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인터뷰 지소연
지소연이 지난 18일 자택이 있는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에서 스포츠서울 창간 35주년 축하 메시지를 들고 포즈를 하고 있다. 강영조기자kanjo@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정다워기자] 한국 여자축구의 간판 지소연(29·첼시FC위민)은 이제 영국 생활 7년 차의 베테랑이 됐다. 2014년 외로운 싸움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하루에도 몇 번씩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팀은 발전했고, 지소연의 존재감은 웬만한 영국 선수보다 커졌다. 스스로 자부심을 느끼며 유럽에서 더 큰 도전을 하겠다는 의지도 확실하다.

◇“열악했던 환경 순식간에 좋아져…리옹·유벤투스 제안 거절했다”

지소연이 처음 첼시에 갔을 때만 해도 영국 여자축구는 세계적으로 크게 인정받는 무대는 아니었다. 미국이나 프랑스, 독일 등에 비해 환경도 열악했다. 지소연은 아시아 최고 수준의 선수로 첼시에서 ‘모셔간’ 선수였지만 연봉이 5000만원 정도에 불과했다. 그마저도 팀 내에서 최고대우였다. 대부분의 선수들이 투잡으로 생활해 오전, 오후 훈련에 9명 정도만 참가해 제대로 팀이 돌아가지도 않았다. 지소연은 “처음에 통장을 보고 너무 깜짝 놀라서 에이전트에게 전화를 했다. 일본(고베 아이낙)에서 받던 것보다 너무 적어서 이렇게 살 수 있을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내가 왜 이 돈을 받고 여기까지 와서 고생해야 하나 생각하며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라고 회상했다.

첼시는 지소연 입단 후로 급격하게 변신하기 시작했다. 여성팀 전용 훈련장과 클럽하우스, 경기장까지 갖췄고, 실력 있는 선수들도 대거 영입해 유럽의 신흥 강호로 떠올랐다. 지난 시즌에는 잉글랜드축구협회(FA) 여자슈퍼리그 우승을 차지했고, 2017~2018, 2018~2019시즌에는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연속으로 4강에 진출하는 강팀이 됐다. 지소연 입단 초기와 달리 이제 선수 전원이 프로 신분으로 축구에만 집중하고 있다. 지소연은 “그때 생각하면 정말 천지개벽 수준으로 팀이 달라졌다. 변화하는 과정을 제 눈으로 목격하며 팀에 대한 자부심이 생겼다”라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창간 인터뷰 지소연

첼시 7년 차에 접어든 지소연은 팀 내에서도 좋은 대우를 받는 베테랑이 됐다. 그는 “이제 연봉도 꽤 된다. K리그1에서도 상위권은 될 것”이라며 웃은 후 “2년 차부터 팀이 달라지면서 연봉도 달라졌다. 팀에서 최상위권에 해당한다. 아시아에서 왔지만 그래도 제가 팀 내에서 입지가 좀 괜찮다. 연차도 오래 됐기 때문에 최근 들어온 선수들 앞에서 요새 한국에서 유행했던 ‘라떼는’도 시전할 수 있다. (웃음) 그때와는 환경이 너무 다르지 않은가”라며 여유롭게 진심 어린 농담을 던졌다.

팀에 대한 애정도 그만큼 크다. 지소연은 첼시에서도 에이스 구실을 하고 챔피언스리그에서도 뛰어 유럽 명문 구단의 관심을 많이 받았다. 프랑스의 리옹과 이탈리아의 유벤투스에서 영입 제안을 받기도 했다. 여자축구 최강국인 미국에서도 러브콜이 온 적도 있다. 그러나 지소연은 번번이 첼시 잔류를 선택했다. 지소연은 “솔직히 솔깃하기는 했다. 확실히 좋은 팀들이고 새로운 도전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라면서도 “막상 떠날 생각을 하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첼시가 성장하는 과정이 곧 저의 인생이기도 했다. 지금 첼시에서도 너무 행복하다. 1년 단위로 팀이 변하는 게 보인다. 비전이 확실한 좋은 팀”이라며 이적 제안을 거절한 이유를 밝혔다. 이어 “얼마 전에 제가 왓츠앱(SNS) 계정이 바뀌어 팀 단체대화방에서 나온 적이 있다. 다들 저에게 무슨 일이 생긴 줄 알고 개인적으로 연락이 오더라. 감독님, 선수들이 모두 이적하냐며 가지 말라고 슬퍼했다. 영문도 모르고 저는 한참 웃었는데 사소해 보이지만 제가 팀에서 사랑받고 있다는 생각에 즐거웠다. 이적하지 않기를 잘했다는 생각도 들었다”라는 일화를 들려줬다.

