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드맨’ 스틸컷. 사진 |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사람의 개인정보가 얼마나 다양하게 쓰일까 싶지만, 사기를 목적으로 하는 집단에 마음껏 사용할 수 있는 이름을 구하는 건 귀한 일이다.

이른바 ‘바지 사장’으로 누군가를 세워두고 이곳저곳에서 투자받은 뒤 몰래 도망쳐 버리면 되기 때문이다. 이름을 제공한 사람은 미리 해외로 도피해 숨게 하거나, 죽이면 그만이다. 오는 2월 7일 개봉 예정인 영화 ‘데드맨’은 바지 사장의 비밀을 파헤쳤다.

이만재(조진웅 분)는 13년 넘게 생존한 바지 사장 업계의 거물이다. 사업 실패 후 가정을 지키고자 했던 만재는 콩팥을 파는 곳을 알아봤다가 이름을 팔아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미래를 기약할 수 없던 만재는 이름을 팔았다. 자신의 이름으로 유령회사를 세우고 투자받은 뒤 이른바 ‘쩐주’가 횡령하면, 곧 사라지는 일을 도맡았다.

‘데드맨’ 스틸컷. 사진 |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부를 이뤘지만, 만재는 이혼 위기다. 아내(정운선 분)가 이런 만재의 일에 거부감이 심해서다. 만재는 마지막으로 큰돈을 벌고 떠날 계획이다. 바지 사장이지만, 사실상 이름만 빌려준 터라 상황 돌아가는 걸 모르는 만재는 공문식(김원해 분)의 요청에 따라 황급히 해외로 떠났다. 그곳에서 약 10일이 지나 뉴스를 보는데, 자신이 1000억 원을 횡령한 인물로 보도됐다. 진실을 바로잡으려 하던 중 중국 청부살인업자가 찾아와 그를 중국 사설 감옥으로 보냈다.

죽은 목숨처럼 산 지 3년이 지나 정치 컨설턴트 심 여사(김희애 분)에게 구출됐다. 1000억원의 자금이 신당창당을 준비 중인 국회의원 황지훈(최재웅 분)에게 들어간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서다. 죽다 살아난 이만재는 자신의 사건을 파헤치던 중 거대 악이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된다.

‘데드맨’은 단돈 500만원에 목숨을 잃을 수 있지만, 이름은 수천억 원을 버는 데 활용할 수 있다는 발상에서 출발한 작품이다. 돈 때문에 이름을 함부로 판 만재가 반성 후 자기 이름을 찾아가는 이야기기도 한다.

‘데드맨’ 스틸컷. 사진 |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데드맨’은 이름을 소재로 정경유착, 부패한 권력, 범죄 추적 등 여러 갈래로 뻗어나간다. 하지만 정작 영화가 지닌 문제점이 한둘이 아니다.

가장 큰 문제점은 주인공에게 이입할 수 없다는 점이다. 만재가 아무리 험한 꼴을 당한 인물이라 해도, 그 역시 사기꾼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빌려주고 부를 취한 공범에 불과하다. 자기 잘못에 대한 처절한 반성도 없다. 그러니 만재가 진실을 찾든 말든 마음껏 응원하게 되지 않는다.

만재의 1000억원이 정치인의 신당 창당의 정치자금으로 활용됐다는 대목은 정치 메커니즘을 제대로 모르는 제작진의 역량부족이 읽힌다.

아무리 자금이 필요하다고 해도 정치는 명분이다. 황의원이 신당 창당을 해 승승장구하는 과정에서 명분과 대의는 없다. 이를 키워주는 언론도, 힘을 보태는 동료 정치인도 없다. 자금만 있으면 정치적 성공을 거둘 것처럼 그려진다.

거대양당 체제도 아니다. 진보정당이 있다면 보수정당이 있어야 하는데, 영화는 한 정당과 그 안에서 빠져나온 신당만 다룬다. 대선 시즌도 아닌데 1000억 원을 뿌리는 거대 악이 있는 점도 이상할 뿐 아니라, 황 의원의 신당에도 정체불명의 정치자금이 흘러 들어갔는데, 마치 선(善)인 것처럼 포장됐다. 영화는 갈피를 잡지 못한 채 흘러간다.

‘데드맨’ 스틸컷. 사진 |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모든 범죄를 손아귀에서 주무른 최종 빌런은 대권주자를 마음대로 세우는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 권력으로 어떤 나쁜 짓을 하려고 했는지 뒷이야기가 전무하다. 그저 대통령을 세우는 게임을 했을 뿐이다. 주인공이 멋있어지려면 악인이 멋있어야 하는데, 철학도 매력도 없다. 힘이 쭉 빠진다.

공문식의 딸 공희정(이수경 분)의 캐릭터는 논리가 무너져 있다. 공문식이 죽은 배후에 이만재가 있다고 주장하는데, 사실관계를 따져보면 공문식은 스스로 생을 마감했고 이만재는 공문식에 속아 죽을 위기에 처했었다. 마치 원수처럼 그려지다가, 갑작스레 공조하는 대목은 설득력이 없다. 주요 캐릭터에 힘이 없으니, 이야기도 뻗어나가지 못한다.

정작 채워야 할 영화적 재미나 촘촘한 짜임새 등 내실은 턱없이 부족한데 틈만 나면 그럴듯한 명언만 튀어나온다. 특히 심 여사를 활용해 힘을 잔뜩 준 명언은 부끄러움이 앞선다. 영화 전체를 관통하지도 않고 겉멋에 불과하다. 미래 세대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정치를 했다는 심 여사가 말한 희망이란 과연 무엇인지, 영화 내에선 근거를 댈 수 없다.

‘데드맨’ 스틸컷. 사진 |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힘을 빼고 툭툭 털어내야 할 대목에선 잔뜩 힘을 주고, 정작 이름이 어떻게 큰돈으로 들어올 수 있는지 과정은 불친절하게 놓여 있다. 서사가 전개되다가 느닷없이 감정이 차오르는 장면이 등장하고, 의미 있을 법한 장면엔 웃음도 나지 않는 농담을 꺼낸다. 때때로 세련된 연출법이 종종 등장하지만, 영화의 결과 맞지 않는다. 아무리 똑똑한 관객이라도 지칠 것 같다.

intellybeast@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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