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배우들의 연출 도전이 매년 이어지고 있다. 김윤석, 조은지, 이정재, 정우성에 이어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D.P’로 얼굴을 알린 배우 조현철도 메가폰을 들었다.실상 그는 배우로 이름을 먼저 알렸을 뿐 한국예술종합학교 재학 시절 이미 뛰어나 연출가로 정평이 나 있었다.
1년 전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 화제작이던 ‘너와 나’가 조현철의 장편 데뷔작이다. 당시 부산을 휩쓴 뒤 유수의 영화제에 초청 받았다. 소재는 수학여행 전날 여고생의 하루다. 사춘기 소녀들의 예민한 감성을 세심하게 파고든 이 작품은 2014년 4월, 전 국민에게 트라우마를 안긴 세월호 참사로 방향을 전환하며 또 한번의 울림을 안긴다.
세월호 참사를 다룬 작품이 적지 않았지만, ‘너와 나’는 세월호 참사를 가장 예술성 있게 추모하는 작품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조현철 감독은 두 여고생의 아름다운 우정과 사랑으로 그때의 아픔을 위로한다.
조 감독은 “개인적인 사고가 있었고, 죽음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그때 잊고 있었던 사건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자연스럽게 죽음을 앞둔 두 여자의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작품 기획배경을 설명했다.
◇집필부터 촬영 그리고 개봉까지, 고치고 바꾸길 반복했던 7년
조 감독은 2016년께 죽음을 깊게 생각해 볼 개인적인 사건이 있었다고 밝혔다. ‘죽음이란 무엇일까?’를 생각하던 중 잊고 있었던 세월호 참사를 떠올렸다. 이 소재로 이야기하고 싶다고 생각했고, 수학여행을 하루 앞둔 두 여고생을 주제로 잡았다.
“금방 촬영에 돌입할 줄 알았어요. 마음처럼 되지 않더라고요. 집필도 길어졌고, 촬영까지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죠. 그사이 취재도 많이 했고, 작품에 대한 고민도 더 깊어졌어요. 대본을 계속 고치고 바꿨죠.”
‘너와 나’가 개봉하기 전만 해도 여성 간의 사랑을 다룬 퀴어나 GL로 인식됐다. 막상 뚜껑을 여니 여성의 사랑보다는 여고생의 우애에 더 가깝다. 극을 이끌어가는 건 세미(박혜수 분)와 하은(김시은 분)이다. 친구 하은과 더 가까워지고 싶은 여고생 세미를 그렸다.
“경계가 흐릿한 사랑의 감정을 그렸어요. 서로 금방이라도 깨질 것 같이 다뤘으면 하는 마음으로 관계를 표현했죠. 여고생들이 주인공이기 때문에 두려움이 커서 취재를 많이 했어요. 학생들이 어떻게 말하는지, 생각하는지 대화가 어떻게 진행되는 알려고 했어요. 연극영화과 입시학원에서 특강하면서 면담도 많이 했고, 여고생 브이로그도 많이 봤던 것 같아요.”
덕분에 영화는 서른을 앞둔 박혜수와 20대 중반 김시은, 30대 남성 창작자인 조감독이 합작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10대의 감성이 온몸으로 파고든다. 말투와 화법, 리듬, 감정이 날 것처럼 생동감이 넘친다.각종 영화제에 왜 초청받았는지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내가 본 박혜수와 남이 말하는 박혜수, 뭘 믿어야 할까요?”
배우 조현철의 연출작이라는 것도 흥미롭지만, 학교폭력가해의혹을 받고 있는 배우 박혜수가 주연으로 나섰다는 점도 화제다. 애초 조 감독은 세미 역할에 박혜수를 점찍고 프리프로덕션을 진행했다. 약 1년 가까이 박혜수와 대화를 나눈 상태에서 폭로가 나왔다.
배우 교체를 할 법한 상황이지만 조 감독은 박혜수 주연을 고집했다. 개봉은커녕 공개조차 어려울 수 있는 상황에서 박혜수를 택했다.
“간단하게 얘기하면 누가 박혜수를 제대로 알고 있는가입니다.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내가 아는 박혜수와 인터넷에서 떠드는 박혜수가 있어요. 인터넷 상에서 얼마나 과장되고 왜곡된 정보가 떠도는지 많이 경험했잖아요. 혜수 씨가 보여준 모습을 신뢰했어요. 리더십이나 강단도 있어요. 영화 곳곳 빛나는 순간을 혜수 씨가 만들어냈죠.”
‘너와 나’는 반복적인 대사나 행동이 많다. 서로에 대한 애정을 확인한 세미와 시은이 ‘사랑해’라는 대사를 오랫동안 이어가는 점도 있고, 장례식장 앞에서 집에 가는 척 다시 돌아와 인사하는 세미와 그걸 받아주는 하은의 장면도 있다. “왜 안 들어가”, “뭐야” 등의 대사로 네 다섯차례 세미는 집에 가는 걸 돌아온다.
그 과정에서 장례식장으로 이동하는 조화와 세미가 같이 사라졌다 돌아온다. 세미와 하은의 우정과 더불어 앞으로 이 두 사람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암시한다. 인상 깊은 명장면이다. 이때부터 감정이 복받쳐 온다.
“이야기를 다룰 때 뭔가 단편적이거나 납작한 걸 경계해요. 입체적으로 보였으면 해요. 슬픈 얘기를 전할 때 오히려 더 생동감이 넘치거나 유머를 통해 활기를 보여줬으면 해요. 죽음 앞에서 느껴질 수 있는 사랑의 감정, 그 감성의 다채로움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조현철 감독은 배우로 인터뷰를 할때마다 연기보다 연출이 조금은 더 편했다고 밝힌 바 있다. 넷플릭스 ‘D.P.’로 이미 엄청난 연기력을 가진 배우라는 걸 드러낸 그는 연출로 전향할 마음이 있는 것일까.
“저는 둘 다 하고 싶은데요. 연기 욕심도 강해요. 사실 저는 계획 하지 않아요. 그냥 제게 닥친 일을 집중해서 잘 하려고 해요. 영화를 찍을 때도 그랬지만, 예상한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어요. 어떤 일이든 벌어질 수 있다고 여기고 흘러가는 대로 살려고요.”
intellybeast@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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