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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모던록 대부’로 불리는 가수 이승열은 여러 모로 독특하다. 94년 데뷔한 이래 지금까지 낸 앨범이 단 6장(그룹 유앤미블루 시절 2장 포함)에 불과하다. 지난해말 tvN ‘미생’ 주제가 ‘날아’로 인기를 끌긴 했지만 22년간 대중적인 인기를 크게 누려본 적은 없다.
그런데 그의 음악은 일부 마니아 층에겐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낸다. 많이 팔린 적은 없지만 앨범은 평론가들에게 늘 극찬을 받았다. 2007년 경향신문과 웹진 가슴네트워크가 공동 선정한 ‘한국대중음악 100대 명반’에서 그가 90년대 활동한 유앤미블루의 2집이 23위(바로 다음 순위인 24위가 서태지와 아이들 1집), 1집은 41위에 각각 선정됐다. 이승열 정규 1집도 86위에 올라 있다. 최근 솔로 앨범을 발표하며 활동을 시작한 엠넷 ‘슈퍼스타K’ 출신 가수 김필은 최근 “이승열 선배 다음을 이을 가수 되는 게 꿈”이란 목표를 밝히기도 했다.
오는 9일 정규 5집 앨범 ‘SYX’를 발표하며 2년 2개월여 만에 돌아오는 이승열, 아는 사람은 알지만 모르는 사람은 전혀 모르는 이 가수를 소개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사실 이 인터뷰는 지난 2월 진행됐다. 이승열이 5집 준비를 위해 곡작업을 한창 하던 때였다. 당시 2시간 30여분간 인터뷰가 이뤄졌는데, 여러 사정상 기사화된 부분은 10분의 1에 불과했다. 그래서 당시 이승열 소속사 측에 새 앨범이 나올 때를 맞춰 미수록 부분을 다시 게재하겠다고 양해를 구했다.
1970년생인 이승열의 음악 인생을 편의상 그의 20대(유앤미블루 시절), 30대(솔로 1,2집 시절), 40대(솔로 3집~현재)로 구분지어 보았다. 우연히도 그의 음악 인생이 변곡점을 맞는 시기와 10년 주기가 대략 맞아떨어진다.
이승열은 솔로 1집(2003년)과 2집(2007)을 내고 활동한 30대의 키워드를 ‘잠시만의 평화’라고 했다. 적은 수의 곡을 발표했지만 자신을 이해해 주는 기획사의 시스템 안에서 음악을 했다는 고마움이 담긴 말이었다. 20대에 흥행 측면에서 처절한 실패를 맛본 이승열은 30대에 낸 앨범을 통해 ‘대중성’에 대한 자신의 고민을 표출한다. 그런 뒤 그의 결론은 “나는 대중성을 파악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였다.
-97년 초 미국으로 떠나 가요계에서 멀어져있다가 2003년 솔로 1집으로 돌아오게 된다.98년부터 들어올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실현되진 못했다. 내 태도가 모순적이었거나 그리 적극적이지 않았을 수도 있다. 외부적으로는 IMF의 영향도 받았다. 음반사와는 2000년부터 꾸준히 이야기하다 우여곡절 끝에 현 소속사 플럭서스 뮤직 대표(김병찬 대표)를 만나 솔로 앨범을 내게 됐다.
-솔로로 복귀했을 때 이전 유앤미블루 시절과의 차이점은.감사하는 마음이 컸다. 죽었다가 살아난 정도는 아니지만 일종의 구제를 받았으니까. 유앤미블루 때 마구잡이로 음악을 만든 건 결코 아니지만 솔로 앨범을 준비하며 예전보다 더 공을 들이게 돼더라. 예전보다 작업할 때 훨씬 진지해졌다.
