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축구 K리그는 40주년을 맞이한 지난해 1,2부 통틀어 사상 첫 300만 관중 돌파 기록을 쓰며 흥행 순풍을 타고 있다. 2024년에도 K리그1은 최단기간 100만 관중 돌파에 이어 2년 연속 200만 관중 시대를 바라본다. 그러나 뜻밖에 암초를 만났다. 프로스포츠 경쟁력 중 하나인 그라운드 컨디션이 역사상 최악의 상태에 놓이면서다. 장기 불볕더위와 경기장 관리 주체의 모호성 등이 어우러져서 악화일로다. 팬은 선수의 최고 퍼포먼스를 즐기지 못한다. 정말 K리그 잔디는 ‘답이 없는’ 문제인 것일까. 스포츠서울은 리그 구성원 등을 통해 다각도로 취재, 잔디 개선을 위한 제언 기획시리즈를 3회 걸쳐 연재한다.<편집자주>

[스포츠서울 | 김용일 기자] 강원FC 홈구장인 강릉종합운동장은 지난 3일 한국프로축구연맹이 선정한 ‘하나원큐 K리그1 2024’ 2차 클럽상 그린 스타디움으로 선정됐다. 지난 시즌 3차 수상에 이어 2년 연속 K리그 최고의 그라운드로 평가받은 것이다. 그린 스타디움은 그라운드 잔디 관리를 최상으로 해낸 구단 홈경기장에 주어진다.

최근 프로답지 못한 K리그 각 경기장 잔디 상태가 축구계를 넘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는 만큼 강릉종합운동장의 자부심은 크다. 중심 구실을 하는 건 강릉시문화체육시설사업소에서 잔디관리 및 대관을 담당하는 최국헌(53) 주무관이다.

K리그 경기장 잔디가 고르지 않은 것을 두고 대다수 관리 주체가 시설관리공단 등 지자체여서 축구에 포커스를 둔 책임 의식이 부족하다는 견해가 따른다. 최 주무관은 강원 구단 관계자부터 ‘축구인보다 더 축구인’같은 존재다. 강원 커뮤니케이션팀 이현용 과장은 “리그 잔디 관리에서는 최고 전문가이고 책임감이 강한 분”이라며 “몇 년 전 보직 순환으로 잔디 업무를 떠난 적이 있는데, 당시 그라운드 상태가 좋지 않았다. 돌아오신 뒤 다시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을 보면 명확한 노하우를 지녔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최 주무관은 스포츠서울과 통화에서 “어느 지자체 담당관이든 잔디 관리에 애쓴다”며 자신을 낮췄다. 얼굴을 공개하는 것도 정중하게 거절했다. 잔디 관리 업무만 15년 됐단다. 그는 “사실 고등학교(강릉중앙고) 때 축산과를 다녔다. 부모께서 목장도 운영했다. 축구장이나 목장에서 키우는 잔디가 같은 수종”이라고 밝혔다.

잔디 생육의 3대 요소 ‘태양, 바람, 물’을 언급했다. 최 주무관은 “보통 바람과 물이 문제다. 예를 들어 비가 너무 많이 와도 잔디가 적응 못한다. 과거 강릉에도 두 달가까이 장마가 지속했다. 그때 엄청 고생했다”며 “그런 날이 다시 안오리라는 보장이 없어 봄부터 잔디 하체에 굉장히 신경을 쓴다. 밀고 단단하게 키우는 방향으로 여름을 대비한다. 망가져도 60~70% 버티는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올해 K리그 경기장 잔디가 망가진 이유 중 하나로 꼽히는 게 장기 폭염이다. 최 주무관은 “당연히 영향이 있다. 관수 관리가 중요하다. 우리는 24시간 대기 체제다. 출, 퇴근간 습도 체크하고 물을 3분, 5분 단위로 주는 것 뿐 아니라 퇴근 이후에도 휴대폰으로 관수 시스템을 가동하는 원격 프로그램을 두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타이밍이 중요하다. 아침에 해 뜨고 너무 일찍 물을 주면 뜨거워서 잔디가 탈 수 있다. 나물 데치듯 역효과가 난다”고 덧붙였다.

‘데쳐지는 현상’은 K리그가 열리는 국내 대다수 축구전용경기장이 그렇다. 2002 한·일월드컵에 맞춰 지어진 다수 경기장은 지붕을 둔 돔구장 형태. 겉보기엔 아름답지만 그라운드가 대부분 지하에 놓여 있다. 통풍 등 잔디 생육과 관련한 과학적 접근이 이뤄지지 않은 채 설계됐다. 최 주무관은 “물은 기계적으로 해결하나 그라운드에 지하에 설계되면 통풍이 안 된다. 한여름 선풍기 틀어도 더운 바람이 나오지 않느냐. 일조도 떨어진다. 기계로 해결해도 자연을 따라갈 수 없다”고 말했다.

또 유럽에서 주로 사용하는 켄터키 블루그래스를 들여왔다. 한지형 잔디로 고온다습한 국내 기후에 견디지 못해 훼손이 심각해졌다. 최 주무관은 “켄터키는 26도 이상이면 생육을 멈추는 특성이 있다. 동남아시아처럼 고온에 버티는 잔디를 대안으로 꼽는데 그 역시 봄, 가을엔 색이 노랗게 변해서 푸른 그라운드 유지에 어려움이 있다”고 설명했다.

잔디 이슈의 발화 지점인 서울월드컵경기장은 유명 가수 콘서트장으로도 활용, 축구 팬 사이에서 볼멘 소리가 나온다. 최 주무관은 “당연히 사람이 몰려 잔디를 밟으면 악영향을 끼친다. 눌린 상태에서 물을 주면 배수가 안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역 각종 행사 거점 구실하는 강릉종합운동장은 어떠할까. 최 주무관은 “일반 체육 행사는 대관하는데 공연 등은 가능하면 받지 않고 있다. 시장께서 관리자 입장을 반영해준다. 프로가 쓰는 축구장은 체육 외 목적으로 쓰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스스로 “잔디는 관심이다. 정성과 관심을 들이면 하늘도 돕더라”며 기술이나 요행을 먼저 찾는 게 아니라 담당 부서에서 지자체 얼굴처럼 관리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최 주무관은 “망가진 운동장을 보면 (지자체에서) 용역을 많이 줬더라. 용역은 외부 업체가 기간을 두고 일하고 이윤을 남기려고 한다”며 “직영하면 예산을 털어서 더 좋게 만들려고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프로축구연맹도 더 관심 기울여야 한다. 경기 당일 경기 감독관께서 체크리스크대로 경기 전, 중, 후 등 물을 주게 하는데 야간 경기는 달리해야 한다. 밤엔 잔디가 알아서 물을 배출한다. 체크리스크대로 하면 논에서 공을 차는 역효과가 발생한다”고 강조했다.

이 외에 프로연맹 차원에서 각 구단 경기장 관리에 관한 엄격한 규정을 만들어줄 것을 당부했다. 최 주무관은 “팬이 축구장에 와서 소리 지르면 뭐 하느냐. 정치권에 계신 분도 (K리그 경기장은) 관심 사항이 아니다. 프로연맹 차원에서 제도적으로 보완해야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냈다. kyi0486@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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