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조은별기자]‘아는 맛’이 무섭다고 했지만 영화 ‘비공식작전’의 김성훈 감독은 이같은 수식조차 거부했다. 영화 ‘모가디슈’와 ‘교섭’에서 보여준 중동지역 한국인 납치사건 이야기, 영화 ‘터널’의 하정우와 넷플릭스 ‘킹덤1’의 주지훈까지. ‘아는 맛’이라고 착각할 수 있지만 들여다보면 볼수록 다른 이야기라는 게 김감독의 설명이다.

2일 개봉한 영화 ‘비공식 작전’은 1986년 레바논의 한국 외교관이 무장 괴한에게 납치됐던 실화를 모티브로 1년 8개월 전 실종된 레바논 주재 서기관을 구하기 위해 레바논으로 향하는 중동과 외교관 민준(하정우)과 그를 돕는 현지 택시기사 판수(주지훈)의 이야기를 그렸다.

김감독은 “새롭지 않은 작품을 또 하는 건 나 역시 괴롭다”며 “만약 ‘비공식작전’이 (‘킹덤’처럼) 말을 타는 작품이었다며 안했을 것이다. 내가 잘하는 것을 더 잘하면서 변주해보고 싶었다”고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베테랑’ 배우 하정우의 대본 완독, 자극받은 주지훈의 의상 아이디어

김감독의 자신감의 원천은 배우다. 영화는 서울의 외교부 근무자와 중동지역 갱단으로 출연하는 일부 외국인 배우들을 제외하면 80% 이상의 신을 중동과 외교관 민준 역의 하정우, 레바논의 한국인 택시기사 판수 역의 주지훈이 소화한다.

하정우와는 영화 ‘터널’(2016)을 통해 이미 한차례 호흡을 맞춘 바 있다. 익숙한 배우들의 장점은 감독이 별도의 디렉팅을 주지 않아도 연출자의 의도를 파악한다는 점이다. 김감독은 “하정우는 이런 일반적인 배우의 장점을 뛰어넘었다”고 설명했다.

“첫 미팅 자리에서 책(대본)을 읽는데 하정우 씨가 마치 처음 연기를 하는 사람 마냥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어보자 하더군요. 모든 배역은 물론 지문까지 다 읽었어요. 대체 하정우같은 베테랑이 그럴필요가 있나 싶었는데 마치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어린이가 기본부터 배우듯 땀을 뻘뻘 흘리며 수차례 리딩하는 모습에 ‘터널’ 때 제가 미처 보지 못한 하정우 씨의 새로운 면모를 보게 됐죠.”

주지훈과 미팅 때 이같은 하정우의 모습을 귀띔해줬다. 주지훈 역시 승부욕이 발동했는지 “나랑도 읽어보자”며 김감독을 붙잡았다. 모델 출신인 주지훈은 극중 안기부장으로 출연하는 김응수가 테니스를 치다 트레이닝복을 입은 채 외교부를 찾는 아이디어도 제안했다. 김감독은 “아는 배우가 그 이상으로 작품에 접근하는 모습에 기대를 감추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그 결과물은 132분을 관통하는 풀샷 중 두 배우가 만나는 30분께서 빛을 발했다. 김감독은 “두 사람이 점으로 보일때쯤 저 두 배우를 캐스팅하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하정우가 연기한 민준은 공무원의 각잡힌 틀을 벗어나려는 인물입니다. 개인적인 욕망이 강하고 순발력도 있는데 배우가 가지고 있는 순발력과 맞아 떨어져 시너지가 상당해요. 주지훈이 연기하는 판수는 사기꾼이지만 그럼에도 연민과 동정을 얻어요. 주지훈의 너스레는 하정우와는 다른 느낌의 장점이죠.”

◇벤츠 8대 파손 시키며 촬영...‘대세에 지장없다’는 자기타협 피하기 위해

‘터널’에서는 무너진 터널 속 비좁은 차안에 갇힌 생존자 하정우를 포착했다. ‘킹덤1’에서는 좀비 떼를 피해 대청마루 밑에 숨은 왕세자 주지훈을 그렸다. 좁은 공간에 갇힌 사람을 묘사하는 건 김성훈 감독의 장기다. 김감독은 “어린 시절 숨바꼭질 놀이를 하다 장롱에 갇힌 트라우마가 있는데 당시 경험이 영화에 반영된게 아닌가 싶다”며 웃었다.

‘비공식작전’도 예외는 아니다. 레바논 거리를 질주하던 판수의 벤츠 택시가 좁은 골목에 끼인 상황을 리얼하게 묘사했다. 엑셀을 아무리 밟아도 벽과 벽 사이 낀 택시가 옴짝달싹 하지 못하는 상황은 보는 것만으로 손에 땀을 쥐게 한다.

김 감독은 이 장면을 포함, 카체이싱 장면에서 벤츠 차량 8대를 파손시켰다. 1980년대에 출시된 구형 벤츠W123 10대를 어렵게 구했는데 차로 도심 돌계단을 질주하는라 4대가 ‘걸레짝’처럼 너덜너덜해지는 등 8대가 회생 불능상태가 됐다는 후문이다. 김감독은 “차 한 대 부술 때마다 ‘저게 얼마야’ 하면서도 완벽한 완성도를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데뷔작이 ‘폭망’해 8년간 강제칩거한 적이 있어요. 그때만 해도 저는 ‘이렇게 찍어도 대세에 지장없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곤 했죠. ‘관객은 모를거야’라고 생각했는데 ‘폭망’도 그런 ‘폭망’이 없었어요. 생각해보니 같이 사는 아내의 마음도 모르는데 불특정 다수 관객의 마음을 제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제작진이 100점이라 생각해도 관객 눈에는 오점이 보이는 마큼 완벽에 완벽을 기해야 한다 생각했죠.”

방망이 깎는 장인정신으로 만든 ‘비공식작전’은 앞서 개봉한 ‘밀수’, 같은 날 개봉하는 ‘더문’, 1주일 뒤 개봉하는 ‘콘크리트 유토피아’와 치열한 경쟁을 펼친다. 김감독은 “현실적으로 부담이 되지만 파이가 커진만큼 공들인 영화가 증명할 것”이라고 자신감을 표했다.

mulgae@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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