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바티칸(이탈리아) = 박효실기자] 200년 전 조선, ‘천주쟁이’라는 밀고가 사형선고와 같던 시대, 희광이의 서슬 퍼런 칼날에 조선의 첫 사제 김대건 신부의 목이 툭 떨어졌다. 1846년, 푸르디푸른 청년의 나이 스물여섯이었다.
큰 키에 서글서글한 얼굴, 프랑스어와 중국어, 라틴어는 물론 세계지리까지 능통했던 영민한 청년의 이름은 김대건 안드레아, 서구 열강에 둘러싸인 당시의 조선에서 너무도 귀했을 인재 중의 인재였다. 또한 그는 세계 천주교 역사에 유례없는 자생 종교로서 천주교가 뿌리내린 조선에서 무려 60년 만에 탄생한 첫 조선인 사제이기도 했다.
100년 가까이 이어진 천주교 박해로 김 신부를 비롯한 조선의 순교자 수는 약 1만명으로 추산된다. 오죽했으면 잘린 머리가 산처럼 높이 쌓였다는 뜻으로 ‘절두산’(切頭山·서울 마포구 합정동 순교성지)이라는 끔찍한 이름의 성지마저 생겼다.
◇김대건 신부 순교 177년, 성베드로 성당 최초 동양인 사제 성상 건립
그렇게 기구하고도 슬픈 이야기로 끝날 것 같던 한국천주교사는 200년 만인 오는 16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로마 바티칸 시국에서 다시 써진다. 세계 무대에서 존재감이 없었던 동양의 작은 나라 조선의 첫 사제 김대건 신부의 성상이 이날 전세계 가톨릭의 심장, 바티칸 시국 성 베드로 대성당에 세워지는 감격의 날을 맞이한다.
이날은 김 신부가 희광이의 칼날에 스러져 장미 꽃잎처럼 붉디붉은 피를 흘렸던 날로부터 꼭 177년째가 되는 순교 기념일기도 하다. 김 신부의 탄생 200주년을 맞이한 지난 2021년 유네스코 세계 기념인물로 선정된 이래 또 하나의 경사다.
지난 5일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 우측의 성당 지하묘지 출구 인근 벽감에 김대건 신부의 성상이 설치됐다. 갓에 도포를 쓰고 영대를 한 김 신부는 양팔과 양손을 벌리고 서 있다. 제작을 맡은 한진섭 작가가 섬세하게 다듬은 얼굴은 앳되지만, 의연한 그의 모습을 더욱 자세히 드러낸다.
성상은 높이 3.77m, 가로 1.83m, 세로 1.2m로 이탈리아의 최고급 백색 대리석 비앙코 카라라로 제작됐다. 한 작가가 올해 1월부터 이탈리아 현지에서 성상을 제작해 지난 5일 설치 작업을 마쳤다.
전세계 가톨릭 신자 12억5612만명(2021년 세계선교 통계 기준)의 본산 바티칸에 한국은 물론이고 동양인 성상이 설치되는 건 가톨릭 역사상 최초다. 신앙을 위해 찬란한 목숨을 바친 김 신부의 모습을 이제 바티칸을 찾는 모든 이들이 만날 수 있다.
오는 16일에는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마우로 감베티 추기경(성 베드로 대성전 수석 사제)이 주례하는 감사 미사가 봉헌되며 이후 축성식에서 베일에 가려져 있는 김 신부의 성상이 세상에 공개될 예정이다. 축성식에는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인 이용훈 주교를 비롯해 염수정 추기경, 군종교구장 서상범 주교, 청주교구장 김종강 주교, 부산교구 총대리 신호철 주교가 참석할 예정이다.
더불어 한국천주교의 경사를 축하하기 위해 바티칸을 찾은 공식 순례단을 비롯한 수백명의 한국 신자들도 성 베드로 광장에 설치된 삼성전자 옥외 전광판을 통해 이 감동적인 순간을 지켜볼 예정이다. 김대건 신부 성상 제막식을 앞두고 성 베드로 광장 전광판은 일본 파나소닉 제품에서 삼성전자의 최신 전광판으로 16년 만에 교체됐다.
이날 현장에는 김대건 신부의 생애를 그린 영화 ‘탄생’(2022)의 박흥식 감독과 주연배우 윤시윤을 비롯해 영화 관계자들도 참석해 제막식을 축하하게 된다.
◇한국 교회 변방 넘어 복음 전파 주역으로 우뚝, 대한민국 위상 알리는 영예
주교단의 일원으로 12일 현재 로마에 머무는 서상범 티토 주교는 “가톨릭의 총본산이라고 할 수 있는 로마 성베드로 성당에 동양 성인으로는 최초로 성상이 세워진다는 것은 경이로운 일이다. 성상 설치의 3가지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서 주교는 “첫째로 가톨릭은 하나이고 보편된 교회임을 전세계에 드러내는 것이고, 둘째로 한국 천주교가 변방의 교회가 아닌 이젠 그리스도 복음 전파의 주역임을 보여주는 계기이며, 셋째로 26살의 젊은 사제 김대건 안드레아의 신앙의 용맹과 믿음이 세계 모든 믿는 이의 본보기가 되는 은총의 사건이 되리라 생각한다. 아울러 대한민국의 위상을 전세계에 알리며, 우리 국민 모두에게도 영예로운 일이 될 것이다”라며 벅찬 소감을 전했다.
김대건 신부는 1821년 8월21일 충남 당진 솔뫼마을에서 태어났다. 증조부부터 4대가 독실한 천주교 집안으로, 15세의 나이에 조선인 신학생으로 선발돼 최양업 토마스, 최방제 프란치스코와 함께 마카오 유학길에 올랐다.
10년여의 공부 끝에 1845년 8월17일 중국 진쟈샹 성당에서 사제 서품을 받았고, 1845년 10월1일 페레올 주교, 다블뤼 신부와 함께 조선에 입국해 사제로서 활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서품 1년 만인 1846년 6월 선교사들의 입국 항로를 알아보기 위해 연평도 부근을 찾았다가 관헌들에 체포돼 9월16일 새남터(서울 용산구 이촌동 순교성지)에서 순교했다.
김길수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의 한국천주교회사 ‘하늘로 가는 나그네’에 따르면 김대건 신부는 순교 전 공포와 슬픔에 잠긴 신자들에게 “나는 갑니다. 이제 환란도 고통도 박해도 없는 하느님의 그 기쁜 나라에서 다시 만납시다”라는 유언을 남겼다.
기쁨의 나라에서 다시 만나자고 했던 김대건 신부는 177년 만에 한국 천주교의 가장 큰 기쁨이 되어, 이곳 바티칸에서 꿈에도 그렸을 한국의 신앙 후손들을 두 팔 벌려 맞이하게 됐다.
gag11@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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