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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토요일 진료시간이 끝날 무렵엔 병원도 여느 직장처럼 의료진뿐만 아니라 전 직원이 주말의 여유로운 휴식을 기대하며 들뜨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날 상황은 달랐다. 30대 초반의 젊은 환자가 사색이 된 얼굴로 내원했기 때문이다.
“허리가 너무 아파 걷기도 힘들고 항문 감각도 없어요.”
진료실에 들어올 때 환자의 걸음걸이가 이상함은 이미 감지한 터였다. 그런데 항문 감각이 없다면 ‘마미총 증후군’일 가능성이 농후했다. 마미총은 척추관을 타고 지나가는 신경다발로 대소변을 관장한다. 따라서 디스크가 터지거나 척추관 협착증으로 척추관이 좁아져 이 신경을 누르면 감각이 마비돼 대소변을 가리기 힘들다. 다리 근력이 떨어지고 감각이 마비돼 보행이상도 동반된다.
급하게 요추 MRI 검사를 한 결과 거대 추간판탈출증(허리디스크)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예상했던 대로 마미총 증후군이었다. 이 질환은 빠른 진단과 수술을 하지 않으면 평생 대소변 장애나 보행장애를 갖게 될 수 있다. 최대한 빨리 수술해야 하는 응급상황인데, 설상가상으로 이날은 전공의 파업으로 인해 대학병원 응급실이 마비돼 진료가 지연되던 때였다.
응급실로 환자를 이송하면 수술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는 판단 하에 본원에서 응급수술을 진행하기로 했다. 30대 젊은 환자가 평생 소변줄을 차고 소변을 보거나 대변 주머니를 달고 살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아찔했다.
환자의 미래를 위해 척추수술 전문의, 마취과 전문의, 마취간호사, 수술방 간호사 등 여러 명이 수술 방으로 모였다. 토요일 오후의 응급 호출임에도 누구 하나 불평 없이 와주었다. 수술은 다행히 성공적으로 마무리됐고, 환자의 대소변 기능 또한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왔다. 다리 감각은 대소변 기능만큼 빨리 돌아오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회복돼 지금은 예전의 활기찬 걸음걸이를 되찾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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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크가 삐져나와 신경을 누르는 허리디스크라 해도 다 수술할 필요는 없다. 허리디스크 진단을 받은 환자 중 수술적 치료가 필요한 환자는 5% 내외에 불과하다. 30대 젊은 환자처럼 갑자기 디스크가 터져 마미총을 누르는 경우도 드물다. 대개는 디스크가 조금 삐져나왔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많이 돌출되면서 신경을 눌러 증상이 악화된다.
허리디스크라도 삐져나온 정도가 약해 통증만 있다면 여러 가지 비수술적 치료를 시도해본 후 수술을 고려해도 늦지 않다. 다만 30대 젊은 환자의 경우처럼 마미총 증후군이 나타나면 바로 수술해야 한다. 항문 주위의 감각이 없거나 대·소변 장애가 나타나고 발목에 힘이 없는 등 근력저하가 발생했다면 응급상황이다.
빨리 수술을 해야 함에도 △환자의 경제적 상황이나 스케줄을 이유로 미루거나 △허리디스크는 수술하면 안 된다는 잘못된 신념으로 증상을 방치하다가 치료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원래대로 돌릴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쳐 평생 장애를 안고 고통스럽게 사는 환자가 더 이상 없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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