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화성=황혜정기자] “멋지다, 이 선임!”
화제의 드라마 속 명대사를 외쳐주고 싶은 한 국가대표가 있다. 생애 첫 국가대표에 발탁되며 자신의 야구 인생에서 ‘영광’을 맛본 이하형 씨가 그렇다. 하형 씨가 야구를 시작한 것이 대학교 1학년 20세였으니, 딱 10년 만에 맛본 영광이다.
하형 씨는 “내가 국가대표가 된다는 게 허황된 일로만 느껴졌다. 그래서 뽑혔을 때 어안이 벙벙했다”며 환하게 웃었다.
“야구를 10년 동안 하면서 5년은 정말 가볍게, 취미 정도로만 했어요. 그래도 10년을 했는데, 내 10년의 야구가 헛되지 않았다, 인생에 ‘기록할 만한 한 페이지’가 생긴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하형 씨는 국가대표 이전에 한 외국계 회사에서 월화수목금을 보내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직책은 선임. 2018년에 직장 생활을 시작해 6년 차가 됐다. “팀장님이 LG 트윈스 팬이라 야구를 좋아하신다. 그래서 크게 축하해주셨다. 부모님도 정말 좋아하셨다. 친언니랑 남동생은 (5월 26일)대회가 열리는 홍콩까지 따라오겠다고 했다.”
대표팀 양상문 감독이 이끄는 여자야구 국가대표팀은 오는 5월 26일 홍콩에서 아시안컵(BFA)에 출전한다. 12개국 중 4위 이내에 들면 세계대회 출전권을 따낼 수 있다.
그렇다면, 하형 씨가 야구를 처음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대구에서 나고 자라 삼성 라이온즈의 골수팬이라는 하형 씨에게 운명처럼 다가온 순간은, 지난 2010년 삼성이 두산과 플레이오프 1차전을 치르던 8회말이었다.
하형 씨는 “당시 8회말, 박한이가 역전 3점 홈런을 친 순간이다. 정말 멋있다고 생각했다. 당시 내가 고등학교 1학년이었는데, 그 순간을 집에서 중계로 지켜보다가 ‘나도 야구를 해보고 싶다’라고 생각했다”라며 운명처럼 다가온 그 순간을 회상했다.
박한이 현 삼성 라이온즈 코치는 당시 3-5로 지고 있던 8회말 2사 1, 2루에서 우중간 담장을 넘기는 역전 3점포 쏘아 올렸다. 박한이는 이 홈런으로 삼성의 승리를 가져온 동시에, 하형 씨 마음속에 ‘야구를 직접 하고 싶다’는 불꽃 또한 지핀 셈이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야구를 시작한 것은 대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다. 하형 씨는 “당시 수능을 준비해야 하는 고등학생이기도 했고, 여자야구 팀이 있다는 생각을 자체를 못했다. 대학생이 되고 나서야 대구에 여자 사회인 야구팀이 있다는 걸 알게됐다”고 설명했다.
서울에 있는 직장으로 이직을 한 뒤, 하형 씨는 현재 서울에 있는 여자 사회인 야구팀에서 운동하고 있다. 하형 씨는 여자 사회인 야구팀 ‘이스트서울’의 주장으로 팀을 이끌고 있다.
“야구는 30살 이하형에게 20대의 전부다. 서울에 올라오고 나서는 연고가 없었다. 혼자 자취하고 회사에 다니고 만 반복하며 살았는데, 인간관계가 전부 야구로 인해 생겼다”라며 소속팀에 애틋한 감정을 드러냈다.
10년의 길 끝에 생애 첫 태극마크를 달게 됐다. 하형 씨에게 태극마크는 어떤 의미일까. “책임감을 많이 느낀다. 나는 아직 부족하다. 평범한 실력이지만, 야구를 좋아하기에 내가 내 돈을 내고 야구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국가대표가 됐다고 한국여자야구연맹(WBAK)에서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많이 해주신다”며 감사함을 드러냈다.
하형 씨는 “양상문 감독님도 팔이 아프실 텐데 배팅볼을 계속 던져주시고, 코치님들도 정말 열과 성을 다해 지도해주신다. 여러모로 (아마추어인 내가) 지원을 많이 받고 있다. 이 유니폼도 하나의 지원인데, 정말 큰 책임감을 느낀다. 국제대회에서 성적을 잘 내야지 다음 국가대표를 하는 친구들도 좋은 지원을 받으며 할 수 있다. 다 연결되는 거다”라고 했다.
하형 씨의 말처럼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 주목받는 것이 향후 여자야구 발전을 위한 과제 중 하나다.
“나는 여자야구 1세대가 아니다. 이분들이 닦아온 길이 있어 나는 비교적 쉽게 야구에 입문했다. 여자야구는 하고 싶다는 의지만 있다면 몸만 오면 된다. 글러브도 제공해주고, 코칭도 해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비교적 편하게 야구를 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일까. 하형 씨는 선배들로부터 받은 것을 미래 세대에게 돌려주고 싶은 마음이 크다.
“야구를 하고 싶어 하는 어린 여학생들이 더 어릴 때, 더 쉽게 입문할 수 있도록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싶어요. 우리가 좋은 결과를 내면, 여자야구가 더 활성화될 거예요. 그럼 더 많은 선수가 생길 수 있겠죠. 여자야구가 잘 되어가는 하나의 과정이라 생각해요. 그 과정에서 저는 그저 하나의 흙을 뿌리고 싶어요.” 멋진, 국가대표 이 선임의 결연한 출사표다. et16@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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