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남원에 위치한 광한루. 남원 | 원성윤 기자 socool@sportsseoul.com
광한루에서 바라 본 전경. 현판에 적힌 ‘계관(桂觀)’은 달나라의 계수나무 신궁을 뜻하는 것으로, 전라관찰사 정인지가 지었다. 달나라에 갈 수 없으니 이곳이 달나라라는 뜻이다. 남원 | 원성윤 기자 socool@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글·사진 | 남원=원성윤 기자] 금 술통의 좋은 술은 천 사람의 피요/ 옥판의 좋은 안주는 만백성의 기름이라/ 촛불 눈물 떨어질 때 백성 눈물 떨어지고/노래 소리 높은 곳에 원망 소리 높구나

남원 부사의 아들 이몽룡은 퇴기 월매의 딸 성춘향을 남원 광한루에서 만나 첫눈에 반해 사랑하게 된다. 한양에서 과거 급제를 한 몽룡은 거지꼴 위장해 남원에 돌아온다. 학정(虐政)을 벌하러 온 몽룡은 이 시를 지어 변사또에게 들이민다. 암행어사인 몽룡은 변사또를 처단한 후 춘향과 백년해로한다.

서울 용산역에서 KTX로 2시간이면 전북 남원역에 도착한다. 1박2일 코스로 안성맞춤이다. 남원역에서 차로 8분 거리인 광한루원은 여행 첫 방문지로 시작하기 딱 좋다. 물론 낮과 밤 모두 아름다운 정취를 자랑하기에 언제 가도 매력적이다. 낮에는 물가를 노니는 천연기념물 원앙이, 밤에는 청사초롱이 형형(熒熒)한 빛을 내며 눈길을 사로잡았다.

폐쇄된 남원 서도역. 남원 | 원성윤 기자 socool@sportsseoul.com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 사진 | tvN

서도역도 핫스팟이다.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2018)의 촬영지로 유명하다. 애신(김태리 분)이 유진초이(이병헌 분)를 처음 만난 곳이다. 또한 구동매(유연석 분)가 애신을 향해 애잔한 마음을 전하던 곳이기도 하다. 떠나는 이와 남겨지는 이가 공존하는 역의 속성이 잘 드러난 장면이었다.

서도역은 레트로 붐을 타고 최근 더욱 인기를 얻고 있다. 일제강점기인 1932년에 문을 연 뒤 2000년대 이후 수요가 줄어 폐쇄될 위기에 처했다. 이를 살린 건 주민들이었다. 보존해야 한다는 여론에 남원시가 철도청으로부터 역사와 부지를 매입하여 공원으로 조성해 오늘날에 이르게 됐다.

이는 남원의 랜드마크가 됐다. 향년 27세로 생을 마감했던 시인 윤동주를 기린 영화 ‘동주’(2016)의 촬영지로도, 남원을 배경으로 한 최명희의 대하소설 ‘혼불’(1996)의 배경으로 언급되며 사람들의 발걸음을 끊이지 않게 했다. 역사의 보존과 계승이 왜 중요한지 보여주는 사례다.

농협 창고 옆에 지어진 노 슈가 커피. 논두렁 뷰가 인상적이다. 남원 | 원성윤 기자 socool@sportsseoul.com
‘노 슈가 커피’에는 정말 설탕이 들어있지 않다. 남원 | 원성윤 기자 socool@sportsseoul.com

카페 ‘노슈거(no-sugar)’ 역시 남원만의 독특한 매력을 자아낸다. 마을의 폐농협창고를 리모델링해 남다른 아우라를 자랑한다. 현미식빵, 잡곡식빵, 호두크렌베리 등 속이 편한 빵에 자꾸만 손이 갔다. 행안부 지역특성살리기 공모에 선정된 ‘착한 카페’다. 기자가 방문한 시기는 농한기라 바깥이 황량했지만, 꽃 피는 봄에는 논두렁 뷰가 마음을 더 아늑하게 만들어 줄 것으로 보인다.

남원은 사랑과 재생의 도시다. 춘향과 몽룡의 사랑도, 애신과 유진초이의 애틋함도 모두 품어낸 고장이다. 슴슴하기(‘싱겁다’의 전북 방언) 그지없는 음식들도 먹다 보면 곱씹게 되는 마력을 지녔다. 장소를 옮길수록 그런 생각은 더욱 커져만 갔다.

[원성윤의 인생은 여행처럼-남원②편에서 계속됩니다.] socool@sportsseoul.com

.

기사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