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최규리 기자] 정용진 신세계 회장이 올해부터 성과에 맞는 공정한 보상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인사제도를 본격적으로 가동한다.

정용진 회장 승진 이후 처음 성과를 보이는 내부 시스템 개혁으로, 실적 위기에 빠진 그룹 계열사의 경영 혁신을 위한 첫 단추로 꼽힌다. 신상필벌이 강화되는 만큼 그룹 내부 긴장감도 그만큼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12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신세계그룹은 내부적으로 마련한 핵심성과지표(KPI)를 토대로 이르면 다음 달부터 임원진 수시 인사를 단행할 예정이다.

그룹 전통인 연말 정기 인사 체계의 틀을 벗어나 기대 실적에 못 미치거나 경영상 오류가 발생하면 최고경영자(CEO)라도 수시로 교체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내포한 제도다.

그룹의 한 관계자는 “과거에는 CEO가 실적이 부진해도, 문제가 있어도 정기인사 때까지 기다려주는 관행이 있었는데 지금은 위기 상황이니만큼 기다려줄 여유가 없다”며 “(실적 부진 등으로) 인사 수요가 있으면 바로바로 인사 조처하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KPI는 성과 측정의 정성적인 요소를 최대한 배제하고 정량적인 지표를 중심으로 조직 또는 개인의 성과를 계량화한 것이다.

정 회장은 지난해 11월 그룹의 ‘콘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경영전략실을 개편하면서 산하에 ‘KTF’(K태스크포스)와 ‘PTF’(P태스크포스) 등 두 개 전담팀을 신설한 바 있다.

K태스크포스는 구성원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객관적이고 예측할 수 있는 ‘신세계식’ KPI 수립을 목표로 했고, PTF는 이를 토대로 기존의 인사 제도를 전면적으로 혁신하는 임무를 맡았다.

정 회장은 세부 개편안을 수시로 보고받고 큰 틀의 방향을 주문하는 등 제도 개편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회장은 그룹 주요 계열사가 직면한 실적 위기를 타개하려면 경영 전략에 앞서 체계적인 성과 시스템부터 구축해야 한다고 본다.

이면에는 실적·성과를 불문하고 모두가 혜택을 똑같이 나누는 현재와 같은 시스템으로는 책임 경영은 물론 우수 인재를 확보하기도 어렵고 이는 나아가 미래 성장 동력의 상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자리 잡고 있다.

신세계는 주요 그룹 중에서도 성과 보상시스템이 다소 약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신세계 성과보상제의 기본 틀은 등급제다. 예를 들어 이마트가 A등급을 받으면 개인 성과와 관계 없이 직급별로 똑같은 성과급을 받는 방식이다. 개인별 성과 차를 인정받지 못하다 보니 굳이 다른 직원보다 더 열심히 일해 좋은 성과를 낼 이유도 없었던 셈이다.

임원 연봉에서 성과급이 차지하는 비중도 약 20%로 다른 그룹(평균 약 50%)에 비해 크게 낮은 편이다. 정 회장은 오랜 기간 이에 대한 문제의식을 지니고 있었고 경영전략실 개편을 계기로 TF까지 만들어 이를 전면적으로 손질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정 회장이 지난해 11월 경영전략실 개편 이후 두 번째 가진 전략회의에서 “철저하게 성과에 기반한 인사·보상 체계를 갖춰야 한다”며 대대적인 인사시스템 개편을 주문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정 회장은 가까운 참모에게도 “인사제도 개혁을 더 미루면 그룹 생존을 담보할 수 없다”며 그 당위성을 자주 강조했다고 한다.

이번에 마련된 새 인사 제도는 정 회장의 이런 인사 철학을 반영한 것으로 성과에 맞는 적합한 보상과 ‘신상필벌’을 두 축으로 한다.

그룹 안팎에서는 핵심 계열사인 이마트와 건설 경기 악화 여파로 유동성 위기에 빠진 신세계건설, 적자의 깊은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SSG닷컴·G마켓 등 이커머스 계열사가 새 인사제도의 1차 타깃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들 계열사는 그룹의 미래를 좌우할 기회이자 위기 요인이라는 점에서 그룹은 물론 유통업계 관심도 크다. 대표적으로 그룹 근간인 이마트는 쿠팡·알리익스프레스와 같은 외국국적 이커머스의 거센 공세 속에 최근 실적 정체 상태가 지속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신세계건설 대규모 손실 여파로 1993년 창립 이래 처음으로 연간 기준 영업손익이 적자 전환했고, 그동안 지속해온 외형 성장마저 한풀 꺾이며 연간 매출 규모(약 29조4000억원)가 쿠팡(약 31조8000억원)에 추월당하는 쓴맛을 봤다.

이에 인사제도 개편이 현실화하면서 내부에서 체감하는 긴장감도 크다고 한다.

그룹 계열사 한 관계자는 “그룹 창립 이래 수시 인사를 제도화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어느 정도 시간을 줬는데도 실적 효과가 가시화하지 않으면 단명할 수 있다는 점을 공식 선언한 셈이라 주요 계열사 CEO들이 벌써 긴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gyuri@sportsseoul.com

기사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