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영화 ‘밀양’(2007)으로 ‘칸의 여왕’에 오른 전도연에게 한국 영화계는 깊은 감정을 요구했다. 전도연은 늘 평범한 사람이 경험하기 힘든 고통스러운 순간에 내몰렸고, 극한의 감정을 꺼내기 일쑤였다.

신작 ‘리볼버’에서 전도연이 맡은 수영이 처한 상황도 힘겨운 건 마찬가지다. 연인이 연루된 비리 사건에서 모든 죄를 뒤집어쓰고 감옥에 갇힌 대가로 7억원의 돈을 받기로 했지만,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다. 억울한 죗값을 받기 위한 여정을 시작했다.

다만 모든 감정을 뺐다. 이토록 처연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표정에 색이 없다. 답답한 상황을 마주하든 분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든 전도연의 표정은 움직이지 않는다. 덕분에 전도연의 새 얼굴이라는 찬사가 쏟아지고 있다.

전도연은 “감정을 걷어낸 뒤 어떻게 하면 캐릭터가 단조롭지 않을까 고민했다. 수영이 매번 똑같은 표정으로 똑같은 말을 한다. 개인적으론 지루하지 않을까 싶었다. 계속 ‘지루하지 않을까요?’라고 물어봤다. 결과물을 보니 상대 배우의 에너지를 받으면서 표현이 돼 다채로웠던 것 같다”고 말했다.

‘리볼버’는 영화 ‘무뢰한’(2015)을 연출한 오승욱 감독의 신작이다. 국내 누아르 장르에서 수작으로 꼽힌다. 전도연이 연기한 유흥업소 퇴물 마담 김혜경은 잔상에 깊게 남는 작품이다. ‘리볼버’의 수영 또한 벼랑 끝에 내몰렸다는 점에서 비슷한 구석이 있다. 기시감이 드는 지점은 배우로서 풀어내야만 하는 숙제다.

“처음부터 ‘무뢰한’이 생각나지 않게 하는 게 목적이었어요. 감정을 배제하고 연기해보자는 의견이 나왔어요. 김혜경은 사랑도 하고 욕망이 강하잖아요. 수영은 바닥에서 더 내려갈 곳도 없는 인물이에요. 그런 여자라면 감정적으로 동요할 것 같지 않았죠. 그래도 수영의 모든 행위는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연인인 임석용(이정재 분)때문에 그렇게 밑바닥까지 간 거잖아요.”

전도연은 매 순간 정답 안의 정답을 찾는 듯 새로우면서도 정확한 감정을 짚어낸다. 그러면서도 전도연은 늘 자신의 의심과 싸운다.

“매 작품이 새롭고 무섭고 두려워요. 늘 어려워요. 제가 같은 대본, 같은 감독님과 작업하는 게 아니잖아요. 연기 잘하는 노하우가 있었으면 해요. 똑같은 슬픔이어도 다른 상황인 거잖아요. 리딩하고 나면 매번 ‘나 잘할 수 있을까?’라며 징징대는 시간이 있어요. 엄살이 아니에요. 진짜 이해 못 할 것 같아요. 그러다 촬영 들어가면 정신없이 달려요. ‘잘할 수 있을까’를 생각할 겨를이 없어요. 제 루틴이에요.”

국내에서 활동하는 배우라면 전도연과 협업을 꿈꾼다. 하정우, 김남길, 국내 최고의 배우들은 늘 전도연과 연기하길 고대한다고 인터뷰해 왔다. 이번에는 임지연이 전도연에게 적극적으로 애정 공세를 했다.

“지연이랑 촬영할 때는 사적인 이야기를 거의 못 했어요. 작품 끝나고 홍보하면서 알아가고 있어요. 재밌는 친구예요. 엉뚱한 면도 있고요. 저랑 다시 작품하고 싶다는 후배들 얘기를 종종 듣곤 해요. 아마 제 매력이라기보다 제가 선택한 작품에 대한 존중과 믿음 때문 아닐까 싶어요. 그 시나리오 안에 전도연이 있었을 뿐이고요.” intellybeast@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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