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김용일 기자] 스스로 꿈꾼 동화 같은 일이 벌어졌다. 올림픽에서 금·은·동메달을 모두 품은 골프 선수가 탄생했다. 뉴질랜드 교포 리디아 고(27·한국명 고보경)다.

리디아 고는 11일(한국시간) 프랑스 파리 인근에 있는 기앙쿠르의 르골프 나쇼날(파72)에서 끝난 2024 파리올림픽 골프 여자부 최종라운드에서 버디 4개와 보기 1개, 더블보기 1개로 1언더파 71타를 쳤다. 최종 합계 10언더파 278타를 적어 독일의 에스터 헨젤라이트(8언더파 280타)를 2타 차로 제치고 정상에 올랐다.

그는 올림픽 3회 연속 메달을 품었다. 2016년 리우 대회에서 은메달, 2020 도쿄 대회에서 동메달을 목에 건 리디아 고는 세 번째 올림픽에서 메달 색을 금빛으로 바꿨다. 금·은·동메달을 모두 따내는 이른바 ‘메달슬램’은 여자골프 사상 최초다.

덕분에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명예의 전당 가입 조건을 충족했다. 헌액까지 1점이 부족했는데, 올림픽 금메달로 채웠다. 역대 35번째이자 최연소(27세 4개월) 헌액자로도 이름을 올렸다. ‘골프여제’ 박인비가 2016년 27세 10개월로 세운 최연소 기록을 8년 만에 3년 6개월 앞당겼다.

그는 “올림픽에서 이런 일(명예의 전당 입성)이 일어났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마치 동화 속, 신화 속 인물이 된 것 같다. 지금까지 내 경력에서 감사한 일이 너무 많았고, 정말 최고”라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1997년 제주에서 태어난 리디아 고는 어릴 때부터 골프에 재능을 보이자 온 가족이 뉴질랜드로 이민갔다. 만 14세 때 호주여자골프 NSW오픈(2012년) 정상에 올라 최연소 프로대회 우승 기록을 쓰더니 같은 해 8월 LPGA투어 캐나다 여자오픈에서 우승해 또 하나의 최연소 우승을 달성했다.

2013년 프로로 전향했고, 메이저 2승을 포함해 통산 20승, 두 차례 올해의 선수와 베어트로피(최저타수상)을 수상하는 등 세계 여자골프사(史)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그는 “어제까지 공동 1위였고, 오늘(11일) 내 인생에 가장 중요한 18홀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 내 마지막 올림픽에서 금메달로 내 엔딩을 직접 쓰고 싶었던 꿈이 이뤄졌다”고 감격했다. 사실상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는데, ‘메달슬램’과 명예의 전당 헌액을 동시에 달성한, 그야말로 완벽한 라스트 댄스였다.

메달슬램을 달성한 리디아 고가 금메달을 과연 어느 곳에 보관할 것인지도 관심사다. 그는 3년 전 열린 2020 도쿄올림픽(코로나19로 1년 연기 개최)에서 동메달을 거머쥔 뒤 “리우 대회 은메달은 아빠 옷장 속에 있다”며 웃었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는 도쿄 당시 동메달도 언니가 한국에 가져가 부모에게 드렸다고 고백했다. “하나 더 따내서 직접 소장하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는데, 가장 품고 싶던 금메달을 파리에서 손에 넣었다.

10대 시절 ‘천재 골퍼’로 이름을 알린 리디아 고는 한때 슬럼프를 겪었으나 결혼을 기점으로 부활했다. 2022년 12월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 외아들 정준 씨와 결혼을 앞두고 그해 3승을 거두며 세계 랭킹 1위에 복귀했다. 그리고 파리에서 금메달 꿈까지 이루면서 ‘모든 걸 가진’ 골퍼가 됐다.

더불어 현대가(家)도 겹경사를 누렸다. 현대자동차 정의선 회장이 이끄는 양궁 대표팀이 금메달만 5개를 수확하는 위업을 달성했는데, ‘현대가 며느리’인 리디아 고가 여자 골프에서 1개를 추가해 이번 올림픽에서만 6개의 금빛 샷을 완성했다.

이날 대회장에는 현대카드 정태영 부회장이 찾아 열띤 응원을 보냈다. 정 부회장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가족 중 한 명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경기를 했다. 자기 일에 이토록 진심이니, 존경심을 갖고 따라다녔다”며 며느리에 대한 애정을 가감없이 드러냈다.

한편, 한국 선수 중에서는 양희영이 최종 합계 6언더파 282타를 기록하며 가장 높은 4위로 대회를 마쳤다. 동메달에 1타 모자라 아쉬움을 남겼다. 고진영과 김효주는 3타씩 줄였으나 공동 25위(이븐파 288타)에 머물면서 두 번째 올림픽을 마쳤다. kyi0486@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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