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박현진기자] 21대 총선을 앞두고 있는 요즘 뉴스에는 ‘말’과 관련된 단어가 유난히 많아졌다.
본격적인 선거에 돌입하며 각 후보들은 그 간 살아 온 소신과 신념을 담아 ‘출마(出馬)의 변’을 밝힌다. ‘출마‘는 ‘말을 마구간에서 끌어 내오다’라는 뜻에서 ‘전쟁터에 나간다’는 뜻으로 확대됐다. 승자와 패자가 확실히 가려지는 전쟁과 같은 선거운동을 펼치는 후보자들에게는 ‘출마’라는 단어가 무겁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경마에서는 기수와 경주마가 경주에 참가하는 것을 ‘출마’라고 한다. 선거에 출마하든 경주로에 출마하든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해 레이스를 펼치는 것은 똑같다.
개표가 시작되면 ‘경마식 보도’를 지양하자는 주장이 흘러나온다. 경마식 보도란 정당, 후보자에 대한 정보 대신 후보의 득표상황이나 당락에만 관심을 가지는 보도 행태를 일컫는다. 그러나 경마 중계가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 안다면 바뀌어야 할 표현이다. 근래의 경마 중계는 어떤 말이 선두로 달리는지 보다 경주마, 기수, 경주환경 등 다양한 정보를 종합적으로 제공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선거 중에 ‘다크호스’로 지목되는 후보자는 유권자나 다른 후보자들로부터 많은 주목을 받게 된다. ‘다크호스’는 1831년 벤자민 디즈레일리의 소설 ‘젊은 공작(The Young Duke)’에서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뜻밖에 우승한 말’을 가리키기 위해 사용됐다. 디즈레일리가 후에 총리까지 지냈기에 자연스럽게 정계에서도 사용되기 시작한 것으로 추측된다. 정계에도, 경마계에도 여러 다크호스들이 있었지만 ‘진짜’ 다크호스였던 ‘미스터파크’를 빼놓을 수 없다. 한국마사회 부산경남마공원에서 활약했던 경주마 ‘미스터파크’는 왜소한 체구 때문에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았으나 17연승을 기록하며 한국 신기록을 세웠다.
전쟁 같은 선거에서 승리자가 있으면 ‘낙마(落馬)’하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예로부터 말은 출세나 입신양명을 뜻했기 때문에 관직에 오르지 못하거나 성공가도를 달리다 떨어지는 경우 낙마했다고 말해왔다. 그러나 낙마했다고 모든 것이 끝나거나 실패하는 것은 아니다. 1만4492번이나 경주에 출전한 박태종 기수는 기수의 실력과 낙마 사고는 별개라고 말한다. 기수의 실력이 아무리 좋아도 말이 어떤 돌발행동을 할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낙마를 했더라도 다시 일어날 수 있다면 지금의 낙마는 더욱 실력을 다지고 마음가짐을 바르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인간만사는 새옹지마(塞翁之馬) 아닌가.
큰 선거 후에는 직제 개편. 개각이 뒤따른다. 이때 ‘하마평(下馬評)’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하마평은 ‘하마비(下馬碑)’에서 유래한다. 하마비는 궁궐이나 종묘 앞에 세워져 있는데 하마비를 지나갈 때면 말에서 내려야 했다. 조선시대판 정차장소인 하마비 주변은 늘 말(言)이 오고 가는 곳이었다. 관리들이 궁으로 들어가면 가마꾼이나 마부들은 토막정보로 관직에 오른 사람이나 오를 사람에 대해 평가하기도 했다. 이 인물평이 바로 ‘하마평(下馬評)’이다. 하마평은 곧 민심이니 결과를 점쳐볼 수 있다.
선거가 끝나면 후보자 홍보 현수막은 당선사례와 낙선사례들로 교체된다. 당선자든 낙선자든 감사를 표하며 다시 한 번 그 지역의 발전을 위해 다짐한다. 지역주민들은 정치인들이 선거운동을 하던 때와 마찬가지로 ‘견마지성’, 개와 말처럼 충성을 다하는 마음을 계속 보여주기를 바란다.
이처럼 선거시즌에 많은 말(馬)이 등장하는 것은 말이 가장 오랜 시간 동안 사람과 함께한 동물이기 때문이다. 말은 용감하고 충성스러운 동물로 우리 곁에 있었다. 조선시대 이유길 장군의 말은 장군이 지원군으로 출정했던 명-청 간 전투에서 전사하자 1000㎞를 달려와 가족에게 알리고 죽었다고 한다. 광해군은 이유길 장군을 기려 말의 무덤에 의마총이라는 이름을 하사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워호스’는 1차 세계대전에서 우여곡절을 겪다가 주인에게로 돌아간 말, ‘조이’의 삶을 그리고 있다. 한국전쟁 때 미군 소속으로 전장을 누볐던 ‘아침해’도 있다. 아침해는 1960년 하사로 은퇴해서 훈장도 받았다. 선거의 승리자들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말(馬)’처럼만 하기를 기대한다.
jin@sportsseoul.com
기사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