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전쟁을 치르지 않은 지 80년이 다가오는 요즘은 가장 평화로운 동시에 첨예한 사회적 갈등이 부글부글하다. 좌우로 나뉜 이념과 남녀로 갈린 대립, 기성세대와 새로운 세대 간의 불통, 부자와 빈자의 격차까지, 같은 하늘과 땅 사이에서 타인으로부터 그 어느 때보다 불편한 감정을 얻는 때다.
인간이 각기 다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현상이라고 하지만, 불안이 너무 증폭되는 것도 사실이다. 비단 한국만의 문제는 아닐 수 있으나, 우리나라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이슈는 분노와 원망은 눈 감고 피할 수 있는 수준을 넘고 있다. 과연 이 갈등과 불안은 해소될 수 있을까.
1일 11회를 통해 마무리된 웨이브 ‘사상검증구역: 더 커뮤니티’는 어쩌면 이 수많은 갈등이 쉽게 해소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안겨 준다. 12명의 성향 차이를 가진 사람들이 약 9일 동안 한곳에 모여 민감한 사안을 소재로 토론을 나누고 차이를 알아가며, 그 사이에서 서바이벌을 벌이는 이 프로그램은 결과적으로 소통과 이해로 많은 것을 해소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페미니스트 작가인 하마와 남성성이 짙은 다크나이트, 홍콩대 출신 금수저 지니와 오롯이 공부에 전념할 수 없었던 처지에서 진보적 세계관으로 자아를 완성한 백곰, 누구나 아늑한 행복을 바라는 이상주의자 테드와 강자의 뜻으로 하나로 규합되길 원하는 슈퍼맨 등 물과 기름 같은 사람들이 만났다.
너무나 다른 성향 때문에 금방이라도 다툴 것 같은 이들이 서로를 저격하며, 타인을 떨어뜨리려고 혈안이 될 것만 같지만, 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간다. 서로의 능력과 차이를 인정하고 잘하는 것에 있어서는 충분한 보상을 안겨주며, 때로 희생을 내세우기도 했다.
불순분자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됐던 마이클이 아무도 자신의 처지를 안 알아줬다는 것에 서운함을 내비치자 그레이와 백곰, 테드, 슈가 등이 삼삼오오 힘을 합쳐 마이클을 살려주는 대목은 감동적이기도 하다.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불편함을 안겼던 마이클의 희생이 결과적으로 커뮤니티 내 불순분자를 처단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는 것을 인정하는 부분은 성향에 앞서 모두가 가진 인간성이 더 빠르고 의미 있게 작동한다는 걸 확인시켜줬다.
아름답기만 한 건 아니었다. 11회 내내 분란이 일어났다. 낭자나 다크나이트는 커뮤니티 내에서 벌어지는 변화에 대체로 부정적으로 반응했다. 커뮤니티의 결정에는 따르는 듯 하지만, 뒤에서는 상당히 강한 불만을 내비친 이들의 배경엔 그만큼 치열할 수밖에 없었던 삶이 존재했다. 때론 자신의 생존을 위해 거짓말을 하고, 그 거짓말이 들통나자 사과에 앞서 자기 처지만 먼저 운운하기도 했다.
다양한 갈등 속에서 발생한 각기 다른 선택에 누군가는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의 줄임말)이라 비판할 수도 있지만, 인간이라면 할 수 있는 실수라는 점에서 크게 불편하지만은 않았다. 마지막까지도 잔인하게 승부에 얽매여 남을 비난하고 원망하는 다른 서바이벌에 비해서는 우아하고 품위가 있었던 편이다.
하마와 마이클이 떨어질 위기에 처했을 때 탈락 면제권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진 이기심은 마치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듯했다. 모두가 함께 같이 살자고 한지 얼마 되지 않아, 자신의 생존만 내세운 욕심이 결코 예뻐보일 순 없었다. 살고 싶은 욕망과 내 것을 뺏기고 싶지 않은 욕망 사이에서 정리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한 백곰의 모습을 보며, 리더가 얼마나 외로운 자리인지도 새삼 느끼게 했다.
마지막 화는 ‘죄수의 딜레마’가 핵심이었다. 벤자민에게 불순분자로 지정받은 그레이가 설계한 판에서 죄수의 딜레마가 펼쳐졌다. 개인은 분배와 독점을 선택할 수 있는데, 두 사람이 분배를 선택하면 두 사람의 가진 돈의 평균을 나눠 갖고, 둘 다 독점을 선택하면 불순분자가 갖게 된다. 한 명이 분배, 한 명이 독점을 선택하면 독점을 선택한 사람이 모두 갖게 된다. 둘 다 독점을 선택한 한 팀과 한 명이 독점, 한 명이 분배를 선택한 두 팀, 한 팀이 둘 다 분배해 나눠 갖게 됐다. 결국 불순분자는 한 팀의 돈밖에 가져가지 못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가진 것을 모두 내놓으며 타인의 입장을 고려한 선택이 꽤 많이 나왔다. 누군가에겐 너무 서운한 결과일 수 있지만, 그 안에서 갈등이 가득했던 것을 미뤄보면 비교적 아름다운 마무리로 해석된다.
결과적으로 ‘더 커뮤니티’는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복잡한 임무를 수행해가며, 때론 누군가를 필연적으로 떨어뜨려야 하는 위기를 맞이함에도 결국, 서로를 이해하고 토닥이며 화합의 길로 갈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익명의 상태에서조차 진심을 전한다면 충분히 올바른 결정으로 끌고 갈 수 있단 것도 알게 됐다.
각자 처한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누군가는 더 이득을 보고, 누군가는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에서 위선은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결과지만, 그마저도 어떻게든 나누면서 동등한 위치에 서려는 모습은 인간성이 무엇인지 되짚어보게 한다. 특히 타인의 입장을 고려해 자신을 탈락시킨 테드의 선택은 존중받아 마땅하다.
이 모든 과정은 단순한 예능을 넘어 인간을 더 깊고 넓게 알 수 있는 인문학적 연구 자료에 부합했다. ‘더 커뮤니티’에 힌트를 얻는다면 또 다른 독창적인 정치 예능의 탄생도 가능해 보인다. 그리고 ‘더 커뮤니티’ 역시 시즌제로 이어지며 소통의 힘을 다양한 방식으로 알려준다면, 갈등과 혐오로 얼룩진 한국 사회에 긍정적인 에너지를 부여하지 않을까 짐작된다. intellybeast@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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