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장강훈기자] 첫 경기에서 나왔어야 하는 모습이다. 객관적 전력에서 열세인 대만을 넘으려면, 첫판 분위기가 중요했기 때문이다. 슈퍼라운드를 거쳐 결승까지 가는 여정이 험난한 것도 모르지 않았을 터. 긴장감을 핑계로 삼기에는 ‘프로’라는 수식어가 아깝다.
아시안게임 4연패 도전에 나선 한국 야구대표팀이 우여곡절 끝에 B조 2위로 슈퍼라운드에 진출했다. A조 1,2위인 일본, 중국을 모두 격파해야 결승에 진출할 수 있다. 중국은 언제나 ‘복병’으로 꼽혔고, 일본은 ‘숙적’으로 분류된다. 조별리그에서 드러난 전력으로는 두 경기를 모두 잡는다고 단언하기 어렵다.
처음보는 투수에 대한 낯가림도 문제이지만, 경기가 풀리지 않을 때 스스로 풀어낼 방법을 모르는 게 뼈아프다. 조별리그 첫 경기였던 홍콩이나 마지막 경기인 태국은 소위 ‘참가에 의미를 두는 팀’으로 볼 만하다. 국내 사회인야구 2부리그 팀과 맞붙어도 승리를 낙관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첫판부터 몸풀듯 경기했어야 하는데, 허둥대는 모습이 경기 중반까지 이어졌다.
시속 120㎞대 느린 속구를 던지는 투수는 타이밍 잡기 어렵다. 시속 150㎞짜리 빠른 공 공략이 몸에 밴 선수들이어서다. 인위적으로 스윙 스피드를 늦추기 어려우면, 타석을 활용하는 것도 돌파구가 될 수 있다. 한국 선수들은 습관처럼 배터박스 포수쪽 끝선을 고집했다. 배트가 홈플레이트를 지나간 뒤 공이 날아드는 경우도 많았고, 억지로 시동을 늦게 걸었다가 손목을 쓰는 등 나쁜 습관이 드러났다.
부진과 불운이 겹쳐 마음고생하던 강백호가 3일 태국전 두 번째 타석에서야 겨우 한 발가량 투수쪽으로 이동해 실마리를 찾았다. 박경수 등 KT 선배들이 투수 유형에 따라 타석을 활용하는 것을 지켜봐왔는데, 정작 필요할 때 응용하지 못한 건 아쉬운 점이다. 다른 선수도 비슷하다.
대만전도 마찬가지다. 선발로 나선 린위민과는 세 번째 타석 때까지 해법을 찾지 못해 우왕좌왕했다. 이어 등판한 구린뤼양은 드러난 투구폼만 여섯 가지. 오른발꿈치를 들었다 내딛는 탄력으로 투구 동작을 시작할 때는 속구, 자유족을 두 번 들어올리면 커브, 퀵피치로 타이밍을 빼앗을 때는 속구 등이 기본이었는데, 이마저도 일정한 패턴은 아니었다.
현란한 투구폼을 가진 투수와는 코스만 노려서 타격하는 결단력이 필요하다. 이것저것 다 손대면 답이 없다. 어차피 단기전이고, 내일이 없는 경기다. 한국 대표팀은 정규시즌 치르듯 ‘오늘 못치면 다음에 치면 된다’는 인상이 강했다. 몸에 밴 습관이기도 하고, 단기전에 필요한 ‘선택과 집중’에 관해 코치진이 딱히 주문한 게 없었던 것은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였다.
아시안게임 야구는 언제나 한국 대만 일본의 3파전이었다. 프로 최정예로 구성한 한국은 이른바 ‘드림팀’으로 불린 1998년 방콕 대회때부터 상대국을 압도했다. 그러나 201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일본 최정예와 대등한 수준에서 내려오기 시작했다. 올림픽과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 이미 증명됐다.
잇단 참패에 겉으로는 “국제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KBO리그 경쟁력도 담보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감독 코치는 물론 ‘선배’들로 구성한 해설위원들도 선수에게 쓴소리를 못하는 문화가 정착됐다. 빼어난 외국인 투수나 에이스급 투수가 등판하는 날에는 멀쩡하던 손목이나 허리, 등에 담증세를 호소하는 베테랑도 많고, 한두 달 주전으로 나서면 진짜 1군 선수가 된 것처럼 착각하는 어린 선수도 많다.
이상한 문화가 뿌리를 내리면서 한국야구는 국제무대에서 ‘평범한 팀’으로 전락했다. 이번 아시안게임 역시 딱 그정도 수준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야구인 스스로 개선의지가 없으니, 평범한 수준이라도 유지하면 다행이다. zzang@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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