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김현덕기자] “‘국민엄마’ 수식어를 들으면 민망해요. 같은 엄마가 아니라 늘 새로운 엄마를 보여주려고 해요.”

배우 김미경은 최근 ‘K엄마’의 중심이다. 지난 2004년 SBS ‘햇빛 쏟아지다’를 시작으로 엄마 배역만 60회 이상을 소화했다. 김혜자, 고두심 뒤를 잇는 ‘국민엄마’다.

지난해와 올해 방송된 드라마만 봐도 JTBC ‘대행사(2023)’, ‘닥터 차정숙(2023)’, ‘웰컴투 삼달리(2024)’, 티빙 ‘이재, 곧 죽습니다(2024)’ , MBC ‘밤에 피는 꽃’(2024) 등 줄잡아 5편 연속 톱스타의 엄마 역을 연기했다.

그러다 보니 드라마 속 자식만 무려 70명에 달한다. 전도연, 김태희, 정경호, 엄정화, 장나라, 정유미 등 내로라하는 톱스타들이 그의 자식들이다. 주로 자녀 편에 서서 지원해주는 든든한 엄마 역을 도맡았다.

“2004년 ‘햇빛 쏟아지다’에서 엄마 역을 맡았을때 제 나이가 41살이었어요. 아들 역의 류승범 나이가 27살이니 고민이 컸죠. 이렇게 큰아들을 두기엔 안 어울릴 것 같았는데 ‘분장하면 된다’는 PD님 말씀에 용기를 냈어요. ‘배우가 어떻게 제 나이 역할만 맡을 수 있나’ 싶은 마음도 있었어요. 그때부터 쭉 엄마로 살았어요. 이야기에 힘을 보탤 수 있는 역할이라면 얼마든지 ‘오케이’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죠.”

김미경은 평범한 서민이거나 가난한 집안의 엄마 역할을 많이 맡았다. 자식들에게 강인한 모습을 보이고 잔소리하다가도 혹여나 상처받지는 않았을까 뒤에서 마음 앓이를 하는 따뜻하고 인자한 엄마들이었다. 그 속에는 아픔을 고스란히 품고 우여곡절을 겪는 서사가 많다.

김미경은 “물론 연기이지만 무겁거나 슬픈 감정을 소화하는 데 힘에 부칠 때도 있다”라고 말했다.

“캐릭터의 상황이 극단적일 때가 있어요. 연기는 하는 척이 아니라 그 사람 자체여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몰입하다 보면, 감정이 이입되고 추스르는 시간이 오래 걸릴 때도 있어요. 최근 공개된 ‘이재 곧, 죽습니다’에서 죽은 아들을 보는 장면은 찍고 나서도 감정이 잘 사그라지지 않더라고요.”

김미경의 진심은 안방극장에 고스란히 전달 됐다. 작품을 본 시청자들은 김미경의 개인채널에 찾아와 ‘저도 한번 안겨보고 싶다’는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연기의 힘은 어머니로부터 왔어요. 저희 어머니가 올해 96살이세요. 제가 열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홀로 네 자매를 키우셨죠. 어머니 덕분에 아버지의 부재를 느끼거나 외롭지 않았어요. 덕분에 저도 자식을 그렇게 키웠고요. 이러한 감정들이 작품에 잘 녹아든 것 같아요. 엄마 마음은 다 똑같잖아요.”

김미경은 실제로 어떤 엄마일까. 그는 “딸한테 ‘넌 엄마가 왜 좋니’ 물어봤더니 개그맨 같아서 좋다고 하더라. (웃음) 성공했다”고 말했다.

“무서운 엄마는 싫어요. 저는 딸이랑 아주 베프(베스트 프렌드)입니다. 보통 아이들이 부모한테는 말을 못 하고 친구들이랑 비밀 이야기를 하는 데 우리 딸은 반대로 저한테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아요. ‘국민엄마’로 불리는 것에 대해 나름 뿌듯해하기는 하는 거 같은데 그래도 ‘내 엄마야!’라고 말해요. (웃음)”

올해로 연기인생 42년차에 접어들었다. 김미경은 지치지 않고 연기자 생활을 하는 원동력에 대해 ‘비우기’를 꼽았다. 그는 “작품이 끝나면 내면을 비우려고 노력한다”라고 말했다.

“40년 전 연극을 할 때부터 쓰는 방법인데, 공연이 끝나면 새벽까지 잠을 안 자고 저만의 시간을 가져요. 핸드폰으로 동영상을 시청하거나, 책을 읽기도 해요. 그래야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수 있더라고요. 그림도 그리고 스쿠버다이빙 자격증도 따고 오토바이도 타고 드럼도 쳐요. 쌓인 감정을 혼자서 푸는 편이죠.”

대중에게 ‘국민엄마’로 각인됐지만 여전히 다양한 캐릭터에 대한 갈증이 있다. 김미경은 “악역도 해보고 싶다. ‘나쁜 엄마’도 좋고 극단적으로 보이는 캐릭터도 좋다. 느와르도 해보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한계에 부딪히는 나이가 된 거 같아요. 액션도 하고 싶은데 ‘이 몸으로 액션을 한다면 소화할 수 있을까?’라는 현실적인 부딪침, 서글픔도 있어요. 그래도 다양한 걸 해보고 싶죠. 다른 역도 해보고 싶을 수 있는데 저에게는 나쁜 역을 안 주세요. 저 나쁜 사람이에요. (웃음) 다양하게, 오랫동안 연기하고 싶은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khd9987@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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