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유다연인턴기자] “대중은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오히려 홍보효과가 있을 수 있다.” (김성수 대중문화평론가)
“공포, 미스터리 장르를 믿는 시민들이 있기 때문에 우려된다.”(강원도민)
‘토막사체’를 소재로 한 영화 ‘치악산’이 무사히 개봉될 수 있을까. 강원도 원주시는 한국 명산 중 하나로 꼽히는 치악산이 공포 영화 작품명에 쓰이는 것에 강하게 반발하며 영화 ‘치악산’에 대해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과 손해배상청구소송 등 강력한 법적 조치를 취할 계획이라고 27일 밝혔다.
영화는 1980년대 토막 사체가 발견됐다는 ‘치악산 괴담’이 소재로 15세 이상 관람가다. 영화 속 소재는 허구의 괴담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원주시는 최근 전국적으로 강력 범죄가 벌어지고 있어 주민들이 불안감을 호소하고 모방범죄를 우려한다며 ‘치악산’이라는 제목을 사용하는 것에 강하게 반발했다.
제작사 도호 엔터테인먼트가 지난 23일과 24일 원주시와 만나 협의하는 과정에서 원주시는 1) 실제 지명인 ‘치악산’이 그대로 사용된 제목 변경 2) 영화 속 ‘치악산’이라는 대사가 등장하는 부분을 삭제, 또는 묵음처리 3) 영화 본편 내에 실제 지역과 사건이 무관하며, 허구의 내용을 가공하였음을 고지 4) 온라인상에 확산된 감독 개인 용도의 비공식 포스터 삭제 등을 요구했다.
하지만 제작사는 영화가 허구임을 알리는 자막이 들어가 문제가 없을 거란 입장이다. 원주시의 치악산 관련 대사나 해당 지명 삭제 요구에 대해서는 주연 배우 중 하나가 병역 의무를 지고 있어 힘들다는 입장을 내놓기도 했다.
양측의 입장이 엇갈리는 가운데 지역주민과 전문가들은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 강원도 원주시 출신으로 춘천소재 대학에 재학 중인 한 대학생은 “이전에 개봉한 영화 ‘곤지암’도 그렇고 공포, 미스터리 장르의 경우,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고 믿는 사람이 있어 이런 현상이 지양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반면 김성수 대중문화평론가는 “지명이 특정 작품과 연결되어 알려지는 효과들이 더 크다. 작품에서 실제 지명과 사건은 관계가 없다고 알리면 대중은 이를 더 객관적으로 보려고 한다”며 “오히려 영화의 배경이 된 장소나 지역이 관광 명소로 바뀌는 경우가 많으니 지자체에서는 콘텐츠로 어떻게 쓸지 전략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과거에도 지방자치단체들은 실제 지명을 콘텐츠에 사용하는 것에 강하게 반발하기도 했다. 2016년 전남 곡성군은 영화 ‘곡성’이 실제 지명을 쓰는 것에 우려의 뜻을 표했다. 결국 곡성군과 제작사가 영화명을 한자 ‘곡성’(哭聲)으로 바꿔 표기했다.
또, 영화 시작 전 ‘이 영화는 실제 지명과 상관없다’는 자막을 삽입하기로 결정했다. 수월한 협상 덕분에 ‘곡성’은 개봉 1주 만에 손익분기점인 300만 명을 돌파했고 누적 관객 수 687만 명을 기록했다.
2018년 개봉한 영화 ‘곤지암’도 경기 광주시에 있는 곤지암 정신병원에서 따온 이름이다. 영화 개봉 전 일부 주민들이 반발했고 정신병원 건물 및 부지 소유주가 명예훼손을 주장해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곤지암’은 소유주 개인을 소재로 한 영화가 아니니 소유주의 명예와 신용이 훼손된다는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괴담은 영화가 제작되기 전부터 세간에 퍼져 여러 매체에서도 보도됐다”고 판결했다.
이같은 논란 덕분에 영화가 유명세를 얻으면서 ‘곤지암’은 손익분기점인 70만명을 넘어섰고 총 267만 명의 관객을 모으며 청소년 관람 불가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흥행에 성공했다.
실제 지역명을 사용하는 것은 국내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문제가 된다. 지난해 9월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수리남’은 남미 국가 수리남을 장악한 마약 대부 때문에 누명을 쓴 민간인이 국정원의 비밀 임무를 수락하며 벌어지는 사건들을 담은 작품이다.
글로벌 OTT를 통해 전세계 190개국에 공개된 이 드라마는 영어제목으로 수리남의 영문 명인 ‘수리남’(Suriname)을 쓰면서 수리남 정부의 항의를 받았다. 당시 수리남 외교부 장관은 국가 이미지 훼손에 대한 강한 불만을 제기했고 법적 조치까지 시사했다. 결국 드라마 영문 제목을 ‘나르코스 세인츠’(Narcos-Saints)로 변경하며 합의점을 찾았다.
willow66@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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