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 김현덕 기자] 아역 배우로 시작해 어느덧 30년이 흘렀다. 배우 박은빈은 그동안 작품을 통해 스스로를 증명해왔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2021)에서는 천재 바이올리니스트였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2022)에서는 자폐스펙트럼 변호사를 완벽하게 소화했다. ‘무인도의 디바’(2023)에서는 직접 노래를 부르며 가수로 변신했다. 캐릭터마다 자신의 색을 입혔다. 그 색은 어느새 박은빈 고유의 결이 돼 ‘믿보배(믿고 보는 배우)’로 각인됐다.
이런 박은빈이 이번엔 ‘살인마’가 됐다.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하이퍼나이프에서 생명을 살리는 외과의이자 냉혹한 살인자 정세옥으로 열연했다.
정세옥은 선과 악, 이성과 본능, 구원과 파괴가 뒤엉킨 복잡한 인물이다. 고요하고도 격렬한 인물이다. 누구보다 침착하게 메스를 쥐지만, 감정 앞에서는 자신을 조절하지 못한다.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하고, 자신의 분노에는 지나치게 솔직하다. 끊임없이 파열음을 내는 감정과 논리에 시청자는 끝내 고개를 돌리지 못한다. 그간 선하고 바른 역할로 깊은 인상을 남긴 터라 이번 도전은 더욱 낯설고 파격적으로 다가왔다.
박은빈은 이 복잡한 캐릭터를 설득력 있게 표현하기 위해 대학 시절 전공한 심리학 서적을 펼쳤다.

최근 스포츠서울과 만난 박은빈은 “DSM-5(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매뉴얼)를 참고해 반사회적 성격장애에 대해 연구했다. 사이코패스라고 하면 감정이 없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타인의 고통에 무관심한 것과 감정이 없는 건 다른 문제다. 저는 정세옥이라는 인물을 그런 고정된 이미지에 가두고 싶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처음 해보는 역할이다. 감정선도 생소했고, 접근 방식도 달랐다. 하지만 연기의 갈증이 조금은 해소됐다”고 덧붙였다.
이 드라마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는 설경구와 박은빈의 대립이다. ‘하이퍼나이프’는 정세옥과 그의 스승 최덕희(설경구)의 비정상적이고도 질긴 연결을 따라간다. 둘은 사랑도, 우정도 아닌 사제지간이다. 하지만 이들이 주고받는 정서적 폭력과 집착, 이해와 혐오는 그 어떤 관계보다 복잡하다.
죽어버리라고 소리치면서도 그 누구보다 아낀다. 욕설과 폭력이 오가면서도 타인이 그를 모욕하면 못 참는다. 이 기묘한 공존이 ‘하이퍼나이프’를 지탱하는 중심축이다.

박은빈과 설경구는 현장에서 매 장면 많은 대화를 나눴다. 꾸준히 점검했고, 끝까지 함께하며 우정을 다졌다.
박은빈은 “선배님께 의지해보려고 했는데, 선배님은 절 동료로 봐주셨다. 틈을 많이 안 주셨다. 촬영을 하면서 선배님 연기를 보고 많이 배웠다. 인품에도 감명받았다. 선배님이 아니었으면 이 작품을 완주하지 못했을 것이다. 선배님과 ‘가장 친한 배우’가 됐다”고 말하며 웃어보였다.
끝으로 박은빈은 “앞으로도 더 새로운 얼굴을 보여드릴 수 있길 기대한다. 이 작품을 통해 연기의 또 다른 페이지를 열 수 있었다. 앞으로도 기대해 달라”고 말했다. khd9987@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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