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박효실기자] 처음부터 끝까지 '이하늬의, 이하늬에 의한, 이하늬를 위한' 드라마였다.
SBS금토극 '원더우먼'이 십년묵은 체증도 한방에 쓸어내릴 유쾌통쾌한 복수극으로 16부작의 마침표를 찍으며 16일 박수 속에 막을 내렸다.
마지막회 시청률은 자체 최고인 17.8%(닐슨코리아 기준), 여배우를 원톱 주연으로 내세운 드라마에서 보기 드문 성공이다.
누적관객수 1626만명을 기록한 코믹수사극 '극한직업(2019)'에서 마성의 장형사로 숨겨뒀던 '코미디 DNA'를 폭발한 이하늬는 '원더우먼'에서 그 에너지를 16부작 내내 끌어올리며 시청률을 견인했다. 이하늬 아닌 다른 배우를 상상할 수도 없을만큼 매력적이고 강력한 힘이었다.
'원더우먼'에서 이하늬는 돈과 권력 앞에서 확실히 무릎을 꿇는, 뻔뻔하다 못해 징그런 비리검사 조연주와 유민그룹에 시집간 혼외자 강미나로 1인2역을 소화했다.
강미나가 한여름에 땀복같은 갑갑하고 짜증나는 캐릭터라면 조연주는 폭염을 늘씬하게 때려눕히는 폭풍소나기 같은 존재였다.
극 초반 뜻밖의 교통사고로 기억을 잃은 그가 '일란성 쌍둥이급'으로 닮은 강미나로 오인돼 유민그룹 며느리로 들어가면서부터 흥미진진한 전개가 시작됐다. 강미나는 한주그룹에 시집간 뒤 유민그룹 혼외자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모든 식구들에게 구박을 받는 처지였다.
영리하게 그룹 간 혼맥을 맺었다고 생각한 시아버지 한영식(전국환 분)은 "저 물건 내 눈에 안 띄게 하라"며 노골적으로 경멸했고, 시어머니 서명원(나영희 분)은 그녀에게 신체적 폭력도 서슴지않는 무소불위 갑이었다.
기억은 잃었으되 또라이 검사 기질은 생생한 조연주는 이 문제적 집안에 할말을 고래고래 하며 폭소를 안긴다. 자신한테 소리를 지르는 시아버지에게 "언성 높은 사람이 이기는 거냐? 여기가 노름판도 아니고"라며 버럭하고, 폭언하는 시어머니에게 "육십팔, 어머니 말대로 말을 가려서 하려니 할 말이 없다"라며 정색 비아냥을 한다.
연주가 못 알아듣는 줄 알고 영어로 이죽대는 시댁식구에게 유창한 영어로 면박을 주는가 하면, 급기야 베트남 출신 가정부와 베트남어로 시댁 욕을 하는 다국어 능력으로 웃음을 안겼다.
큰 키에 운동으로 다져진 몸은 액션에서도 빛을 발했다. 조폭 딸 답게 위기 상황에서 몸이 먼저 반응하는 액션으로 조폭이든 뭐든 겁없이 돌진하는 호쾌한 액션 연기로 리얼리티를 살렸다.
극중 상대역인 이상윤(한승욱 분)과 티격태격 로맨스를 이어가지만, 이마저도 기존 드라마에서 답습하던 좌충우돌 캔디를 돕는 만능 테리우스의 구도를 벗어났다.
한주그룹 서열 1위에서 아버지의 죽음으로 미국으로 도망치듯 떠났다 돌아온 승욱은 강미나와 조연주를 모두 돕지만, 궁극적으로 한주그룹에 얽힌 살인사건과 비리를 파헤치고 해결해가는 사람은 이하늬다.
마지막회 아버지마저 제끼고 한주그룹 회장 자리에 오르는 악의 축 한성혜(진서연 분)를 무너뜨리기 위해 스스로 인질이 되는 결정을 한 연주는 기어이 성혜의 범죄 자백을 이끌어내고, 이를 무수한 유튜버를 통해 생중계하며 한주 일가를 무너뜨린다.
첫사랑이었던 강미나인줄 알고 연주를 도왔던 승욱은 자신의 마음이 향하는 사람이 연주라는 것을 깨닫고, 직진한다. 하지만 연주가 스스로 자신을 만나러 와줄때까지 기다린다.
미국에서 승욱은 천체 망원경으로 별을 보던 꼬마의 질문에 답하며 '애뉴얼 패럴랙스(annual parallax)'를 설명한다. '애뉴얼 패럴랙스'는 지구의 공전으로 생기는 별의 시차를 의미하는 단어로 우리말로는 '연주시차'라고 부른다.
연주의 이름을 떠올리며 승욱은 미소 지었고, 두 사람의 엇갈린 시간은 마침내 연주가 승욱을 찾아 미국으로 오며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렸다.
'원더우먼'은 재벌비리, 검찰비리, 검언유착 등 우리 사회의 고질병들을 도마에 올려 신명나는 난타를 벌이며 즐거움을 안겼다. 자칫 잘못하면 무겁거나 우스워질 이야기는 이하늬의 몸을 던지는 열연을 통해 진정성과 재미라는 두 마리 토끼를 멋지게 잡아냈다.
2006년 미스코리아 진으로 대중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지만, 배우 이하늬의 진짜 필모그라피는 '열혈사제'와 '극한직업'이 동반흥행한 2019년에서 다시 시작한다고 해도 손색이 없다.
이하늬의 무궁무진한 매력을 담아낼 다음 작품, 다음 무대에 벌써 기대가 높아진다.
gag11@sportsseoul.com
사진출처 |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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