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장강훈 기자] “형이야. 잠깐 보자.”
1,2군을 오가며 주전 선수를 꿈꾸던 A는 어느날 오재원(39)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야구 아카데미를 운영하던 오재원이 공짜 레슨 등으로 선심을 베풀던 터라 별다른 의심없이 만났다.
“병원에 가서 수면제좀 타와.”
다른 선배들처럼 아카데미 홍보용 사진촬영 등을 기대한 자리에서 오재원은 대리처방을 요구했다. “못하겠다”고 말하는 A에게 폭언과 폭행이 날아들었다. 비슷한 처지이던 B는 “선수생활 못하게 하겠다”는 협박까지 했다. 코치에게도 대들던 오재원의 성격을 고려하면, 부정한 일인줄 알면서 거절할 수 없었다. 선후배로 얽힌 KBO리그 문화에 발목을 잡힌 셈이다.
향정신성의약품을 상습 복용한 혐의로 구속된 오재원은 교활하고 악랄한 방법으로 약을 모았다. 은퇴한 동료에게는 “진짜 죽을 것 같다. 도와달라”고 읍소했고, 힘없는 후배들에게는 폭언과 협박으로 일관했다.
서울중앙지검 강력범죄수사부(부장검사 김연실)가 조사한 내용으로는 2022년 11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 11차례에 걸쳐 필로폰을 투약하고, 지난해 4월에는 지인의 아파트 복도 소화전에도 필로폰 0.4g을 보관한 것으로 파악했다. 지난해 1월부터 올해 3월까지 89차례나 지인으로부터 향정신성의약품인 ‘스틸녹스정(졸피뎀 성분의 수면유도제)’를 대리처방받아 2242정을 수수하고, 20정을 매수한 혐의도 받았다.
이 과정에 팀 후배 8명이 희생양이 됐다. 이제 막 1군 공기를 맛보기 시작한 어린 후배들은 ‘눈이 돌면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는 선배’가 무서워 어쩔 수 없이 부정한 일에 가담했다. “대리처방 자체가 문제가 되는줄 몰랐다”는 선수도 “불법인줄 알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도 살아야하지 않느냐”고 억울함을 호소한 선수도 있다. “뭣 모르고 딱 한 번 처방받아줬을 뿐”이라며 눈물을 흘린 선수도 있었다.
오재원이 마약투약 혐의 등으로 체포돼 지난 17일 구속기소된 후 이들 8명은 증거를 수집하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녔다. 처방받은 당사자가 직접 병원을 방문해야 검진 기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잠실이나 이천에서뿐만 아니라 원정경기 때도 후배들에게 대리처방을 강요했다는 얘기다. 현역일 때부터 이미 늘 약에 취해있었을 가능성이 드러난 대목.
구단 사정을 잘아는 관계자는 “펑고 훈련 도중 포구 자세를 지적하는 코치에게 글러브를 던지며 ‘해보세요’라고 말했을 정도니, 오재원의 안하무인격 행동이 이미 팀 통제권을 벗어난 것처럼 보였다. 코치진도 어쩌지 못하는 선수에게 후배들이 반기를 들 수 있겠는가. 오재원이 은퇴를 선언한 날 그에게 시달림을 당한 선수들은 안도의 한숨부터 내쉬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검찰의 조사 결과를 지켜본다는 입장이다. KBO 박근찬 사무총장은 “4월초경 클린베이스볼센터에서 신고를 접수했다. 당시엔 구단이 자체조사를 내밀하게 하고 있다고 보고받았다. 조사 중인 사안이어서, 추이를 보고 후속조치를 논의할 생각이다. 지금은 다툼의 여지가 있으므로 검찰 조사를 지켜볼 것”이라고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섣불리 징계카드를 꺼내들면 억울한 피해자가 생길 수도 있다. 대리처방 자체가 범법행위이지만, 위계나 위력에 의해 어쩔 수 없이 가담한 것이라는 법리적 해석에 따라 선처받을 수도 있다.
두산 구단도 대응책을 두고 고심 중이다. 구단 핵심 관계자는 “몰랐던 것도 죄”라면서도 “억울한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잘 살피는 것과 별개로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을 교육법을 찾는 게 우선이다. 피해를 당한 선수들이 검찰에 먼저 찾아가 소명할 예정이므로 이후 자체징계 등 대응을 논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zzang@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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