지소연과 첼시의 계약은 2022년까지다. 무리 없이 재계약이 이뤄질 경우 지소연은 첼시에서 10년을 채울 수 있다. 한국 남자 선수가 유럽에서 10년을 보내는 것도 쉽지 않은데 지소연은 한 팀에서 강산이 변하는 기간을 보낼 가능성이 크다. 지소연은 “꼭 해보고 싶은 도전이다. 굉장히 의미 있는 기록 아닌가. 제가 새로운 발자국을 남기고 싶다. 제가 영국에 온 후 (조)소현(웨스트햄)언니나 이금민(맨체스터 시티) 등이 왔다. 제가 10년을 뛰면 누군가 저보다 유럽에서 큰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첼시와 챔피언스리그 우승도 꼭 해보고 싶다”라는 바람을 얘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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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 | 대한축구협회

◇“올림픽 간절해, 월드컵은 한 번 더”

정확히 1년 전 지소연은 프랑스월드컵에서 엄청난 좌절을 겪었다. 지소연 축구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다. 열심히 준비해 도전했던 월드컵에서 조별리그 3패로 탈락했다. 공교롭게도 같은 기간 폴란드에서 열린 20세 이하(U-20) 월드컵에서 한국축구의 새 역사가 쓰이면서 여자대표팀은 더 초라해졌다. 지소연은 “정말 지금도 생생하다. 축구를 하면서 그렇게 슬펐던 적이 없다. 마지막 경기를 마친 후에 허탈했다. 내가 그만둬야 하나 생각까지 했다. 스스로 못했다는 생각에 자책을 크게 했다”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월드컵에 한 번 더 나가야겠다는 다짐을 한 것도 그때다. “경기장을 떠나기 전에 결심했다. 월드컵은 꼭 한 번 더 나가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은퇴해야겠다는 의지가 생겼다. 그렇게 슬프게 월드컵을 마감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 지소연의 목표는 도쿄올림픽 본선 진출이다. 한국 여자축구는 아직까지 올림픽 무대를 밟은 적이 없다. 어찌 보면 월드컵보다 나가기 힘든 대회가 바로 올림픽이다. 가능성은 충분하다. 한국은 중국과 마지막 승부를 앞두고 있다. 다음해 2월 열리는 두 차례 맞대결만 넘으면 도쿄로 갈 수 있다, 지소연은 “정말 간절하다. 꼭 가보고 싶다.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월드컵에서 우리에게 실망하신 분들이 많을 텐데 그게 우리의 진짜 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다. 쉽지 않겠지만 중국을 넘어 본선에 반드시 가겠다. 만으로 20대 후반인데 다음 올림픽은 아마 어렵지 않겠나. 이번이 마지막 도전이니 꼭 이루겠다”라는 의지를 드러냈다.

올림픽 후에는 마지막이 될 월드컵에 한 번 더 도전하겠다는 구상이다. 지소연은 “여전히 할 일이 많다. 많은 분들이 저를 여자축구의 간판, 얼굴이라고 이야기하지만 갈 길이 멀다. 요새 축구 하는 친구들 중에서 저를 잘 모르는 선수들이 많다. 얼마 전에도 지인 학교에 갔는데 누구냐고 물어보더라. 제가 여자축구선수들의 롤모델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약간 충격을 받기도 했다. (웃음) 아직 멀었구나 생각이 들었다”라면서 “월드컵은 한 번 더 가야 한다. 1년 전 아픔을 꼭 치유하고 싶다. 프랑스월드컵이 제 마지막 월드컵이 아니기를 바라고 있다”라고 말했다.

다행히 지소연은 큰 부상을 당한 적이 없어 선수로서 ‘롱런’이 예상된다. 토트넘의 손흥민처럼 지소연도 강철몸을 자랑한다. 지소연은 “사실 밖에 잘 다니지를 않고 운동만 하는 편이다. 얼마 전부터는 피아노를 배우고 있지만 외부 생활을 많이 즐기지는 않는다”라면서 “몸 관리를 열심히 하기 때문에 부상도 잘 당하지 않는 것 같다. 작은 부상은 당하지만 크게 다쳐 오래 뛰지 못한 적은 없다. 축복받은 것 같다. 더 많은 것을 이룰 때까지 건강하게 선수 생활을 지속하고 싶다”라는 계획을 밝혔다. 현재 A매치 123경기에 출전한 지소연의 대표팀 출전 기록이 얼마나 더 늘어날지 지켜볼 일이다.

weo@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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