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조은별기자]잘 자란 ‘박찬욱 키즈’와 ‘연기의 신(神)’의 만남은 옳았다. 이달 9일 개봉을 앞둔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감독의 연출과 배우의 연기가 환상의 공수호흡을 이루며 한국형 재난물의 지평을 넓힌 작품이다.

김숭늉 작가의 웹툰 ‘유쾌한 왕따’를 창의적으로 각색한 영화는 대지진 후 폐허가 된 서울에서 유일하게 남은 아파트로 생존자들이 모여들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주민대표 역의 이병헌의 폭발하는 연기와 더불어 신혼부부 박서준과 박보영, 부녀회장 역의 김선영 등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중심을 잡으며 콘크리트로 지어진 직사각형 아파트의 중심을 잡았다.

엄태화 감독은 박찬욱 감독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던 미장센 단편영화제 출신답게 스승 못지 않은 빼어난 미장센으로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압도적인 미장센과 명징한 메시지로 관객 사로잡아

그간 아파트를 배경으로 한 재난물이 적지 않았다. 지난 2021년 방송된 tvN 드라마 ‘해피니스’는 감염병 시대 살아남은 아파트 생존자들을 그렸고 박신혜, 유아인 주연 영화 ‘살아있다’(2020) 역시 재난으로 아파트에 고립된 이들의 생존기를 묘사했다.

이는 ‘아파트’가 단순히 거주지 이상을 넘어 사회적 계급을 상징하는 한국사회 특유의 문화가 반영된 결과물이다. 하지만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비슷한 소재의 작품을 뛰어넘는 압도적인 미장센과 연기력, 그리고 명징한 메시지로 관객을 향해 돌진한다.

영화는 시작부터 재난으로 콘크리트 잔해만 남은 서울시내를 비춘다. 재난이 예고없이 찾아오듯 지진이 벌어지는 전조를 묘사하거나 아슬아슬하게 현장을 빠져나오는 긴박한 액션으로 이야기를 빙빙 돌리며 시간을 허비하지 않는다. 그저 모든 것이 무너져 폐허가 된 세상에서 간신히 생존한 이들이 유일하게 건재한 황궁아파트로 모여드는 장면을 포착한다.

어린 자녀의 손을 놓지 않으려는 남루한 차림의 어머니, 명품 머플러를 두른 전직의원과 보좌관, 같이 살자고 목소리를 높이는 건장한 사내 등 살아남은 이들의 모습도 각양각색이다.

영화는 극단적인 재난 앞에 ‘생존’을 놓고 변질돼가는 인간의 이기심과 그럼에도 따뜻한 인류애를 놓지 않으려는 일부 선량한 주민들의 가치관이 충돌해가는 과정을 차근차근 보여준다.

영화의 배경인 복도형 아파트는 때로 생존자들의 피난처였다, 때로 이기심의 발로가 돼 관객의 마음을 파고든다.

특히 주민대표 김영탁 역의 이병헌이 주민 잔치를 벌이며 ‘아파트’를 부르는 장면에서 아파트에 비친 사람들의 그림자는 흡사 ‘악귀’를 보는 듯한 인상마저 안긴다. 이 장면은 향후 몇 년간 따라오지 못할 한국영화사의 인상적인 미장센이 될 전망이다.

◇장르를 넘나드는 이병헌의 힘! 평범한 주민 박서준과 박보영의 물샐 틈 없는 연기

영화를 이끄는 힘은 단연 이병헌이다. 그는 평범하고 숫기없는 사내에서 ‘주민대표’라는 완장을 찬 뒤 광기에 사로잡혀 괴물로 변하는 영탁을 탁월하게 소화해냈다. 영탁의 변주에 따라 영화는 블랙코미디에서 스릴러와 서스펜스, 공포로 장르를 넘나들며 질주한다. 이병헌의 존재 자체가 무너지지 않는 황궁아파트 같은 느낌마저 안긴다.

이병헌이 극의 드라마를 담당했다면 행복한 가정을 꿈꾸는 신혼부부 민성과 명화 역의 박서준과 박보영, 그리고 부녀회장 역의 김선영은 이타심과 이기심 사이에 놓인 인간군상으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세사람 모두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연기력으로 극을 물 샐 틈 없이 채운다.

감독의 친동생인 배우 엄태구는 표정만으로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으며 신스틸러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영화는 제목인 ‘콘크리트 유토피아’처럼 콘크리트 잔해 속에서 살아남은 이들을 통해 그럼에도 인간이 희망이라는 메시지를 세련되고 따뜻하게 전한다. 15세 관람가. 130분.

mulgae@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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