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염치가 없다.

권력을 위임받은 대통령은 군대를 동원해 국민에게 총을 겨누고 군홧발로 국회를 침범했다. 아픈 역사를 되풀이하고 싶지 않은 시민 앞에 저지당했어도, 죄책감조차 없었다. 1분 50초짜리 쇼츠 담화를 남기기 전엔 은은한 미소도 번졌다.

화가 잔뜩 난 국민은 엄동설한에 거리로 나왔다. 응원봉을 들고 삼삼오오 모여 ‘퇴진하라’고 외쳤다. 대통령이 스스로 물러나거나, 어떻게든 끌어내리라는 준엄한 심판이 동반됐다.

국민에 의해 선출된 여당 국회의원들은 국민의 뜻을 저버렸다. “헌정 안정을 위한 질서 있는 조기 퇴진”이란 명분을 내세웠지만, 국민의 눈엔 보신을 위한 ‘꼼수’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혼란한 탄핵정국, 대한민국 미래의 안개가 자욱한 가운데 2013년 개봉한 영화 ‘변호인’이 재조명되고 있다. 양심을 저버린 ‘법꾸라지’를 향한 일갈이 현 상황을 지켜보는 대중을 건드린 덕분이다.

“이게 재판입니까? 개판이지”

법꾸라지는 과거에도 있었다. 범인을 정해놓고 수사를 시작했다. 조작과 날조를 밥 먹듯이 했다. 군부 독재의 무력을 등에 업은 공권력은 마구잡이로 ‘빨갱이’를 만들었다. 대표적인 사건이 1981년 부산에서 발생한 부림사건이다.

‘변호인’의 배경이 된다. ‘먹고사니즘’이 중요했던 송우석(송강호 분) 변호사가 인권에 눈을 뜨기 시작한 건 이 사건의 변호를 맡으면서다. 송우석은 故 노무현 대통령에서 따왔다. 국가보안법 사건을 처음 맡은 송 변호사에게 원리 원칙대로라면 피해자는 무죄였다. 시중에 파는 책을 읽고 토론하고 공유한 게 전부이니까.

공권력은 공산당 조직을 만들려 했다면서 60일 이상 가뒀다. 근거는 “딱 보면 빨갱이를 아는 형사의 감각”이었다. 원칙이 무너진 재판이지만, 돌아온 말은 “유·무죄가 아닌 형량을 얼마나 줄이는가다”였다. 공산당에 대한 반감으로 정통성을 근근이 유지한 신군부의 폭력을 체감하는 순간이다.

형사와 검사, 판사가 한 몸이 돼 유기적으로 움직였다. 형사가 고문을 통해 가져온 조작된 진술서를 검사와 판사가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형식이다. 군부 독재의 서슬 퍼런 현실을 외면했던 송우석의 눈이 이글이글 타올랐다.

“재판이 개판”이라는 명대사를 “정치판도 개판”으로 바꿔 작금의 시대를 비춘다. 43년이 지난 대한민국에도 통용된다. 여전히 부끄러움을 모르는 위정자들이 존재해서다. 국가 위기에도 보신만 챙긴 여당 정치인들이 그들이다.

“야 이놈들아!!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려라!!”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건 2024년 12월에도 이어진다. 특별한 사유도 진심도 보이지 않은 대통령의 담화문을 듣고 여당은 그를 비호하기로 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소추안 표결을 앞두고 본회의장을 줄지어 나가는 뒷모습엔 양심은 거세돼 있었다. 국민과 헌법은 안중에도 없고, 자존심도 부끄러움도 없었다.

송우석은 분개했다. 다 이긴 싸움이 손바닥 뒤집듯 갈렸다. 고문받은 진우(임시완 분)를 치료한 군의관(심희섭 분)이 고문이 자행됐음을 증언했으나, 법꾸라지들은 군의관이 휴가를 신청하지 않은 탈영병이라는 날조로 방어했다. 탈영병의 피 같은 증언은 무용지물이 됐다. 균형을 유지해야 하는 판사는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송 변호사는 패했고, 진우는 2년을 감옥에서 지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린 셈이다.

“데모를 해가, 바뀔 세상이면은, 내가 열두 번도 더 바꿨어. 세상이 그리 말랑말랑한 줄 알아?”

고졸이라 대학을 가지 못한 송우석은 데모하는 학생들을 무시했다. “데모를 한 사람이 잘못이라면, 그 데모를 하게 만든사람은요?”라는 진우의 질문에 쭈뼛대던 송우석은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며 “데모하지 말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서슬 퍼런 시대, 말 한마디 잘못 했다가 소리소문없이 끌려가 고문받았던 선량한 시민이 적지 않았다. 영화 속 진우도 참혹한 역사의 피해자다. 대한민국은 딱딱하고 차가웠던 공포의 시대를 거슬러 왔다. 현실을 외면했던 송우석도 신군부의 폭력을 목격한 뒤 인권변호사가 됐다.

모난 돌이 정을 맞고, 계란으로 바위치기라 할지언정, 국민은 여전히 모이고 있다. 손을 맞잡고 함께 분노하고 있다. 피, 땀, 눈물로 이룬 민주주의의 역사를 알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소중한 내 나라와 우리의 일상을 지키려 했다. 그 노력이 오만한 권력자의 삐뚤어진 욕망을 막았다.

송우석이 우려한 시대는 변했다. 말랑말랑한 세상이 다가오고 있다. 욕망에 찬 위정자들은 바위를 위시한 솜뭉치일 뿐이다. 국민의 하나 된 목소리가 권력의 시녀를 압박하고 있다. 염치를 아는 자와 모르는 자들의 싸움이다. 결국 정의가 승리할 테다. intellybeast@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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