유앤미블루 1집을 보면 객관적으로 가사가 유치했던 것 같다. 가사도 쓰는 만큼 늘더라. 2000년 결혼해 아내가 방송작가인 점도 도움이 됐다. 가장으로서 책임감은 크게 느끼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런게 내안에 너무 침투하면 음악을 못할 것 같았다. 물론 가난한 게 음악에 도움이 된다고는 말을 못하겠다. 너무 없어도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 관념이 너무 투철해지면 악영향을 받을 거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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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중성’을 파악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내 음악을 듣는 이가 많고 적든 간에 내가 만들고 듣는 음악이 좋다고 믿고 기록하면 된다. 마케팅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1,2집 모두 내안에 있는 뭔가가 표출된 앨범들이다. 1집이 무의식에 가까운 생각을 바탕으로 만든 앨범이라면 2집에 대중성에 대한 고려가 담긴 것은 맞다. 그런데 유치한 수준의 고려였던 것 같다. 더 밝게, 덜 우울하게 노래를 만들면 되지 읺을까 정도의 고민을 했다. 그런데 나같은 스타일의 음악을 원하는 이들은 기본적으로 1집의 코드를 내게 원하는게 아닌가 싶었다. 그러나 2집을 더 좋아하는 이들도 있으니 앨범별이 아니라 한곡 한곡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2집에도 무거운 노래가 있기 때문이다.
-1집, 2집 중 공연 때 더 수록곡을 자주 부르게 되는 앨범은.상대적으로 공연 레퍼토리에서 누락이 많이 되는 앨범은 2집 같다. 내가 갖고 있는 감정이 수록된 앨범이긴 하지만 평상시 공연 준비하면서 내게 자연스럽게 나오는 감정선은 아닌 듯 하다.
-30대의 10년간 단 2장의 앨범만 낸 이유는.음악은 협업이 필수다. 만드는 과정은 내가 책임져야 하지만 레이블이 있고,협업을 하며 의견과 시기를 조율해야 한다. 앨범을 내지 않을 때 도닦는 마음으로 가만히 있었던 것은 전혀 아니다. 늘 곡을 쓰고 있었다. 30대에 앨범을 적게 낸 것에 대한 후회는 없다. 아주 새털 만큼 아쉬운 점은 있지만 후회는 없다.
-이승열이 대중의 주목을 받은 시기를 돌이켜 보면 본인 정규 앨범보다는 드라마(2014년 드라마 미생 OST ‘날아’)나 영화 OST(기다림, 비상) 혹은 방송(2009년 MBC ‘음악여행 라라라’ 첫 회에서 부른 원더걸스 노래) 등이었다. 다른 작곡가의 노래이거나 다른 예술과의 결합을 통해 시너지가 발휘된 경우들이다. 물론 정규 앨범에 담긴 이승열의 자작곡을 좋아하는 팬도 있지만 이승열 만의 목소리를 좋아하는 이들에겐 다른 작곡가의 곡에서 또다른 이승열의 매력을 느끼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고(故) 김광석 선배가 살아계신다면 여쭤보고 싶은 게 있다. 본인이 만든 노래보다 다른 이가 만들어준 노래 중 히트곡이 많은데, 기분이 어떤지 말이다. 그게 나쁜 것은 절대 아니다. 다른 이가 만들어 주는 노래를 불렀을 때 내가 더 돋보이거나 쾌감을 느끼는 부분이 있다면 계속 그쪽으로 나갈 텐데 나는 아직 내가 만든 노래를 부르는데 빠져있나 보다.
내가 만든 노래가 적으면, 가수 생활을 길게 봤을 때 아쉬울 것 같다. 그렇다고 다른 이들이 주는 노래를 완전히 차단하거나 내 곡이 아니면 안 한다는 건 결코 아니다. 그러나 내가 쓴 곡을 부르는 게 내겐 우선이다. 다른 이의 노래를 부르는 건 소속사와 나의 경제 활동의 수단일 뿐이다.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를 듣고 감탄한 적이 있다. 감정을 묘하게 만들더라. 그러나 내가 쓸 수 있는 노래도 아니고, 나는 남이 써준 노래로 감동을 주는 유형은 아닌 것 같다. 대중가수는 분명 남에게 사랑받기 위해 많은 부분을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하는데, 나는 히트곡이 없더라도-내가 추구하는게 뭔지 모르지만 그게 별 게 아닐지라도- 그걸 가져가고 싶다. 그래야 나중에 덜 후회할 것 같다. 나도 대중가수의 한 사람이지만 이 시스템 안에서 여러 다양한 유형의 가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편안한 현실만 노래하지 않는, 삐딱하고 과격한 ‘쟁이’들도 때로는 필요한 법이다.
-이승열의 ‘30대’를 정의내리는 키워드를 꼽자면.‘잠시만의 평화’다. 솔로 1,2집을 만들면서 느꼈던 감정이다. 회사의 든든한 지원을 받으며 하고 싶은 음악을 해 평화를 누렸다.
이지석기자 monami153@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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