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 박연준 기자] “삼성의 히든카드죠.”
올시즌 삼성 불펜에서 가장 믿음직한 선수는 왼손 투수 백정현(38)이다. 빠른 공도, 전성기 시절의 구위도 없다. 짧은 이닝 안에서 정교한 제구와 노련미로 상대 타선을 흔든다. 삼성 박진만(49) 감독은 “백정현이 우리 불펜의 히든카드다”라며 공을 인정했다.
예년과 다르다. 올시즌 백정현은 현재 WHIP(이닝당 출루 허용률)는 0.49, 책임 실점은 1.17에 불과하다. 점수를 크게 내주지 않는다는 의미다. 전체 스트라이크 비율(CSW)은 31.4%로, 지난해(26.5%)보다 크게 상승했다. 헛스윙 유도 비율 역시 19.8%로 전년도 15.8%를 훌쩍 넘는다.
빠른 공은 없다. 평균 속구 구속은 시속 138㎞ 남짓이다. 그러나 슬라이더, 커브, 포크볼까지 다양한 구종을 구사한다. 타자의 타이밍을 완벽히 빼앗는다. 특히 결정구로 사용하는 슬라이더는 좌타자를 무력화시키는 핵심 무기다. 횡으로 휘는 궤적이 크다. 헛스윙을 유도하기에 충분하다.

박진만 감독은 “백정현은 선발에서 불펜으로 전환된 뒤, 짧은 이닝에 자신의 퍼포먼스를 모두 쏟아낸다. 투구 속도, 제구, 집중력 모두 향상됐다. 그게 지금의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다”고 분석했다.
백정현의 가치는 상황 대응력에서도 드러난다. 박 감독은 “불펜 좌완이 필요한 순간, 특히 롱릴리프나 왼손 타자 라인 상대로 백정현만 한 카드가 없다. (배)찬승이처럼 압도적인 구위는 없지만, 찬스 상황에서 좌타자를 확실히 제어해준다”라고 설명했다.

올시즌 삼성 불펜은 젊은 피가 중심이다. 이호성, 배찬승 등 선수들이 힘으로 찍어누르는 스타일이라면, 백정현은 그 사이 틈새를 메우는 전략 자원이다. 경험과 운영 능력에서 차별점을 보인다.
선발에서 불펜으로 옮겨온 결정적 이유도 박 감독의 판단이었다. “나이가 있다 보니 투구 수가 많아지면 확실히 힘이 떨어진다. 그래서 짧은 이닝에서 본인의 능력을 최대치로 발휘할 수 있는 불펜이 더 적합하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자신의 변화, 팀의 상황, 그리고 역할 재정립. 삼성이 백정현을 ‘히든카드’라 부르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눈에 띄진 않지만, 꼭 필요한 순간, 가장 믿고 쓸 수 있는 무기다. duswns0628@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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