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싹 속았수다’ 박보검, 아이유. 사진 | 넷플릭스

* 본 리뷰는 1~4회 줄거리를 담고 있어 스포일러가 될 수 있습니다.

[스포츠서울 | 원성윤 기자] 여태 못 보던 제주 풍광이 한눈에 펼쳐진다. 추억을 강력하게 소환하는 전개가 더해져 넋을 놓고 보게 된다.

지난 7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폭싹 속았수다’ 이야기다. 아이유, 박보검이 그려낸 서로 죽고 못 사는 지고지순한 사랑만큼이나 노스탤지어 향수가 가득하다. 물질하다 일찍 엄마를 여윈 애순(아이유 분)이 “엄마 보고 싶다”고 울부짖는다. 그렁그렁한 눈망울에서 뚝뚝 떨어지는 눈물에 찬찬히 젖어 든다.

자식에게 헌신하고 살았던 부모 세대 이야기다. 애순은 꿈이 많았다. 시인이 되고 싶은 문학소녀였다. 장터에서 양배추를 팔면서도 청마 유치환 시집을 끼고 달달 욀 정도로 시에 애정을 쏟았다. 애순의 엄마 광례(염혜란 분)는 제주에서 물질하며 자식들을 먹여 살렸다. 어린 시절, 엄마의 하루를 사고 싶다고 애순이 쓴 시를 본 광례는 “어떻게 이런 게 나한테 왔냐”고 절절한 눈물을 훔친다.

‘폭싹 속았수다’. 사진 | 넷플릭스

자꾸만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부모가 된 뒤 자식에게 ‘내리 사랑’을 붓는 애순의 모습을 보면 더 그러하다. 남자가 귀했던 제주에서 사내아이를 낳지 못해 구박받는 애순에게 관식(박보검 분)은 부산으로 도망가던 그때처럼 지고지순한 애정을 보인다. 남녀 겸상을 하지 않던 그 시절, 딸 금명이 콩을 찾자 상을 바꿔 앉으며 딸과 애순을 챙긴다.

가부장적 질서를 깨뜨릴 순 없다. 가족과 조화로운 삶도 거부할 순 없다. 다만 위기의 순간마다 애순을 구해내며 그녀가 바친 젊음을 보상한다. 애순은 뭍에 있는 남자와 결혼하며 운명을 거스르고 싶었지만, 관식의 순애보 사랑에 결국 인생을 바쳤고, 후회하지 않는다.

이 드라마는 반전도 빌런도 없다. 그럼에도 애순과 관식이 보여주는 서사는 제주 너른 바다 앞 현무암에 부닥치는 백파(흰물결)처럼 출렁이고 부서진다. “나는 엄마처럼은 안 살래”라며 되뇌던 우리의 지난 시절을 바늘로 콕콕 찌르며 아프게 다가온다. 임상춘 작가의 필력은 여전히 유려하다. 전작 ‘동백꽃 필 무렵’(2019) 때 느꼈던 감정과도 유사하다. 편견과 억압에 맞선 인간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유난히도 따뜻했던 느낌과 정서를 고스란히 이고 지고 왔다.

‘폭싹 속았수다’ 박보검, 아이유. 사진 | 넷플릭스

아이유는 이 드라마에서 1인 2역을 한다. 애순과 애순이 낳은 딸 금명의 어른 시절 역을 맡았다. 시를 포기하고 얻은 아이에겐 “우주를 얻었다”고 마냥 애정을 쏟는 애순과 달리 금명은 엄마 애순(문소리 분)에게 차디차다. 둘을 바라보는 시선과 감정은 극명하게 다르다.

그래도 핏줄은 어디 안 간다. “금명이는 어디에도 안 꿀리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애순의 바람처럼, 부잣집 예비 시모를 만난 자리에서도 꿋꿋하고 주눅이 들지 않는다. 애순이 치열하게 살아온 덕분이다. 시모가 집안 밑천 마련하겠다며 금명을 잠녀(潛女)로 만들려 하자, 제사상을 뒤엎으며 저항한다. “내 딸은 나처럼 안 살려요”라는 그 말엔 팔자 대물림을 하지 않으려 했던 부모 세대의 노력이 깃들어있다.

시대상을 생생하게 반영한 프로덕션에도 눈길이 간다. 1960년대부터 2025년까지 소품과 세트에 켜켜이 녹여냈다. 제주도의 옛 시장, 유채꽃밭, 항구, 옛날 극장까지. 이래서 600억 원이 들었구나 싶은 생각이 절로 든다. 섬세한 연출력과 걸출한 배우들이 그려낼 나머지 12회분에도 기대가 솟구친다. socool@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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