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핑논란에 휩싸인 맥시멈 시큐리티가 사우디컵에서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하고 있다.  제공 | 한국마사회

[스포츠서울 박현진기자] 지난 2월말 총상금 240억 원으로 경마경주 최고상금 역사를 새로 쓴 ‘제1회 사우디컵’이 전 세계의 주목을 받으며 개최됐다. 중동 부호의 통 큰 상금을 차지하기 위해 전 세계 톱클래스 경주마들이 한자리에 모인 가운데 미국 경주마 ‘맥시멈 시큐리티’가 1위로 결승선을 가로지르며 우승상금 120억 원의 주인공이 탄생했다. 그러나 2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승마에게 상금이 지급되지 않고 있다. 해당 경주마에 금지 약물이 투여된 혐의가 발견됐기 때문이다.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등 스포츠경기에 출전하는 선수들과 같이 경주마는 약물을 통한 부정행위를 차단하기 위해 경주 전후 도핑검사를 거친다. 사우디컵에 출전한 ‘맥시멈 시큐리티’의 제이슨 서비스 조교사는 교묘한 수법으로 도핑검사를 통과했으나 미국 연방검찰의 수사로 인해 약물투여 혐의가 발견됐다. 자국의 최정상 조교사의 파렴치한 불법행위에 미국은 충격에 빠졌고 뉴욕타임스, CNN, 가디언 등 언론에선 연일 관련내용을 특집으로 보도하고 있다. 경주마 도핑 사례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말 도핑은 기원은 확인할 수 없을 만큼 오랜 역사를 가진다. 고대 그리스의 시인 에우리피데스는 ‘말을 더 빠르고 야만적으로 만들기 위해 인육을 먹였다’는 기록을 남겼다. 로마시대에는 ‘전차경주에 출전하는 말에게 벌꿀주를 먹인 사람에겐 십자가형을 내렸다’는 기록도 있다. 경마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1900년경 영국의 조교사 조지 램톤은 약물이 투여된 경주마를 두고 ‘눈에서 불을 뿜고 땀을 비오듯 흘리면서 마치 귀신에 홀린 듯 질주한다. 우승이 확정되고도 계속 달려 벽에 머리를 부딪쳐 죽기도 한다’라고 묘사했다. 1900년대까지는 우승을 위해 경주마에게 마약과 아편을 암암리에 투여했다고 전해진다.

최초의 경주마 도핑검사는 1911년 오스트리아에서 시작됐다. 화학자들은 경주마의 타액을 통해 코카인, 모르핀과 같은 마약성분과 흥분제, 혈관확장제 등의 약물을 검출했고 이는 곧 공식적인 효력을 발휘했다. 이후 경주마 약물검사는 유럽 전역으로 도입됐지만 검출되지 않는 새로운 약물과 투약 방법 또한 진화해 검사를 빠져나가곤 했다. 이런 행위에 국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1947년 미국 시카고에서 ‘경마화학자협회’가 결성됐다. 현재 26개국이 참여하고 있는 이 기구는 매년 100명 이상의 회원이 모여 새로운 정보와 기술을 교류하고 있다.

한국마사회의 도핑검사소  제공 | 한국마사회

한국마사회 또한 45년 전부터 경주마 도핑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국제경마화학자협회의 도핑검사 시험에서 23년 동안 합격했으며 2001년부터 국제공인시험기관 (ISO17025)으로 인증 자격을 유지하는 등 국제적으로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최근 코로나 진단키트가 세계로 진출하듯 한국마사회의 도핑검사 기술 또한 해외로 진출해왔다. 마사회는 지난 15년부터 마카오 경마장의 도핑검사를 대행하고 있다. 마카오 경마장은 출전 경주마들의 혈액을 한국에 보내고 마사회는 이를 분석해 5일 만에 금지약물 사용여부 결과를 통보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경주마의 도핑사례가 발견되고 있다. 대다수는 경주마에 대한 약물 투여가 아닌 다른 원인으로 인해 약물이 검출된 경우다. 관리사가 근육통으로 본인이 사용한 파스가 경주마에 묻어 검출된 경우도 있었고 약물 치료중인 경주마의 소변이 묻은 풀을 먹은 다른 경주마에서 해당 약물이 검출되기도 했다. 한국마사회는 금지약물 검출 시 원인을 조사해서 과실정도에 따라 엄중히 제재하고 있다. 경주마들의 건강과 체력을 위해 사람이 먹기에도 귀한 인삼, 꿀, 붕어즙 등 고급 보양식을 먹이기도 하는데 이중에도 부적합 성분이 발견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경주마는 새로운 음식물을 섭취하기 전 도핑검사소에 성분분석을 의뢰해 복용 가능여부를 확인받는다.

경주마 도핑검사는 약 1000여가지 약품과 성분들을 구분해낸다. 이렇게 촘촘한 검사기술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약물과 수법으로 감시망을 피해 불법을 저지르는 사례들이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사우디컵 불명예 우승마 ‘맥시멈 시큐리티’의 조교사를 포함해 현재 27명의 경주마 관계자들이 신종도핑물질 사용 혐의로 미국에서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도핑검사의 틈새를 빠져나가기 위한 신종 수법과 이를 색출하기 위한 경마화학자들의 반복되는 추격전은 경마의 스포츠성을 두고 벌이는 또 하나의 경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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