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쇼트트랙 마지막 경기가 펼쳐지는 강릉 아이스아레나
강릉 | 박진업기자

[스포츠서울 김현기기자]심석희의 증언은 한국 빙상을 대표하는 현직 선수가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밝힌 것이어서 체육계를 넘어 한국 사회에 큰 울림을 주고 있다. 아직 이 사건을 경찰이 조사 중이고 구체적인 사실 관계를 다퉈야 하는 긴 절차는 남아있다. 그러나 심석희의 결단 자체 만으로도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있다. 그의 용기에 지지가 이어지고 있다.

심석희는 조 전 코치와 법정 공방을 벌이고 있다. 조 전 코치는 평창 올림픽 직전이던 지난 1월 진천선수촌에서 심석희를 폭행해 영구제명 징계를 받고 얼음판에서 쫓겨났다. 이후 중국 진출을 노렸다가 무산됐다. 지난해 9월 1심에서 징역 10개월 실형을 선고 받아 복역 중이다. 하지만 검찰과 조 전 코치 모두 항소를 제기해 지금은 2심이 진행되고 있다. 오는 14일 2심 선고공판이 수원지법에서 열린다. 심석희는 조 전 코치가 자신의 죄를 뉘우치기는 커녕 항소를 해서 집행유예 등을 노리는 것에 격분한 상태다. 또 주변 사람들을 통해 자신에게 합의서 등을 종용한다고 느끼고 있다. 이에 지난 달 17일 재판에 직접 출석해 조 전 코치가 자신과 처음 인연을 맺은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상습적으로 때렸다는 의견 진술을 펼쳤다. 지상파와 종편채널 주요 뉴스로 다뤄지는 등 심석희 증언의 파장이 컸다.

그런데 그가 입은 피해는 폭행이 전부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재판 참석 직전인 17일 오전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을 찾아 조 전 코치를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강간상해)’ 등의 혐의로 고소했기 때문이다. 심석희는 지난 달 14일 여성 변호사와 일대일 심층 면담을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자신이 미성년자이던 2014년경부터 조 전 코치가 무차별적 폭행과 폭언, 협박 등을 수단으로 하는 성폭행 범죄를 상습적으로 저질렀다고 했다. 아울러 조 전 코치의 처벌을 원한다는 의사도 내비치면서 추가 고소가 이뤄졌다. 현재 경찰이 조 전 코치의 휴대폰 등 전자기기를 압수, 디지털 포렌식 수사를 벌이고 있다.

폭행과 성폭행은 차원이 다르다. 여성 입장에서 성폭행 고백은 자신의 모든 인생을 걸 수밖에 없다. 증언 자체로 자신의 가장 어두운 과거, 숨기고 싶은 과거를 털어놓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심석희 가족들도 성폭행 증언 만큼은 고심을 거듭했다는 후문이다. 심석희는 한 팬이 자신에게 보낸 응원 편지에 큰 힘을 얻었다. 그 팬은 심석희가 아픔을 딛고 선수 생활을 열심히 하는 게 자신에게 큰 힘이 됐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보냈다. 이에 심석희는 자신과 비슷한 또 다른 피해자가 용기를 내 고백하고, 앞으론 이런 일 때문에 억압받고 짓밟히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결단을 내렸다. 그의 법률대리인인 법무법인 세종의 임상혁 변호사는 “심 선수가 정신적 충격 때문에 지금도 매일같이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며 “얘기하기 어려웠을 텐데 제2, 제3의 피해자가 생기는 것을 우려해 용기를 냈다”고 했다. 심석희는 이번 시즌에도 쇼트트랙 국가대표로 뽑혔으나 지난 11월 2차 대회 직전 어지러움증 등을 호소하며 대회를 포기하고 중도 귀국했다. 그는 법정에서 “평창 올림픽 여자 1500m 예선 도중 홀로 넘어진 것은 조 전 코치의 폭행으로 생긴 뇌진탕 후유증 때문”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체육계 관계자는 “가족들도 마지막 순간 심석희의 마음을 이해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가족들도 용기를 낸 셈”이라고 했다. 심석희는 지난 달 17일 재판에서 의견 진술을 할 때 “난 지금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내 아버지도 그렇다”고 했다. 피해자 입장에서 1심이 내린 조 전 코치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도 자신의 모든 것을 걸게 된 이유로 보인다. 앞으로도 쇼트트랙 선수로 살아가야 하는 심석희 입장에선 조 전 코치가 오는 7월 형을 마친 뒤 다시 경기장에서 나타났을 때 엄청난 충격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silva@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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