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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장강훈기자] LG 유강남이 두산 이영하를 상대로 좌중간 깊숙한 적시타를 때려내자 3루 관중석에서는 함성과 박수가 동시에 터져 나왔다. 유강남이 타격하기 전 이미 스타트를 끊은 김용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홈까지 내달려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1-2였던 전광판 스코어가 3-2로 바뀐 순간, 개막 후 82일 만에 문을 연, 지난 26일 잠실구장 풍경이다.
한 야구팬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동영상에는 그동안 듣지 못한 함성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김용의가 2루로 출발할 때 1루 관중석에서 ‘간다!’고 외친 게 3루 관중석까지 들릴 정도로 적은 관중이 들어섰지만, 더그아웃에서 들려오는 응원 소리만 퍼지던 이 전의 야구와 확실히 다른 소리가 들렸다. 지난해 한국시리즈 이후 처음 관중들의 함성이 들려왔으니, 어림잡아 9개월여 만이다. 낯설기도, 반갑기도 한 묘한 감정이 교차했다. “소름 돋았다”는 선수들의 말처럼, KBO리그 구장 다운 효과음이 10개구단 선수들의 심장을 더욱 빠르게 움직이게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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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띈 점은 영상에 찍힌, TV중계화면에 잡힌 관중들은 모두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장마전선의 영향으로 폭염이 기승을 부리지는 않지만, 절기상 중복을 넘어선 한여름에 마스크를 쓴 채 함성을 지른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KBO리그 팬들은 한 명이라도 더 많은 팬이 구장을 찾을 수 있다면, 이 정도 불편함은 기꺼이 감수해내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4인 가족과 올해 첫 구장 나들이를 계획했던 한 팬은 “1인당 두 장밖에 구매해야 해 어쩔 수 없이 아내와 아이를 집에 남겨두고 왔다. 지금은 10% 규모로 관중석을 개방했지만, 빨리 코로나 사태가 진정돼 온 가족이 함께 응원하고 싶다. 그러려면 약간의 불편함은 감수해야 한다. 우리 팬 모두 같은 마음일 것”이라고 말했다.
KBO리그의 응원문화는 전 세계 프로스포츠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흥과 멋을 갖고 있다. 일사불란한 동작에 선수별 응원가까지 마련돼 있으니 그 자체로 하나의 축제다. 이날 잠실구장 관중은 2424명에 불과했지만, 이들이 내뿜는 열기는 2만 관중 부럽지 않았다. 5000명, 1만명 수준으로 관중이 늘어나면, KBO리그 특유의 흥겨운 응원도 ESPN 등을 타고 전 세계로 뻗어 나갈 가능성이 높다. 문화체육관광부는 프로스포츠가 열리는 각 구장에 관중 입장을 허용하면서 ‘침방울이 튈 수 있는 큰 응원을 자제해 달라’고 권고했다. 마스크를 쓴 채라면, 소리를 질러도 되지 않을까. 코로나 시대 이전으로 완전히 돌아갈 수는 없지만, 관중석에서 내지르는 함성은 스포츠 팬의 본능이라, 물리적으로 제어하기 힘들다. 팬들도 당연하다는 듯 마스크를 쓴 채 함성을 질러 새로운 응원 패러다임을 만들 가능성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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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코로나 시대에 유료 관중을 들인 건 KBO리그가 처음이 아니다. 프랑스 프로축구가 지난 13일 유관중 경기를 열었고, 일본프로야구도 5000명 범위에서 관중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관중들이 음주를 즐기거나 관중석을 벗어나 밀접촉하는 모습이 다수 포착됐다. 프랑스 축구팬들은 마스크 착용도 하지 않고 운집해 응원해 코로나 재확산 우려를 샀다. 거리두기를 생활화하는 데다 마스크 착용 등 개인 방역수칙을 철저히 지키면서도 마음껏 응원을 하는 KBO리그 팬들과 뚜렷이 대조되는 모습이다.
첫걸음은 내디뎠다. 야구팬의 자발적인 노력으로 관중 수가 전체의 50% 수준까지 올라간다면, 이는 모두 팬 덕이다. 코로나 방역 모범국 위상에 걸맞은 팬들의 성숙함이 또 한 번 세계를 놀라게 할 채비를 하고 있다.
zzang@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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