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잠실=김민규 기자] “야구계 선배 잘못이다. 후배들 볼 면목이 없다.”

인연조차 없었다. 그럼에도 야구계 후배 오재원(39) 악행에 ‘국민타자’는 거듭 고개를 숙였다. 마약 투약, 향정신성의약품 상습 복용 혐의로 구속된 오재원이 팀 후배들에게 대리처방을 강요하며 폭언·폭행까지 일삼은 추악한 민낯이 수면 위로 드러난 탓이다. 두산 이승엽(48) 감독은 “정말 안타깝다”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이승엽 감독은 23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2024 KBO리그 NC와 홈 경기를 앞두고 만나 “야구계에서 이런 일이 벌어져 안타깝다”며 “모든 것이 야구계 선배들 잘못이다. 선배가 잘못한 일에 후배들이 연루됐다는 게 너무도 안타깝다. 후배들 볼 면목이 없다”고 거듭 고개를 숙였다.

이 감독은 2023시즌부터 두산 지휘봉을 잡았기 때문에 2022시즌이 끝난 후 은퇴한 오재원과는 함께 생활하지 않았다. 하지만 오재원의 패악질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현재 사령탑으로서 책임감을 느낀 것이다. 팬들을 향해서도 문제없이 좋은 경기를 보여주겠다고 했다.

그는 “구단으로부터 ‘(대리처방을 한 두산 선수들이)자진 신고했고 규정과 원칙에 따라 조치를 취하겠다’고 보고 받았다”며 “우리 선수들이 그 문제에 걸려 있다는 게 안타깝고 빨리 제자리로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이어 “이미 벌어진 일이고 구단에서 잘 수습할 것이라 생각한다”며 “우리는 경기를 해야 한다. 경기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게 하겠다. 팬들이 경기장에 오기 때문에 좋은 경기를 보여줄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서울중앙지검 강력범죄수사부(부장검사 김연실)가 조사한 내용을 보면 오재원은 2022년 11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 11차례에 걸쳐 필로폰을 투약하고, 지난해 4월에는 지인의 아파트 복도 소화전에도 필로폰 0.4g을 보관한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해 1월부터 올해 3월까지 89차례나 지인으로부터 향정신성의약품인 ‘스틸녹스정(졸피뎀 성분의 수면유도제)’를 대리처방 받아 2242정을 수수하고, 20정을 매수한 혐의도 받았다.

이 과정에서 소속팀이었던 두산 후배 8명이 희생양이 됐다. 두산 후배들에게 대리처방을 강요하며 폭언은 물론 폭행도 서슴지 않았다. 이들은 폭행의 두려움으로 살기 위해 오재원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구단은 이런 사실을 KBO 클린베이스볼센터에 신고했고, KBO는 검찰의 조사 결과를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KBO 관계자는 “검찰 조사가 진행 중인 사안인 만큼 조사를 지켜볼 것”이라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마약 투약은 개인 일탈로 정리할 수 있다. 하지만 오재원은 사리사욕을 위해 믿고 따랐던 후배들을 범죄에 이용했다. 대리처방 자체는 범법행위임이 틀림없으나, 위계나 위력에 의해 어쩔 수 없이 가담한 것이라는 법리적 해석에 따라 선처받을 수도 있다.

한때 가슴에 태극마크도 달았다. 두산 프랜차이즈 스타로 팬들의 큰 사랑도 받았다. 하지만 오재원을 향한 응원은 야구팬들에게 대못이 돼 가슴에 박혔다. 결국 오재원이 저지른 추악한 행태는 야구계 선후배, 팬들이 떠안은 상처와 흉터가 됐다. kmg@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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