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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스포츠서울 윤세호기자] 모두가 놀랄 수밖에 없는 투구였다. 예전부터 그를 지켜본 이들에게는 더 그랬다. 불과 일 년 전까지만 해도 보조무기에 불과했던 커브가 더할나위 없는 결정구로 진화했다. 최근 모습이라면 메릴 켈리가 그랬듯 그 또한 빅리그에서 충분히 선발투수로 활약할 수 있다. 메이저리그(ML) 시절 미완의 대기에 불과했던 두산 크리스 플렉센(26)이 김원형·정재훈 코치와 만나 괴물로 진화했다.
그야말로 ‘난공불락’이다. 150㎞ 패스트볼을 스트라이크존 상단과 하단에 자유롭게 구사하면서 폭포수 커브를 더한다. LG 로베르토 라모스처럼 어퍼 블로우 스윙을 하는 타자 입장에서는 마땅한 공략법이 없다. 지금의 플렉센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플렉센 스스로 무너지는 것 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정규시즌 마지막 5경기에서 기록한 평균자책점 0.85는 그냥 나온 숫자가 아니다.
처음 맞이한 포스트시즌이었지만 경험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플렉센은 지난 4일 LG와 준플레이오프(준PO) 1차전에서 6이닝 4안타 1볼넷 11탈삼진 무실점으로 맹활약하며 두산의 4-0 승리를 이끌었다. 경기 후 LG 류중일 감독은 물론 두산 김태형 감독 또한 플렉센의 괴력투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류 감독은 “플렉센을 공략하지 못한 게 패인이다. 정말 너무 좋은 공을 던지더라”며 고개 숙였고 김 감독은 “플렉센이 생각보다 더 잘 던졌다. 처음 포스트시즌이라 걱정도 조금 했는데 내가 괜한 걱정을 했다”고 미소지었다.
올시즌 중반까지만 해도 이정도로 압도적이지는 않았다. 시즌 전 청백전 기간에도 커브를 구사하기는 했는데 완성도가 높지는 않았다. 반전은 이천에서 이뤄졌다. 부상으로 인해 7월 중순부터 8월까지 한 달 반 동안 이천 베어스파크에서 재활에 임했고 재활기간 커브를 집중 연마했다. 플렉센은 “사실 커브는 지난겨울부터 과제로 삼았던 구종이다. 더 나은 투수가 되기 위해서는 커브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꾸준히 던졌다”면서 “두산에 와서 김원형, 정재훈 코치님에게 커브를 배운 것도 큰 도움이 됐다. 이천에서 재활하면서 그립에도 변화를 줬는데 지금 커브가 만족스럽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현역시절 절정의 커브를 구사했던 김원형 코치와 타자로부터 타이밍을 빼앗는 능력이 탁월했던 정재훈 코치의 도움이 플렉센의 진화를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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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렉센은 뉴욕 메츠에서 관심을 두고 육성했던 빅리그 유망주였다. 2017년 9차례 빅리그 선발 등판 기회를 얻었고 이후 2년 동안에는 주로 중간 투수로 등판했다. 꾸준히 구위를 향상시켰고 지난해 패스트볼 평균구속 94.3마일(151㎞), 최고 구속은 97마일까지 찍었다. 하지만 패스트볼과 조화를 이룰 두 번째 구종이 마땅치 않았다. 당시에는 커브의 움직임도 지금처럼 크지 않았다. 지난해 커브 구사율은 3.6%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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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외국인선수들이 KBO리그에서 경험을 쌓으며 진화한다. 켈리와 에릭 테임즈, 조쉬 린드블럼, 그리고 멜 로하스 주니어가 그렇다. 플렉센 또한 완성형 선발투수로 거듭나고 있다. 지난해 12월 “젊고 강한 공을 던지는 투수다. 앞으로 성장 가능성도 높다”며 플렉센을 영입했던 두산의 선택 또한 적중했다.
bng7@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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