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년 회장 취임2

[스포츠서울 이웅희기자] 삼성 이건희 회장이 25일 타계하면서 초일류 기업의 꿈을 위해 평생을 바친 고인의 발자취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이 회장이 1987년 2대 회장에 올라 삼성그룹을 이끌며 이룩한 경영성과는 매출액만 봐도 한눈에 알 수 있다. 이 회장의 취임 당시 10조원이었던 매출액은 2018년 387조원으로 약 39배 늘었고 이익은 2000억원에서 72조원으로 359배, 주식의 시가총액은 1조원에서 396조원으로 무려 396배나 증가했다. 외형적인 성장 뿐만이 아니다. 선진 경영시스템을 도입하고 도전과 활력이 넘치는 기업문화 만들어 경영체질을 강화했다. 삼성이 내실 면에서도 세계 일류기업의 면모를 갖추도록 한 게 주효했다.

93년 신경영 선언 당시
1993년 신경영 선언 당시 이건희 회장. 삼성그룹

이 회장은 1993년 ‘삼성 신경영’을 선언하고 경영 전 부문에 걸친 대대적인 혁신을 추진하며 재계를 놀라게 했다. 혁신의 출발점을 ‘인간’으로 보고 ‘나부터 변하자’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인간미와 도덕성, 예의범절과 에티켓을 삼성의 전 임직원이 지녀야 할 가장 기본적인 가치로 보고 양을 중시하던 기존의 경영관행에서 벗어나 질을 중시하는 쪽으로 경영의 방향을 선회했다. 이같은 노력을 통해 삼성은 1997년 한국경제가 맞은 사상 초유의 IMF 위기와 2009년 금융 위기 속에서도 성장을 거듭했다. 2020년 브랜드 가치는 623억 달러로 글로벌 5위를 차지했고 스마트폰과 TV, 메모리반도체 등 20개 품목에서 월드베스트 상품을 기록하는 등 세계 일류기업으로 도약했다.

이 회장의 경영철학은 ‘인간중시’와 ‘기술중시’를 토대로 질 위주의 경영을 실천하는 ‘신경영’이었다. 핵심은 현실에 대한 명확한 인식과 자기 반성을 통해 변화의 의지를 갖고 질 위주 경영을 실천해 최고의 품질과 최상의 경쟁력을 갖는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인류사회에 공헌하는 세계 초일류기업이 되자는 것이었다. 이는 삼성의 경영이념인 ‘인재와 기술을 바탕으로 최고의 제품과 서비스를 창출하여 인류사회의 발전에 공헌한다’에 잘 나타나 있다.

학력과 성별, 직종에 따른 불합리한 인사 차별을 타파하는 열린 인사를 지시했고 삼성은 이를 받아들여 ‘공채 학력 제한 폐지’를 선언했다. 이 때부터 연공 서열식 인사 기조가 아닌 능력급제를 전격 시행했다. 이 회장은 인재 확보와 양성을 기업경영의 가장 중요한 과업으로 인식했고 삼성의 임직원들이 세계 각국의 다양한 문물을 배우고 익힐 수 있도록 지역전문가, 글로벌 MBA 제도를 도입해 5000명이 넘는 글로벌 인재를 양성했다. 인재제일의 철학을 바탕으로 ‘창의적 핵심인재’를 확보하고 양성하는데도 힘쓴 것이다.

121013 이건희 회장 베트남 사업장 방문 2
2012년 베트남 사업장 방문 당시 이건희 회장. 삼성그룹

불모지나 다름없는 환경에서 반도체사업에 착수한 점도 이 회장의 뚝심과 승부사 기질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반도체 산업이 한국인의 문화적 특성에 부합하며 한국과 세계경제의 미래에 필수적인 산업이라 판단하고 1974년 반도체사업에 착수했다. 이후 끊임없는 기술개발과 과감한 투자로 1984년 64메가 D램을 개발하고 1992년 이후 20년간 D램 세계시장 점유율 1위를 지속 달성해 2018년에는 세계시장 점유율 44.3%를 기록했다. ‘기술에 의해 풍요로운 디지털 사회를 실현할 수 있다’는 이 회장의 믿음이 그 기반이 됐다.

이 회장은 사회공헌활동을 기업에 주어진 또 다른 사명으로 여기고 이를 경영의 한 축으로 삼았다. 국경과 지역을 초월해 사회적 약자를 돕고 국제 사회의 재난 현장에 구호비를 지원하고 있다. 1994년 삼성사회봉사단을 출범시켜 조직적인 활동을 전개하고 있고 특히 기업으로서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첨단장비를 갖춘 긴급재난 구조대를 조직해 국내외 재난 현장에서 구호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 회장의 독특한 경영철학은 임직원들에게도 영향을 미쳐 매년 연인원 50만명이 300만 시간 동안 자발적으로 고아원, 양로원 등의 불우 시설에서 봉사하고 자연환경 보전에 땀 흘리고 있다.

삼성을 ‘한국의 삼성’에서 ‘세계의 삼성’으로 변모시킨 이 회장은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그가 남긴 성과와 경영철학은 삼성 뿐만 아니라 한국 경제의 구석구석에 깊게 각인돼있다.

iaspire@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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