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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정하은기자]“시집은 다 갔어요.(웃음) 이왕 이렇게 된 거 연기라도 더 나빠 보이게 해야죠!”
악역으로 주목받는다는 거에 충분히 속상할 만도 하지만 배우 이채영(33)은 웃었다. KBS1 일일극 ‘여름아 부탁해’을 통해 또 한 번 악녀로 변신한 이채영은 그야말로 천상배우였다.
이채영은 극중 사랑 앞에 이기적인 인물 ‘주상미’ 역을 맡았다. 이혼 후 화려한 싱글 라이프를 즐기지만 우연히 만난 김사권(한준호 역)에게 빠지게 되면서 평온했던 이영은(왕금희 역) 가정을 흔들고 김사권을 갖기 위해 가짜 임신 거짓말까지 꾸미는 인물이다.
어떻게 보면 일일극에 등장하는 흔한 악녀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이채영은 그런 주상미에 자신만의 색을 입혀 감정 이입을 극대화 시켰다. 이채영의 뻔뻔스러운 모습이 시청자들의 혀를 차게 만들다가도 “개룡남(개천에서 용난 남자)을 찾아달라”고 당당히 말하는 자유로운 영혼 주상미의 매력은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잡기 충분했다.
이채영은 “캐릭터를 구축한 뒤 막상 연기를 하고 보니 ‘너무 오바했나’ 싶기도 했다. 그런데 감독님께서 ‘상미답게 연기했다’고 좋아해 주셨다. 그간 봐왔던 차갑고, 버릇없고, 자존감 낮은 악역일 줄 알았는데 당당한 모습에 색다르게 느끼셨던 거 같다”고 회상했다.
이채영은 주상미가 ‘뻔하게’ 보이지 않기 위해 많은 연구를 했다고. 그의 고민은 캐릭터에 대해 이야기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상미는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는 아이인데, 사람들과 만나며 부딪히고 사건사고를 통해 성장하는 인물”이라고 설명한 그는 “‘왜 나쁜 짓을 저지르면서 상미는 항상 불안해할까’ 궁금했다. 이 아이 내면에는 인간적 도덕성은 있는데 그게 무슨 감정인지 몰랐던 거 같단 생각이 들더라. 금희가 아프다는 말에 쇼크를 받고 변화한 것”이라고 자신이 생각한 주상미라는 인물에 대해 이야기했다.
외적인 부분에도 신경을 기울였다. “상미는 자존감이 높고 매사에 당당한 사람이다. 부족함 없이 자란 베이스에서 나오는 당당함과 자신감이 센 인물이다. 그래서 스타일링에도 신경을 썼다. 지금 2019년 흐름에 맞추지 않고 과할 정도로 화려하고 도도하게 보이게 했다.”
악역을 연기하며 두각을 드러낸 그이지만 이미지가 고착화되는 것에 대한 부담감도 따를 터. 하지만 그에게선 그런 아쉬움은 찾을 수 없었다. “지금까지 정의로운 역할 7이라면 괴롭히는 악역이 3이었다. 그런데 악역에 대한 피드백이 더 좋더라”라고 운을 뗀 이채영은 “배우라는 직업은 봐주는 사람들이 있기에 존재하지 않나. 그들이 좋아하는걸 어떻게 더 완벽하게, 또 더 새로운 모습으로 진화해서 보여드릴까를 고민하는게 맞다고 생각한다. 악역이나 선한 역 구분 없이 더 재밌게 잘할 수 있는 역할이라면 최선을 다하는게 배우로서 역할이라 생각해 이미지가 굳어지는 것에 대한 걱정은 없다”며 성숙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면서 “이번 작품을 하며 가장 좋았던 부분이 방송 후 댓글에 ‘주상미 나쁘다’는 이야기가 많단 거였다. 이채영이 아닌 캐릭터 이름으로 불러주신건 제가 그만큼 몰입도에 기여했다는 거니 배우로서 기뻤다”며 “앞으로 어떤 악역을 떠올렸을 때 ‘이채영이 했음 잘할텐데’라고 대중이 느끼실 수 있도록 그 분야에서 1등인 배우가 되고 싶다”는 포부를 덧붙였다.
불륜의 중심에 선 인물을 연기하는 것에 대한 걱정은 없었을까. 이에 이채영은 “불륜은 극적으로 필요한 장치였다고 생각한다. 시놉시스를 보고 불륜이란 소재에 대해 부담감이나 거부감으로만 느꼈다면 출연 자체를 고민했겠지만, 이왕 할 거라면 어떻게 더 극적으로 보이게할까에 더 포커싱을 뒀던 거 같다. 불륜이란 단어가 어떻게 보면 자극적이고 부정적인 인식이 있는 단어지만, 그런 인식 속에 묻히는게 아니라 시청자들이 더 공감하실 수 있도록 노력했다”고 이야기했다.
가족드라마를 마친만큼 ‘여름아 부탁해’를 통해 결혼에 대해 생각하게 됐느냐는 물음에 그는 “실제로 결혼까지 이입하진 않았다. 다만 나이가 34살이다 보니 고민은 있다”며 “아직은 일이 더 좋아 연기에 더 집중하고 싶다. 그런데 아빠가 불안해하시긴 한다”며 웃어 보였다.
jayee212@sportsseoul.com
사진 | 강영조기자kanjo@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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