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리그 41주년을 맞은 한국 프로야구는 여전히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그러나 여자 야구는 프로야구가 성장한 41년 동안, 제자리걸음이다. 이에 스포츠서울은 한국 여자야구의 현주소를 알아보고 가야 할 방향성을 제시하고자 한다.<편집자주>

[스포츠서울 | 람틴(홍콩)=황혜정기자] ‘고시엔(甲子園)’.

듣기만 해도 두근거리는 이 세 글자는 ‘일본 전국 고교야구대회’ 중 최고 권위를 자랑한다. ‘고시엔’은 십대 소년들의 땀방울과 열정으로 대변되는 일종의 ‘청춘’의 상징과도 같다. 1915년 도요나카 구장에서 열린 전국 중학교 우승 야구대회가 시초다.

그러나 이 대회는 100년 넘게 남성의 전유물이었다. 그러던 ‘고시엔’이 지난 2021년부터 여자부를 창설하며 ‘고시엔 고등학교 여자야구 전국대회’를 개최했다. 일본 여자야구계의 기나긴 꿈이 실현된 순간이었다.

지난달 21일 홍콩에서 개막한 ‘2023년 아시안컵(BFA)’에서 스포츠서울과 만난 메구미 키타(40)는 아시아야구연맹(BFA) 기술위원이다. 메구미는 전(前) 일본 여자야구 국가대표팀 감독이자 현(現) 일본 최고 야구 명문고등학교인 리세이샤(Riseisha)고등학교 여자야구부 감독이기도 하다.

메구미는 “일본에 ‘여자야구 고시엔’이 생기며 여학생들에게 엄청난 동기부여가 됐다”라고 했다. 2009년에 5개에 불과했던 일본 고등학교 여자야구부는 2021년에 43개로 늘어났고, 2023년인 현재 60개나 된다.

그에 반해 대한민국은 여학생을 위한 어떠한 야구부도 존재하지 않는다. 여자 사회인 야구팀만 전국에 약 50개 존재할 뿐이다. 이 때문에 중학교까지 ‘리틀야구단’에서 야구를 하던 여학생들은 고등학교에 진학하며 야구를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 야구를 할 곳이 없기 때문이다.

반면, 일본은 야구를 하고 싶어 하는 여학생을 위한 단계별 진로가 잘 설계돼 있다. 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로 이어지는 엘리트 야구부에 이어 국가대표팀과 실업팀이 탄탄하다. 선수 은퇴 후엔 일선 학교로 가서 지도자로 경력을 이어간다.

메구미는 “고시엔을 경험한 여학생들이 야구의 끈을 놓지 않고 국가대표까지 되겠다고 하는 이들이 많다. 일본은 여학생이 야구를 하면 길이 있으니 어릴 때부터 야구를 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며 미소 지었다.

일본 고등학교에 여자야구부가 많아진 것은 역설적으로 ‘인구 감소’였다. 메구미는 “일본 소도시에 인구 감소 문제가 심각해지자, 고등학교에서 여자야구부를 창설해 학생들을 모았다. 그러면서 여자야구부가 늘어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인식 변화’도 한몫한다. 메구미는 “야구를 하려는 여학생이 많아진 것도 여자야구부가 늘어난 계기”라고 덧붙였다.

일본에는 여학생을 위한 ‘고시엔’ 뿐만 아니라 초등학생인 여학생을 위한 ‘초등학교 여자야구 전국대회’도 있다. 그만큼 어릴 때부터 기초를 잘 닦아오며 야구를 하는 여학생이 많다. 메구미는 “그렇게 실력이 올라가며 현재 일본 여자 고등학생 야구 선수들이 10년 전 여자야구 국가대표팀 수준으로 올라섰다”고 했다.

한국은 성과를 거둬야 지원이 뒤늦게 따라오는 시스템이다. 꾸준한 지원을 받으며 성과를 내는 구조가 아니다. 메구미는 지원이 먼저냐 성과가 먼저냐는 물음에 즉답은 피했지만 대한민국 선수들 한 명 한 명이 소중한 자원이라고 했다.

메구미는 “내가 어렸을 때 사정은 지금의 한국과 비슷했다. 지원도 없이 그저 야구를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공을 던졌다. 내 생각엔 한국의 어린 선수들을 위한 미래가 있었으면 한다.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은 젊은 선수들로 구성됐다. 이 선수들이 한국의 미래이기 때문에 야구를 그만두지 않도록 소중히 지켰으면 한다. 그렇게 된다면 성과는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야구가 좋아해서 야구를 하는 어린 소녀들을 위한 진로를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이들이 야구를 계속 이어갈 수 있게끔, 꿈을 꿀 수 있게끔 하는 것이 여자야구 저변을 넓힐 수 있는 방책이다. 일본은 그것을 해냈고 이미 ‘세계랭킹 1위’임에도 계속 발전시켜가고 있다. et16@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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