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계속 무거운 주제를 다룬 만큼 이번 주는 조금 가벼운 분위기로 가보자. 필자의 수업 시간에 한 수련생이 재밌는 이야기를 했다. 자기는 MBTI 성향에 ‘I’가 들어가서 갑자기 연습 파트너를 바꾼다던가, 사람이 너무 북적거리면 오히려 동작을 버벅거린다는 것이다.
필자는 MBTI가 요즘 무슨 중요한 기준이라도 되는 것처럼 자주 그리고 중요하게 다뤄지는 것을 그다지 좋게 보지 않는다. 필자 역시 운동심리학을 배우던 시절 SNS에 돌아다니는 것보다 훨씬 복잡한 질문지로 MBTI 테스트를 해 본 적이 있지만,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60억 인구의 개성이 다들 다를진대, 고작 16개로 성향을 나눠 선입견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호신술로 뭔가를 배우기로 마음 먹었다면 일단 자신의 몇 가지 성향을 돌아보고 고르면 좋다. 올해 초 다뤘던 ‘호신술, 어디에서 배우면 좋을까?’ 이야기의 확장판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본격적으로 이야기하기 전에 몇 가지 전제부터 말한다. 지금부터 하는 설명은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다. ‘E성향이 강한 I’가 있는 것처럼 칼로 자르듯 기준을 나누기보다는 ‘아, 나는 이렇지, 그럼 이것부터 시작해볼까?’의 자세가 중요하다. 그리고 본인이 재미를 느끼면 어차피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다른 것도 배우게 될 것이다.
먼저, ‘호승심’의 유무. 여기서 말하는 호승심이란 승부욕이 있으면서 승패 상관없이 승부를 즐기는 심리다. 그리고 ‘승부를 내다보면 상처나 부상 쯤은 있을 수 있지’라는 생각도 포함된다. 이런 분들은 크게 고민할 필요가 없다. 복싱, 무에타이, 유도, 레슬링 등 전세계적으로 통일된 시합룰이 있고 스파링이나 경기 자체가 수련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종목을 선택하면 된다.
그 다음에는 다른 칼럼에서도 언급한 내용인데, ‘때리고 맞는 건 크게 상관없는데 관절이 꺾이는 건 좀 무섭다’라면 복싱이나 무에타이를, ‘관절을 비틀고 꺾는 건 괜찮지만 타격은 누가 날 툭 치는 것조차 짜증난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유도, 레슬링, 주짓수 등을 선택하면 비교적 안전하고 재밌게 수련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종류를 고르는 사람들은 몸 형태의 차이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파워, 순발력 등 운동능력이 어느 정도 받쳐주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승부욕은 있으나 지는 것은 너무 싫고 짜증난다. 그런데 저 사람은 내가 아무리 훈련해도 신체 조건이나 운동능력 등에서 넘을 수 없는 벽이 있다. 매번 스파링을 할 상황도 안 되고, 신체 능력이 최정점을 찍을 나이는 좀 지났다. 이런 분들께는 ‘무기’를 다루는 무술을 추천한다.
필리핀, 태국 등 동남아에서 발전한 ‘칼리’, ‘크라비크라봉’ 등의 무술은 짧은 스틱이나 나이프 등을 주로 다루며 움직임이 다채로우면서 굉장히 빠르다. 익숙해지면 볼펜 하나만 쥐고 있어도 호신술을 발휘할 수 있다. 액션영화 ‘본’ 시리즈나 ‘아저씨’에서 차용한 무술이 바로 칼리이며, 이는 전세계 특수부대들도 자신들에게 맞게 변화시켜 익히고 있다.
무기술인 만큼 힘이 세지 않아도 한방 한방이 치명적이며 승부가 순식간에 나기 때문에 하수가 상수에게 이기는 경우도 맨손 무술보다는 자주 볼 수 있다. 그리고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흉기를 쓰는 사건이 많이 일어나고 있는데 이에 대비한 연습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어제 배운 것을 오늘 당장 실전에서 사용할 만큼 급하지 않고, 타고난 신체 조건이나 운동 능력이 특별하지 않는 경우, 그리고 오랫동안 부상없이 꾸준히 수련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흔히 전통무술이라고 부르는 종목을 추천한다. 태극권 등 중국 전통무술이 대표적이다.
근현대적인 스포츠 경기로 발전하기 전 칼과 창이 전쟁에서 쓰이던 시절에 발전한 무술인 만큼 복싱이나 레슬링처럼 스파링이나 경기로 실력을 끌어올리기는 어렵지만, 그만큼 지나친 승부욕 등으로 무리해서 다칠 확률은 현저하게 줄어든다.
최근 ‘전통무술은 실전성이 없다’며 비판하는 분위기도 있지만 예전과 달리 최근 젊은 지도자들은 전통무술을 현재의 호신술로 충분히 사용할 수 있도록 ‘활용 조건을 어떻게 만드는가’부터 다양한 예시와 효율적인 연습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꾸준히 연구하는 있는 지도자를 만난다면, 전통무술도 호신용으로 뛰어난 효과를 발휘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성향에 맞는 호신무술 고르기는 이 정도로 분류할 수 있다. 더 추가하면 앞선 칼럼에서도 얘기했듯, 총기가 허용되는 나라에서는 총을 빨리 뽑아 정확하게 쏘는 걸 배우는 것이 올바른 선택이라는 정도. 독자분께서는 어떤 무술로 호신술을 시작하고 싶은가. 참고로 필자의 MBTI는 ‘ENTJ’다.
노경열 JKD KOREA 이소룡(진번) 절권도 대한민국 협회 대표
기사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