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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윤세호기자] “그저 운이 좋았다. 적응하는 과정이라 신인왕은 생각해본적 없다.”
몸을 낮출수록 가치는 올라간다. 한국인 빅리거 역사상 가장 화려한 데뷔 시즌을 보내고 있는 ‘스마일 K’ 김광현(32·세인트루이스)이 급기야 전설을 소환하는 경지에 올랐다. 눈부신 역투로 꿈의 0점대 평균자책점에 도달하자 메이저리그 레전드인 페르난도 발렌수엘라(전 LA다저스)가 회자됐다.
김광현은 2일(한국시간) 그레이트 아메리칸 볼파크에서 열린 신시내티와 메이저리그 정규시즌 원정경기에 선발 등판해 5이닝 무실점 호투했다. 상대 선발투수가 이날 전까지 7경기에서 5승 1패 평균자책점 1.94로 내셔널리그 사이영상 후보로 꼽힌 소니 그레이라 팽팽한 투수전이 예상됐다. 그레이트 아메리칸 볼파크는 메이저리그 타자들이 심리적으로 가장 안정감을 느끼는 전형적인 타자 친화 구장이라 긴장감이 높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세인트루이스 타선은 1회초에만 안타 5개와 볼넷 2개를 묶어 6점을 뽑아내 기선을 제압했다.
1회초 2사 후 몸을 풀기 시작해 30분 넘게 대기해야 했던 김광현은 선두타자 조이 보토를 볼넷으로 내보내 집중력이 흐트러진 듯 한 모습을 보였지만, 곧바로 더블플레이를 유도하며 투구 밸런스를 회복했다. 김광현도 “1회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타선이 점수를 많이 뽑아) 1회에 내가 흔들리면 난타전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경기였다”고 돌아봤다. KBO리그 경험으로 쌓은 경기 흐름을 읽는 능력이 자칫 늘어질 수 심리를 팽팽하게 당기는 동력이 됐다. 고비를 넘기자 숨쉴틈 없는 광속 투구로 신속하게 아웃카운트를 늘려갔다. 타자와 대결에서 흐름을 완벽하게 주도했고 시즌 2승째를 거두며 평균자책점을 0.83까지 내렸다. 선발 등판한 4경기 평균자책점은 무려 0.44에 달한다. 3연속경기 비자책으로 선발 등판 4경기에서 자책점은 1점 밖에 없다.
평균자책점 0.44는 평균자책점 역사에 남을 기록이다. 메이저리그는 1913년부터 평균자책점을 공식화했는데 신인 왼손투수가 첫 4번의 선발 등판에서 평균자책점 0.44 이하를 기록한 경우는 단 한 번 밖에 없었다. 1981년 신인왕과 사이영상까지 동시석권한 다저스 왼손투수 발렌수엘라가 평균자책점 0.25를 기록한 게 유일하다. 발렌수엘라는 통산 173승 153패 평균재착점 3.54를 기록했는데, 데뷔시즌인 1981년 내셔널리그 신인왕, 사이영상, 탈삼진 1위를 석권했다. 선발로 전환한 뒤 마운드 위에서 뽐내는 김광현의 퍼포먼스가 빅리그 레전드를 소환할만큼 완벽하다는 의미다.
예상을 뛰어넘는 활약이지만 과정은 만만치 않았다. 개막 때 김광현의 보직은 마무리였다. 지난 7월 25일 개막전에서 데뷔전을 치러 세이브를 달성했다. 하지만 이후 세인트루이스 선수단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진자가 속출했고, 김광현은 다시 선발진에 합류했다. 평범한 선수였다면 적응을 못해 번아웃이 될만 한 과정을 딛고 우뚝 선 셈이다.
잇딴 호투에 현지에서도 “아직 논의를 하지 않았다면, 김광현의 신인왕 수상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지난 2013년 메이저리그에 화려하게 데뷔한 류현진도 체형과 투구 유형 탓에 발렌수엘라를 수환했고, 신인왕 투표에서 한국인 빅리거 최초로 득표(4위)했다. 류현진의 데뷔시즌보다 더 강한 임팩트로 출발한 김광현이 코리안빅리거 중 누구도 이루지 못한 신인왕에 천천히 다가서고 있다.
bng7@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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