다. 마음 같아선 일일이 감사드린다고 답글을 달고 싶었지만 제 생각보다 댓글이 많이 달려서 이렇게 감사 인사를 드린다. 정말 감사하다”면서 “제 글을 읽고 용기를 내어 피해 경험을 밝히신 다른 피해자분들도 꼭 합당한 사과 받으시길 바란다. 제가 김유진 PD에게 사과할 것을 요구는 하였으나, 피해자가 당당해야 가해자는 그제야 고개를 숙이고 반성하며 사과를 하는 것 같다. 자신을 탓하지 마시고 더 당당해지셨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또 “수많은 학교 폭력 피해자 여러분이 제가 이 일을 극복해나가는 모습을 보고 조금이라도 숨통이 트이고 트라우마를 극복하셨으면 한다. 오랜 시간 마음에 있던 상처가 이 글을 통해 딱지로라도 바뀌어서 후에는 꼭 치유되길 바란다. 제가 멀리서 응원하고 있다”라면서 “학교 폭력은 이유를 막론하고 잘못된 것이며 폭행을 당한 우리의 잘못이 아니다. 그동안 제가 이 일을 헤쳐나가는데 함께 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라며 글을 마쳤다.
gag11@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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