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조은별기자]2018년 추석 연휴 어느 날이었다. 영화 ‘클로젯’ 크랭크인을 앞두고 있던 하정우는 영화 제작사 BA엔터테인먼트 장원석 대표의 전화를 받았다. 영화 ‘터널’(2016)을 함께 한 김성훈 감독이 연출하는 신작 ‘피랍’의 시나리오와 관련된 이야기였다. 당시 ‘클로젯’ 촬영이 급했던 하정우는 장대표에게 “‘터널’의 김성훈 감독이면 시나리오 볼 필요도 없이 그냥 하겠다”고 답했다.

“‘터널’을 통해 김성훈 감독의 꼼꼼함을 이미 인지하고 있었어요. 그분은 영화에 부족함이 보이거나 구멍이 생기거나 에너지가 떨어지는 걸 가만두고 보지 않으세요. 자기 피를 부어서라도 어떻게든 작품을 만들 사람이죠. ‘터널’ 촬영 전 장원석 대표, 김성훈 감독과 함께 일본 오사카 여행을 갔는데 하루 14시간씩 시나리오를 보며 ‘터널’의 많은 부분들이 정리가 됐어요.”

캐스팅부터 개봉까지 무려 5년이란 시간이 걸린 영화 ‘비공식작전’의 이야기다. ‘비공식작전’은 1986년 레바논 한국대사관에 근무하던 한국 외교관이 출근 도중 무장 괴한에 납치됐다 1년 9개월만에 송환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하정우는 극 중 흙수저 출신 외교관 민준으로 분했다. 미주, 유럽은 일명 ‘라인’을 탄 ‘성골’ 외교관들만 발령받는 현실의 쓴맛을 자각한 민준은 우연히 실종된 동료가 보내온 구조신호 전화를 받게 된 후 미국 발령을 조건으로 레바논 비공식 구조작전에 자원한다.

1980년대 중동이라는 시대적, 지리적 배경은 차치하더라도 배우들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영화는 당초 2020년 3월 초 크랭크인 예정이었지만 전 세계를 휩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촬영이 한차례 연기됐다. 다시 촬영이 재개된 건 2022년. 하정우는 그 사이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수리남’을 찍었다. 연이은 외국 생활의 연속이다 보니 흡사 다시 군에 입대한 느낌까지 들었다 한다.

4개월간 이어진 모로코 로케이션은 주지훈이 직접 담근 장조림, 하정우가 현지에서 직접 재료를 사서 만든 오징어 젓갈과 오이지로 배를 채웠던 나날이다. 더위, 모래바람에 라마단기간까지 겹친 삼중고였다. 각자 만든 음식과 미리 공수한 김치를 나눠먹으며 우애를 다졌다.

“김성훈 감독님이 구축한 ‘강제합숙’ 덕분에 케미가 더욱 좋아졌어요.(웃음) 저도 카체이싱을 4개월 내내 찍을 줄 몰랐죠. 옥상에서 탈출하는 장면도 한달 내내 찍었죠. 그야말로 고생 종합선물세트였어요.”

힘든 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 건 상대역인 주지훈, 그리고 김성훈 감독의 힘이 컸다. 하정우는 “해외 로케이션을 가면 사람이 그리운데 모로코에서는 지훈이와 저밖에 없었다”며 “‘신과 함께’를 통해 주지훈과 이미 한차례 호흡을 맞췄던 터라 죽이 척척 맞았다. 주지훈은 안 웃기는 듯 코미디에 숟가락을 얹는 배우”라고 평했다.

김성훈 감독에 대한 신뢰도 상당했다. 하정우는 “김성훈 감독은 순수한 로맨티스트”라고 정의하며 “‘터널’은 도롱뇽 한 마리 때문에 벌어진 일이고 ‘비공식작전’ 역시 납치된 사람 한명을 구조하는 이야기다. 그만큼 세상사가 사람답게 돌아가기를 바라는 분이다. 정부의 무능함과 관료들을 향한 비판은 감독님의 시선에서는 일종의 요구사항이다. 나는 그런 면이 순수한 로맨티스트답다고 생각한다”고 평했다.

영화는 납치된 외교관을 구하는 이야기지만 심각하지 않다. 오히려 하정우, 주지훈 특유의 너스레와 유머가 영화 전반부에 배치돼 긴장을 풀어준다. 승진에서 물을 먹은 민준이 승진한 동료가 받은 화분에 모기살충제를 뿌리거나 하는 식이다.

“감독님에게 우리의 적은 ‘모가디슈’나 ‘교섭’같은 과거의 전작이라고 얘기했어요. 중동이 배경이면 지루하다는 선입견이 큰데 여름에 개봉하는 상업영화는 오락성이 강해야 하잖아요. 다행히 김성훈 감독님 역시 유머 본능이 내재된 분이에요. ‘터널’ 때도 터널 안에 갇힌 사람이 마냥 우울해하기보다 개 사료도 먹고 개랑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감독님 역시 무슨 일이 생기면 움직이는 분이죠.”

하정우 역시 9월부터 자신의 작품을 촬영 예정이다. ‘로비’라는 가제가 붙은 이 작품은 국가사업권을 따내려 하는 골프로비를 하는 연구원의 이야기를 그린다. 하정우 자신이 직접 출연하며 음주운전으로 물의를 빚었던 배성우도 캐스팅 물망에 올라있다.

“코로나 시국에 골프를 배웠는데 골프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이면이 재미있었어요. 평소에 얌전한 사람이 필드에서 야수같다거나 경기 전 ‘오늘 손을 다쳤다’, ‘장염에 걸렸다’ 변명하는 경우도 많고요. 인간의 날 것같은 이면을 봤다고나 할까요.”

그는 ‘로비’ 촬영 외에도 강제규 감독이 찍은 ‘1947 보스턴’ 개봉도 앞두고 있다. 바쁜 나날이지만 건강을 지키기 위해 걷기 운동도 꾸준히 하고 있다. 올 초 ‘로비’ 프로덕션이 시작됐을 때 아예 차를 팔고 뚜벅이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나이를 먹을수록 아버지(배우 김용건)를 닮아간다는 말을 종종 듣곤 해요. 나이가 드니 이또한 익숙해져야겠죠. 하하, 외모도 외모지만 내면이 더 중요한 만큼 매일 걷기운동을 통해 저를 가꾸고 있어요.”

mulgae@sportsseoul.com

기사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