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원성윤 기자] 박지현·조여정·송승헌 세 배우 인생에 한 획을 그을 만한 작품이 나왔다. 인간이 가진 성적 욕망의 뿌리를 송두리째 건드린다. 비틀고 뒤집는 통에 어질어질해질 지경이다. 전라 베드신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장면 중 하나일 뿐이다.

20일 개봉하는 영화 ‘히든페이스’는 실종된 약혼녀 수연(조여정 분) 행방을 쫓던 성진(송승헌 분) 앞에 수연 후배 미주(박지현 분)가 나타난다. 사라진 줄 알았던 수연이 밀실에 갇혀 두 사람 밀회를 보고 펼쳐지는 색(色)다른 밀실 스릴러다.

관객은 초반 성진-미주가 벌이는 불륜과 정사 장면에 주목하게 된다. 밀실 존재는 드러나지 않는다. 미주는 성진에게 “이 방에서…이 방에서 이러면 안 되잖아요”라고 죄책감 가득한 말과 달리 거울을 향해선 야릇한 표정을 짓는다. 마치 거울 뒤 누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영화는 역(逆)순행적 구성으로 배치하면서 서사가 반전을 거듭한다. 진짜 재미는 여기서 시작된다. 둘만 알 줄 알았다. 그게 아니었다. 약혼녀 수연이 둘 행각을 밀실에서 절규하며 지켜보고 있었다. 소리는 밖에 닿지 않는다.

서사가 관객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향하는 건 3개월 전, 7개월 전으로 향하면서다. 예상치 못한 수연-미주가 관계가 드러나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 영화에서 ‘밀실’은 인간 내면에 감춰진 욕망을 대리한다. 일제 강점기 방공호로 지어진 집에 은밀하게 설치됐다. 수연은 밀실을 자신의 성(性)적 욕망을 해소한 공간으로 활용했다.

수연이 성진과 미주를 지배할 것이란 암시는 영화 곳곳에 묻어 나온다. “노예야 뭐야”라는 수연의 대사는 적확하게 두 사람을 향해 날아든다. 분식집 아들로 마에스트로 자리에 오른 성진과 교통사고로 한날한시에 부모를 잃은 고아 미주는 오케스트라 단장 혜연(박지영 분)을 엄마로 둔 수연을 결코 넘어설 수 없다.

피해자인 줄 알았던 수연은 실은 지배자다. 둘을 완벽하게 심리적 밀실로 가둔다. 팸돔(Female Dominant)적 지위에서 둘을 도구적 수단으로 찍어 누른다. ‘노예’ ‘도구’라는 상징적 단어가 대사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건 수연이 가진 우월적 지위를 재차 확인하는 행위다. 물질적-정신적으로 결핍을 채울 수 없는 둘과 태생부터 다르다.

수연은 밀실 집 주인이자 자신과 미주의 음악선생님마저 끝으로 몰고 간다. 마지막 장면에서 휠체어에 의존한 선생을 연못 가장자리로 몰고 간다. 집을 매입한 것에 그치지 않았다. 자신의 은밀한 비밀을 알고 있기 때문에 없앨 수도 있단 메시지를 준다. 공포에 질리자 그제야 방향을 선회한다. 결핍 없는 삶을 살아온 수연이 가장 아름답게 나온 장면이자 이 영화가 왜 ‘스릴러’란 탈을 썼는지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조여정은 이 영화에서 다시 한 번 입체적인 배우로 진화했다. 밀실에선 답답함과 초조함이 가득한 얼굴로, 밖에선 안하무인의 다채로운 표정으로 캐릭터를 육각형으로 그려냈다. 사전시사회를 본 관객 사이에서 “작두 탔다”는 평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박지현이 보여준 아름다운 몸짓은 곱씹을수록 치명적이다. 상대를 유혹하는 대사는 세간에 회자될 것으로 보인다. 송승헌은 가장 높은 지휘자 자리에 올랐지만 셋 가운데 가장 억눌려 있다. 비겁함과 울분, 욕망이 뒤섞인 섬세한 연기를 잘 그려냈다.

김대우 감독이 빚어낸 스토리 역시 놀랍다. ‘방자전’(2010)에서 몽룡X춘향, 방자X향단의 파트너를 뒤바꾸며 캐릭터 전형성을 바꿔낸 기지는 이번에도 여지없이 발휘됐다. ‘인간중독’(2014)에서 그려낸 농염함은 ‘히든페이스’에선 뜨겁다 못해 활활 타올랐다. socool@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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