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나다가, 얄밉다가, 웃기다가…‘신스틸러’ 고건한 “싱크로율은 0%! 실제론 INTP”[SS인터뷰]

[스포츠서울 | 정하은기자] 허스키한 목소리와 소름 돋는 눈빛의 연쇄 성폭행범 양용철(SBS‘악의 마음을 읽는자들’), 분노를 유발하는 야비하고 지질한 유명 아이돌 빅터(SBS‘모범택시2’), 벨벳 수트도 찰떡같이 소화하는 귀여운 허세남 제임스한(영화 ‘롱디’)까지.

이 모든 게 한 얼굴이라고 믿겨지지 않을 정도다. 배우 고건한(35)이 매작품 인상깊은 연기를 펼치며 자신만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다.

고건한은 OCN ‘신의 퀴즈4’, JTBC ‘일단 뜨겁게 청소하라’, MBC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 KBS2 ‘조선로코 –녹두전’, MBC ‘꼰대인턴’, KBS2 ‘오케이 광자매’, KBS2 ‘법대로 사랑하라’, 넷플릭스 ‘스위트홈’, ‘수리남’, 영화 ‘범죄도시3’ 등 여러 작품에서 분노 유발과 유쾌한 웃음, 묵직한 감동을 오가는 다채로운 색깔을 선보여왔다.

뛰어난 캐릭터 해석력으로 ‘스위트홈’,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 ‘모범택시2’로 이어지는 악역 시리즈를 완성한 고건한이 영화 ‘롱디’로 또 다른 캐릭터 변신에 성공했다. ‘롱디’는 서른을 앞두고 장거리 연애를 시작한 도하(장동윤 분)와 태인(박유나 분)의 언택트 러브 스토리. 스크린라이프 기법의 영화로 SNS, 웹캠, 유튜브 화면 등을 통해 스크린에 펼쳐진다.

사람이 아닌 화면을 보고 연기를 해야 하는 점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특히 제임스한의 과장된 말투와 표정연기를 상대의 리액션 없이 카메라만 보고 연기해야 했다고. 그는 “‘이런 표정을 짓겠지’ ‘이런 반응이겠지’ 독백 연습을 했다”라며 “촬영 자체가 독특했다. 촬영 회차도 길지 않아 현장이 굉장히 타이트했다. 현장에서 실수하기 부담스러울 정도로 타이트한 촬영이어서 백프로 준비된 상태여야 했다. 부담도 있었지만 그래서 더 생동감 있게 나온 거 같다”고 말했다.

고건한이 연기한 제임스 한은 주인공 도하의 초등학교 동창이자 VIP 고객인 잘나가는 인플루언서. 도하와 태인의 갈등의 시작이 된 문제의 파티를 개최한 장난스럽고 가벼운 캐릭터로 도하에게 인간적인 호감을 느끼며 일이 잘되도록 밀어주려 하지만 도하를 곤경에 처하게 만드는 장본인이기도 하다.

사실상 ‘롱디’의 주요 사건에서 제임스한을 빼놓고는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극적인 사건들의 주축이 되는 인물이다. 영화 제목처럼 연인의 스토리를 그리지만 장동윤, 박유나 만큼이나 많은 분량과 임팩트를 남기는 캐릭터로 관람객들의 웃음 타이밍은 모두 제임스한을 향해 있다.

이런 제임스한에 고건한만의 유쾌함과 유머, 그리고 완벽한 완급조절을 더해 매력적인 캐릭터로 구축해냈다. 사실 고건한은 대구에서 자랐고 부산에서 대학을 나와 오랜 시간 부산에서 살았다. 그러다 보니 평상시 말투에도 경상도 사투리가 녹아있다.

교포의 억양과 뉘앙스가 늘 고민이었다는 그는 “재미교포인 원어민 영어 선생님에게 대사를 컨펌 받으면서 연습했다. 사실 영어 대사가 많진 않았는데 말투나 표정 등이 중요해서 언어 외적인 부분들을 많이 연구했다”라며 “과장되지만 또 너무 현실과 동떨어져 보이면 리얼리티가 떨어질 거 같아 신경을 많이 썼다. 농담이셨겠지만 현장 스태프들이 ‘진짜 교포 출신 아니시죠?’라고 하시더라. 만족했다”며 웃었다.

