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김태형 기자] 배우 이덕화가 과거 교통사고를 떠올렸다.

7일 유튜브 채널 ‘르크크 이경규’에는 ‘매순간 선택의 기로에 놓였던 이덕화! 토크 부탁해요~ | 예능대부 갓경규 EP.29’라는 영상이 게재됐다.

이덕화는 “제가 공식적으로 방송국 데뷔한 게 1972년도다. 정확히 52년째”라고 말했다. 이경규는 “저는 1981년도에 데뷔했다”라고 전했다.

이덕화는 “우리 때만 하더라도 녹화 테이프가 찬넬이 없어가지고 그 장면이 NG가 나면 다시 처음부터 했다. 대사 한두 마디 있는데 앞에서 주인공들이 울고 불고 막 엄청난 신을 쫙 찍어 오다가 음악이 저기서부터 깔려왔는데 중간에 들어가서 말 한마디 잘못하면 처음부터 다시. 그러니까 잠을 못 자는 거다”라고 과거 촬영 방식을 떠올렸다.

이어서 “NG가 또 나면 PD 선생이 뛰어내려와서 목을 졸랐다니까. ‘야 이 자식아!’ 이러면서. (시간, 돈, 테이프) 다 엉망이 되는 거다”라고 덧붙였다.

이경규와 이덕화는 동국대학교 연극영화과 출신이다. 이경규는 “저희 학교는 기수가 있다”라고 말했고, 이덕화는 “나는 11기”라고 답했다.

이경규는 “제가 초등학교 1학년 때는 덕화 형님이 청춘스타였다. 덕화 형님이 학교에 뜨면 형님 보려고 후배들이 다 모였다”라고 밝혔다. 이덕화는 “(이경규는) 그 모습 그대로다”라며 웃었다.

이날 이덕화는 “후배들한테 가끔 얘기한다. 제발 잘 될 때 까불지 말아라. 사람이 해이해진다. 고생하다가 갑자기 빛을 보기 시작하면 느슨해진다. 그때 사고가 나는 거다. 내 인생의 청춘은 죽느냐 사느냐가 문제였다”라며 1977년도 교통사고를 떠올렸다.

그는 “그때 오토바이 사고가 나가지고 한창 막 주가를 올리고 있을 때 까불면 안 된다고 한 방 빵. 그 한 방이 너무 컸다. 병원에 3년 있었다. 겨우 살아나서 이제 조금 몸을 추스르고 많은 사람들이 도와줘서 사는 거다. 난 지금까지도 남 덕에 살았다고 그런다”라고 전했다.

이어서 “처음에는 거의 뭐 다 죽는다고 그러고, 방송국 동료들이 ‘걔 안 되겠더라. 묵념하고 조의금 걷자’ 그랬었다. 한 4천 바늘 꿰맸다”라고 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이덕화는 “의사 선생님이 그러더라. 그래도 심장이나 간이나 폐 같은 데는 안 다치고, 장 같은 데는 많이 다쳤다. 1m씩 잘라버리고 그럴 정도였다. 지금도 농담이 아니고 흰 가운 입으신 분들 보면 마음으로 존경한다”라고 전했다.

또한 이덕화는 1996년도 국회의원에 출마했던 것을 떠올렸다. 이경규는 “제가 당시 학교 후배니까 형님이 출마한 지역구를 가서 내가 선거운동을 도왔다. 그때 나도 잘 나가던 때였다. 형님 일이니까”라고 설명했다.

이경규는 “형님이 1000표 차이로 떨어졌다. 떨어진 다음에 방송국에 와서 ‘경규야 넌 웬만하면 하지 마라’ 했다”라고 해 웃음을 안겼다. tha93@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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