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조은별기자] “사람들은 내가 하루아침에 스타가 된 것처럼 말한다. 나는 늘 좋은 작품을 찍고 좋은 배우로 성장하고 싶었는데 시청률 좀 잘 나왔다고 갑자기 ‘제2의 전성기’라고 하니 자존심이 살짝 상했다.(웃음) 그래도 일단 즐기려고 한다.”

‘칸의 여왕’. 이 한마디 외에 수식어가 필요없는 배우 전도연이 긴 침묵을 깨고 TV와 OTT를 모두 거머쥐었다.

지난달 종영한 tvN 드라마 ‘일타스캔들’에서 10세 연하의 후배 배우 정경호와 ‘지천명 로맨스’를 펼치더니 같은 달 31일 공개된 넷플릭스 영화 ‘길복순’(감독 변성현)에서는 킬러로 변신, ‘지천명 액션’으로 화면을 찢었다.

영화는 공개 직후 사흘만에 961만 시청 시간을 기록하며 넷플릭스 글로벌 비영어 영화 부문 1위에 올랐다. 지난 2월 ‘73회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첫 공개됐을 때 카를로 샤트리안 집행위원장은 “전도연은 그에게 칸 여우주연상을 안긴 ‘밀양’과는 또다른 어머니를 연기했다”고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이 영화가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되는 걸 촬영 후에 알았다. 하하. 극장에서 개봉 못한 아쉬움을 베를린 영화제 시사회를 통해 달랬다. 그래도 극장이 아닌 넷플릭스라면 부담이 덜 하지 않을까 했는데 OTT는 나름대로의 별세계더라. 어떤 플랫폼이든 힘들게 촬영한 작품이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길 바라는 마음이다.”

◇전도연 원톱으로 투자 받을 수 있을까 걱정…제작 돌입 뒤 4개월간 몸 만들어

‘길복순’의 변성현 감독은 영화판의 소문난 전도연 팬이다. 설경구의 소개로 만난 변감독이 ‘성덕’이 된 기쁨에 취해 그를 주연으로 100억원대 예산의 영화를 만들겠다고 했을 때 전도연은 “과연 투자가 될까”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고 한다.

중년 여성 배우를 원톱으로 한 영화의 성공사례가 전무했기에 ‘칸의 여왕’조차 걱정이 앞설 만큼 영화판은 척박하고 냉정했다. 끝내 변감독이 투자에 성공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전도연은 ‘해내야 한다’고 스스로 주문을 걸었다.

등근육을 보이기 위해 넉달동안 절주하며 단백질 위주로 식단 조절을 했다. 운동과 액션 준비를 병행했다. 그는 “‘전도연에게 뭐가 더 있겠어‘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것도 할 수 있는 배우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라며 “이건 내 몸이 좀 부서져도 해내야겠다는 마음이 컸다”고 했다.

50대의 몸은 그의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크고 작은 부상이 잇달았다. 영화 속에서 가장 명장면으로 꼽혔던 후배 킬러 영지(이연 분)를 펜 하나로 제압하며 씩 웃는 섬뜩한 장면의 액션은 대역배우가 촬영했다.

스승이자 고용주인 MK엔터테인먼트 차민규 대표(설경구 분)와 상상 액션신에서 보여준 날아치기 장면도 대역배우가 대신했다. 전도연은 “‘클라스’를 보여줬어야 했는데 대역배우가 액션신을 대신했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으며 “그래도 첫 장면부터 찢지 않았나”라고 겸연쩍다는 듯 웃었다. ‘짬에서 오는 바이브’가 물씬 느껴지는 미소였다.

◇워킹맘은 만국 공통의 화두, 자연스럽게 나이드는 게 목표

‘길복순’은 ‘워킹맘 킬러’라는 이질적인 소재로 사회의 이중적인 모순을 꼬집는다.

사람 죽이는 일이 직업인 킬러도 내 자식이 타인을 괴롭히는 직업을 갖는 것을 원치 않는다. ‘일타 킬러’로 대표에게 능력을 인정받지만, 자신을 치고 올라오려는 후배 킬러들에게는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다.

실제 전도연의 딸 길재영(김시아 분)은 전도연의 친딸 강재영 양의 이름을 땄다. 나이도 동갑이다. 그는 “딸이 중2병은 무난히 지나간 것 같지만 세상에서 나를 가장 무시하는 사람”이라고 웃었다.

“워킹맘은 전세계 공통의 주제다. ‘길복순’은 무자비한 킬러의 복수보다 엄마가 처음인 한 여성이 성장해 가는 이야기를 다뤘다는 점에서 해외에서도 공감을 얻은 것 같다. 선후배관계도 마찬가지다. 후배들이 열심히 해서 좋은 작품을 할 때 내가 시기한 적은 있다. 그건 시기라기보다 경쟁이다. 재영 역의 시아에게도 우리는 카메라 앞에서 동료라고 얘기하곤 한다.”

전도연은 이날 인터뷰 자리에 화장기 하나 없는 민낯으로 나타났다. 나이를 가늠하기 힘든 물광 피부가 눈에 띄었다. 실제로 그는 동네 운동장에서 조깅으로 몸매를 가다듬고 대중 음식점에서도 종종 얼굴을 가리지 않은 채 식사하는 모습이 팬들의 눈에 띄곤 한다. 한때는 피부과도 전혀 가지 않았다.

전도연은 “‘일타스캔들’ 출연 뒤 욕먹고 나서 리프팅 레이저도 받고 마사지도 열심히 받고 있다”고 손사래를 쳤다.

“젊은 시절 전도연이란 배우는 당시 ‘미’의 기준에 들지 못했다. 결국 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중요하다. 나이를 먹는 건 누구든 피할 수 없다. 다만 자연스럽게 늙고 싶을 따름이다.”

mulgae@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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