실제 롱디(장거리연애) 경험이 있다는 고건한은 “부산에 있을 때 서울과 부산 롱디를 한 적이 있다. 확실히 거리감이 있으면 더 애틋해지는 반면 불안함도 생긴다. 영화를 촬영하면서 ‘그땐 그랬었지’ 떠올렸다. 지나간 감정을 잡을 순 없고 보내줘야 하는 마음들은 한 번쯤 공감하시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제임스한의 스타일링도 빼놓을 수 없다. “데뷔 이래 가장 화려한 스타일링을 펼쳤다”는 그는 벨벳 수트부터 올림머리, 진한 화장 등 연신 화려한 스타일링으로 시선을 붙잡는다.

“의상팀에서 정말 신경을 많이 써주셨다. 의상 피팅 때도 실크부터 벨벳까지 다양한 소재의 수트가 있었다. 인플루언서이고 돈도 많고 그 사치스러움을 표현하고 싶어하는 인물이었기 때문에 의상에 특별히 신경썼다.”

실제 고건한과 싱크로율을 묻자 “0%다. 추리닝 좋아하고 후줄근한 티셔츠 입는다”라며 웃었다.

여러 작품에서 주연 못지않은 신스틸러로 웃음 혹은 분노를 유발하던 고건한은 MBTI(성격유형검사) 결과는 뜻밖에 INTP다. 극중 모습과 다르게 차분하고 진중하고 내성적인 편.

영상통화도 힘들어할 정도로 내성적이라는 고건한은 “친구들이 가끔 영상통화를 걸면 일부러 안 받고 샤워 중이거나 운동 중이라고 한다. SNS도 보시면 아시겠지만 ‘눈팅’ 정도만 하는 편이다”라고 말했다.

영화 ‘롱디’는 장동윤과 고건한이 호흡을 맞추는 세 번째 작품이기도 하다. KBS2 드라마스페셜 ‘우리가 계절이라면’을 통해 처음 연기 호흡을 맞춘 두 사람은 KBS2 월화극 ‘조선로코-녹두전’에서 남남 케미를 자랑하며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은 바 있다.

장동윤과는 고향(대구) 선후배 사이이기도 한 그는 “작품으로 만나서 같은 작품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 술 한 잔 할 수 있는 좋은 친구가 생겨서 기쁘다”고 말했다.

유독 전작들에서 ‘남남케미’가 많았던 고건한은 이번 작품을 통해 멜로 욕심이 생겼다며 “갈수록 사랑에 대해 생각할 나이이기도 하고, 예쁜 사랑 이야기 혹은 아픈 사랑 이야기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는 바람도 이야기했다.

최근 종영한 ‘모범택시2’에서는 버닝썬 사건을 다룬 에피소드 주인공을 맡아 많은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블랙썬’이란 클럽에서 마약, 성폭행 등 범죄를 일삼는 아이돌 빅터를 맡아 실존 인물인 승리를 연기하는 부담감도 따랐다.

그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여서 실제 부담이 없다고 하긴 힘들었다. 두려운 부분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쾌함과 재미를 드릴 수 있을 거 같다는 확신이 있어서 자신있게 할 수 있었다”라며 “방송 후에 많은 연락을 받았다. 드라마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스위트홈’의 아동 성범죄자, ‘악의 마음’의 연쇄살인마 등 빌런을 연기하는 입장에서 힘든 점은 없을까. 대부분 공감하기 어려운 인물들이라 늘 하면서도 ‘이게 맞나’하고 물음표가 많이 생기고 불안감이 든다는 고건한.

“내가 연기하는 인물이지만 공감하고 이해하기 싫은, 회피하고 싶은 부분들을 연기해야 하는 부분이 쉽진 않았다. 그걸 표현하기 위해 스스로 끄집어내야 하는 부분이 있어서 ‘악의 마음’ 원작자인 권영일 교수님과 미팅하며 질문과 답을 통해 해답을 얻었고 ‘스위트홈’에선 아동범죄 관련 책들을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