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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 장강훈기자] 가뭄에 콩 나듯 메이저리그 취재를 할 때마다 부러운 게 하나있다. 웅장한 구장 규모나 입이 떡 벌어지는 경기력도 물론 부럽지만, 승인된 취재진은 원하는 선수와 얘기를 나눌 수 있다는 점이다.
메이저리그는 라커룸이 개방된다. 경기를 앞둔 선수들과 제한된 시간 안에 자유롭게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지난경기 수훈선수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활약을 펼친 선수도 인터뷰이가 된다. 선수에 관한 다양한 얘기가 나올 수 있는 환경이 기본적으로 조성돼 있다. 극소수 선수를 제외하면 빅리거들은 취재진과 마주하는 것을 비즈니스 일환으로 인식한다. 구단에서는 루키시절부터 인터뷰 예절을 꽤 체계적으로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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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리그도 수 년 전부터 라커룸 개방에 관한 얘기가 나왔다. 이때마다 구단은 “선수들이 동의해야”를, 선수들은 “꺼리는 구단이 있다”는 식으로 곤란하다는 입장을 우회적으로 드러냈다. 최근 이 기류에 움직임이 감지됐다.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선수협)가 라커룸 개방에 대해 논의했다. 걸음마 단계이지만, 선수협과 한국야구위원회(KBO), 10개구단이 머리를 맞대면 해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생긴다.
선수협 양의지(34·NC) 회장은 “올해 총회에서 라커룸 개방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나왔다. 야구 인기는 자꾸 식어가는데, 돌파구를 마련해야하지 않느냐는 자성의 목소리가 선수들 사이에서도 나오기 시작했다. 화두를 던진 수준이라 외부에 공개할 단계는 아니지만, (인기회복을 위해)뭐라도 해야하지 않느냐는 공감대는 형성돼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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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커룸 개방. 선수 입장에서는 불편하다. 매일 누군가가 자신의 안방에 들어오는 셈이라 ‘유일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 침해를 받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잠실, 대전 등 낙후된 구장은 샤워실이 라커룸과 이어져있어 나체가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프로들이라고는 하나 유교문화가 남아있는 국내에서는 성별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양 회장은 “시간을 정해두고, 우선은 인터뷰 요청이 들어온 선수들만 라커룸에 대기하는 형태를 생각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메이저리그도 라커룸 이외의 공간은 취재진 출입이 제한된다.
난색을 표하는 구단은 대체로 낙후된 홈구장을 불가 이유로 꼽는다. 창피하다는 것이다. 열악하고 형편없는 구장 시설은 구단의 잘못이 아니다. 체육진흥법이 개정됐다고는 하나 다중 체육시설은 여전히 지방자치단체가 주인이라 의자 하나 바꿀 때도 시의회 의결을 거쳐야하는 실정이다. 구장 환경이 얼마나 열악한지 가감없이 드러내야 환경 개선 필요성을 소유주가 인식할 수 있다. 창피함을 드러내야 변화의지를 보이는 게 정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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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리그는 매일 단장, 감독의 생각만 외부로 드러나는 탓에 선수들이 만들어내는 스토리가 없다. ‘야구는 선수가 하는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정작 선수들의 생각을 들을 창구가 없다는 것은 팬 기만이다. 승리투수, 홈런타자뿐만 아니라 경기 흐름을 바꾼 대주자, 대수비 등의 이야기도 팬들은 궁금해한다.
라커룸 개방은 선수나 구단, KBO가 독단적으로 결정할 사안이 아니다. 머리를 맞대 국내 실정에 맞도록 가이드라인을 설정해야 한다. 개인의 이익이 아닌 식어가는 야구 열기를 재점화하기 위한 상호간의 대승적인 결단이 필요하다.
zzang@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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