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지난 달 31일 개봉한 영화 ‘파일럿’은 웃음이 지뢰밭처럼 깔린 작품이다. 영화에서 신생항공사 여성 부기장 윤슬기를 연기한 이주명은 극중 유일하게 웃기지 않는 인물이다. 웃음기를 쪽 빼고 시종일관 당당한 얼굴을 스크린에 내비쳤다.
슬기는 조정석이 연기한 여장남자 부기장 한정미(조정석 분)의 동기로 젠더이슈에 민감한 인물이다. 일할 때는 외모 평가를 배제하고 업무파트너로만 대해달라고 강조한다. 유쾌한 코미디 영화에서 갈등을 일으키는 시초이며, 드라마를 쌓는 인물이기도 하다.
이주명은 “저도 웃길 수 있는데, 그럴 기회가 없어 아쉬웠다. 저는 사람들이 ‘그렇게 인류애를 가지면 안 된다’고 할 정도로 주위 사람들과 더불어 지내려고 하는 스타일이다. 윤슬기는 제가 가진 인류애를 극대화해서 만든 인물”이라고 말했다.
이주명은 조정석에 대한 팬심으로 이 작품에 참여했다고 공공연히 밝혀왔다. 이른바 ‘성공한 덕후’라는 말을 아끼지 않고 꺼냈다. ‘파일럿’ 역시 조정석이 참여한다는 이유만으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출연을 결심했다.
“조정석 선배가 한다는 얘기를 듣고 묻고 따지지도 않고 하겠다고 마음 먹었어요. 막상 대본을 읽으니까 정말 재밌는 거예요. 감동과 위트가 있었죠. 중학생 때는 조정석 선배를 프로필 사진으로 해놓기도 했어요. 선배 연기를 눈앞에서 보게 되니까 행복했어요. 이상형은 멀리서 봐야 한다는 데 실제 만난 뒤에도 ‘내 안목은 틀리지 않았다’는 걸 느꼈어요.”
‘파일럿’에서 가장 큰 웃음은 한정미가 윤슬기에게 ‘언니’라면서 자신의 고충을 털어놓는 장면이다. 술한잔 하며 진지하게 서로의 속내를 털어놓지만 어느덧 한정미의 인중에 자란 수염이 웃음의 폭발력을 더했다.
“의도하지 않은 장면이었어요. 촬영할 때는 그렇게 콧수염이 많이 나지 않았어요. 영화를 보는 데 정말 웃기더라고요. 알고보니 후반작업 때 수염을 진하게 처리한거죠. 저는 눈물이 나오기도 하고 중요한 감정신이라고 생각해서 매우 진지하게 임했어요. 이렇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죠.”
윤슬기는 마지막까지 자기 목소리를 낸다. 모든 사람이 보고 있는 순간에 뺨을 올리는 강단도 있다. 할 말은 하는 타입이다. tvN ‘스물다섯 스물하나’(2022), ENA ‘모래에도 꽃이 핀다’(2023)에서 이주명이 연기한 인물들도 늘 강직했다.
“저는 그렇게 할 말을 다 하진 못해요. 처세는 능한데, 하고 싶은 말을 다하고 살진 않아요. 많이 참는 편이에요. 개인적으로는 가녀린 역할을 해보고 싶어요. 순정이 가득한 멜로 장르에서 수동적이고 끌려다는 것도 좋아해요. 강직하지 않아도 좋아요. 하하.”
‘파일럿’으로 스크린 신고식을 치렀다. 꼭 한 번은 큰 스크린에 나오길 꿈꿨는데, 그 꿈을 이룬 셈이다.
“어떤 것이 다를지 궁금하기도 하고 설렜어요. 영화랑 드라마는 뭔가 다르긴 해요. 피부관리부터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하하. 무대인사 때 정말 떨었어요. 짜릿하면서 벅차면서, 떨리고 아무 말도 안 나왔어요. 이게 영화의 맛인가 봐요. 앞으로도 많은 영화와 드라마로 찾아 뵙고 싶어요. 그땐 캔디였으면 좋겠네요.” intellybeast@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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